미 연방대법원이 약 반 세기 동안 이어온 낙태 합법화 판결, 소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를 뒤집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2일 새뮤얼 얼리토(Samuel Alito) 연방대법관이 작성해 대법원 내에서 회람된 다수 의견서 초안을 입수해 이 같이 보도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 가능한 임신 24주를 기준으로 그 이전까지 낙태를 허용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수 성향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이 초안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애초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으며, 특히 낙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논쟁을 키우고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어떤 헌법 조항도 낙태권을 명시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이제 헌법에 귀를 기울이고,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돼 있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작년 12월 미시시피주 낙태제한법 관련 구두변론 이후 열린 대법관 회의에서, 과거 공화당 정부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 4명이 알리토 대법관과 같은 의견을 냈고, 민주당 정부가 지명한 대법관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초안이 기존 판결이 반드시 번복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며 "대법관들이 회람 과정에서 초안을 여러 번 작성하고, 판결을 내리기 며칠 전에도 의견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낙태권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무효화할 경우, 각 주 차원에서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50개 중 절반에서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 친생명단체인 국가생명권위원회는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직접적인 논평을 유보하는 성명을 냈다. 그들은 미시시피주 린 피치(Lynn Fitch) 법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우리는 대법원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고, 법원의 공식 입장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생명단체인 수잔B.앤서니리스트는 초안이 '돕슨 대 잭슨' 사건의 최종 결정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마조리에 다넬펠서(Majorie Dannelfelser) 회장은 "오늘 밤 공개된 의견의 초안이 법원의 최종 의견이라면 그 결정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며 "미국인들은 선출된 관리를 통해 아기들을 보호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법에 관해 토론하고 이를 제정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또 "친생명 운동이 임산부와 도움이 필요한 태아를 지원하는 기존의 사역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친낙태 단체인 미국 가족계획연맹은 즉각 성명을 내 "소름끼치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이 헌법상 낙태권을 끝낼 준비가 됐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반발했다.
연맹은 "우리는 수십 년간 불길한 조짐을 봐 왔지만, 이(의견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낙태 반대 단체가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려는 궁극적인 계획을 공개한 직후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한편 판결 전망과 별도로, 연방대법원의 결정문 초안이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에 따른 파장도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대법관의 내부 논의 내용이 정식 발표 전 외부로 유출된 것은 현대 사법사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진보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대법원이 유출된 초안의 노선을 따라 실제로 주류 의견을 낸다면, 낙태권의 토대는 대법원이 낸 어떤 의견서보다도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며 "이는 국가의 절반에게서 본질적인 헌법적 권리를 박탈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15주 낙태 금지와 관련된 '돕슨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사건을 올해 7월경 판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