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가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제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브라운 박사는 루마니아 출신 유대계 기독교인이자 ‘살아있는 순교자’라 불리는 범브란트(Richard & Sabina Wurmbrand) 부부의 생애를 소개했다.

그는 칼럼에서 “그들은 변치 않는 신앙으로 인해 투옥되고, 학대받으며, 잔인하게 고문당했다”라며 “시대의 정신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 의제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께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나치가 루마니아를 점령할 당시, 리처드 목사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구타를 당했다. 그 후 1944년,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한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브라운 박사는 “그 후 위대한 시험이 다가왔다. 그들은 다른 국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정부가 후원하는 컬트 회의에 참석 중이었고, 그 행사는 생방송으로 전국 라디오에 송출되고 있었다”면서 “한 종교지도자는 공개적으로 공산주의를 칭송했고 윔브란드 부부는 이에 역겨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비나는 남편에게 “리처드,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이 수치를 씻어내세요!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아내에게 “그렇게 하면 남편을 잃게 될걸요”라고 말하자 사비나는 “나는 겁쟁이를 남편으로 두고 싶지 않아요”라고 단호히 응수했다.

브라운 박사는 “(리처드) 범브란트가 의회에서 연설에 나서자, 모두는 그가 새 정부를 지지할 것을 기대하며 침묵했다. 그러나 그는 4,000명의 대표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는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면서 “그는 연단에서 쫓겨나 일약 유명세를 탔다. 사역하는 내내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고 했다.

3년 후인 1948년 2월 29일 아침, 리처드는 비밀경찰에 의해 납치되어 투옥되었고, 실명을 빼앗긴 채 무단으로 감금됐다. 그는 총 14년간 두 번의 징역형을 당했으며, 한 번은 며칠 밖에 살지 못할 죄수들이 머무는 ‘죽음의 방’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2년 이상을 생존하며, 임종 직전에 놓인 많은 죄수들을 섬겼다. 아내 사비나도 지하 교회 활동을 계속하다가 루마니아의 노동 수용소에 3년 동안 수감됐다. 이후 1965년 범브란트 부부는 그의 친구들이 대신 몸값을 지불하여 풀려났다.

브라운 박사는 “범브란트는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고통받는 교회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rs)를 설립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려던 것이 교회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리처드의 저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인용, “박해는 항상 더 나은 기독교인, 즉 증거하는 기독교인, 영혼을 구하는 기독교인을 배출시켰다”면서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는 역효과를 낳았고, 자유세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진지하고 헌신적인 기독교인들을 낳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저서 ‘하나님의 지하운동’을 통해 브라운은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편의나 위로, 단순히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의 선택이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그의 말대로 “면도를 하러 이발소를 찾거나, 양복을 재단사에게 주문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라 손님이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 구세주께 온 사람은 제자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제자는 그리스도께 이처럼 말한다. “저는 당신처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기쁨과 진리와 위로와 영생을 가져다주며 일하기를 갈망합니다!”라며 “우리는 고객도, 소비자도, 일시적인 편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우린 오직 예수님께 무릎을 꿇을 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