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귀책사유 없이 귀신들려 미치는 <곡성>
주인공과 가족에 부도덕한 행적 있었던 <랑종>
영적 현상 소재로 영화에 매력 불어넣는 나홍진
여러 종교들, 특히 기독교, 신앙 평가절하 허용
※본 평론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혼과 무당: <곡성>과 <랑종>, 한국과 태국의 귀신들림과 무당
<랑종>은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싱을,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감독과 연출을 맡은 영화로, <곡성>과 마찬가지로 빙의, 혹은 귀신들림 현상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반종은 2004년 자신의 감독 데뷔작인 공포영화 <셔터>로 태국 최초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유능한 감독이다. 영화 <랑종>은 나홍진 감독이 기본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태국 현지에서 반종 감독이 감독하고 연출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제목인 '랑종'은 태국어로 '접신하는 자', 즉 박수나 무당을 뜻한다. 이 영화는 한국의 무속신앙과 유사한 점이 많은 태국 고유의 무속신앙을 주된 소재로 다룬다.
통상 태국은 불교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태국인의 다수를 이루는 민족인 타이족 고유의 무속신앙이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국에서 불교, 도교, 무속신앙이 오랜 세월 융합 과정을 거쳤던 것처럼, 태국에서도 불교와 태국 고유 무속신앙이 융합된 채 전래되고 있다.
<랑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창작된 허구적 서사를 마치 사실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고 있다. 덕분에 중간중간 태국의 무속신앙이나 미신, 귀신들림 등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자세하게 덧붙여진다.
영화의 초반 주인공은 랑종, 즉 무당인 님(싸와니 우툼마 분)이 맡고 있고, 중반 이후부터는 님의 조카로서 귀신들려 조금씩 미쳐가는 젊은 여성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대부분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태국 북동부 이싼 지역의 한 촌락의 랑종을 맡고 있는 님은 언니인 노이(씨라니 얀키띠칸 분)의 남편이 죽자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조카, 즉 언니 노이의 딸 밍이 귀신들림의 초기증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밍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이후 밍은 님의 우려대로 귀신들림 증상이 갈수록 악화된다. 이에 가족들과 님의 동료 랑종들까지 나서 밍을 정상으로 되돌리려 노력하지만 밍은 갈수록 광기에 붙들려 폭력을 행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계속 고통당하고, 난잡한 성관계에 집착하고, 종래에는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살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귀신들에게 붙들려 극단적인 폭력성과 성적 도착증세를 보이고, 결국에는 가족 전체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랑종>의 주인공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 |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보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떠오른다. <랑종>의 서사는 <곡성>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곡성에서는 한 지방 경찰관의 딸이 귀신들림으로 인해 악의에 물들어 폭언과 폭력을 일삼게 된다. 이에 딸을 조종하는 귀신을 저지하려 부모와 가족이 성직자와 무당의 도움을 청하고, 지박령에게까지 의지해보지만 결국 계획은 실패한다. 결말은 파국이다. 온 가족이 아이에 의해 참살을 당한다.
랑종에서는 대대로 신내림을 받은 집안의 딸이 여러 귀신들에게 붙들린다. 악의에 물들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는다.
<곡성>에서처럼 가족 전체가 나서 구제해보려 하고, 랑종들이 나서지만 계획은 처참히 실패한다. 역시 결말은 파국이다. 일가족 전체와 관련된 랑종들, 그리고 그 제자들과 다큐를 찍는 카메라맨들까지 모두 OO을 당한다.
<곡성>과 <랑종>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면, <곡성>에서는 경찰관 종구(곽도원 분)에게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딸 효진(김환희 분)이 귀신들려 미쳐버리고 만다. 반면 <랑종>에서는 귀신이 들린 밍 자신과 그녀의 가계에 저주가 내려질 만한 부도덕한 행적들이 있었다.
밍은 친오빠와 근친상간을 했고, 밍의 어머니 노이는 자기 대신 동생 님이 신내림을 받도록 일을 계획한 바 있다. 밍의 조부는 보험금을 노려 자신이 운영하던 방직공장을 불태워 종업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극악한 범죄 이력이 있다. 때문에 평론가와 리뷰어 다수가 이 영화를 일종의 권성징악 서사로 바라보기도 한다.
반종 감독의 대표 공포영화 <셔터> 역시 성폭행 범죄 희생자의 원혼이 복수를 하는 권선징악형 서사였던 점을 생각해 보면, 영화 <랑종>의 죄와 저주라는 테마는 나홍진 감독보다 반종 감독의 의향이 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혼과 종교: 공포스럽기만 한 영혼, 그 앞에서 무력한 종교
그렇지만 <랑종>을 반종 감독이 아닌 나홍진 감독의 의도대로 해석하려는 이들도 많다. 나홍진 감독의 성향을 고려하면, <랑종>의 해석은 좀 더 복잡해지고 심각해진다.
특히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하다. 나홍진 식 영혼 이해는 기본적으로 신비로움이다. 좋게 말해 신비로움이지, 실상 영화에서 표현되기로는 무자비한 불가지성이다.
<곡성>에서 그랬듯, <랑종>에서도 모든 종교적 믿음의 효력이 부정당한다. 영적인 실상과 현상은 존재하되, 이를 다스리고 해결하려는 종교의 능력은 보잘 것 없다.
밍의 어머니 노이가 신내림을 받지 않으려고 의지한 가톨릭 신앙은 밍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존 고등종교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밍의 가족들은 랑종인 님의 주도로 타이족 무속신앙에 의존하지만, 이 시도 역시 약간의 효과를 보이는 듯 하다가, 결국에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영화 <곡성>에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려 굿을 펼치는 무당 일광(황정민 분). |
이러한 결말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혼에 관한 것, 영적인 것을 다스리고 이용해 보려는 모든 인위적인 시도는 부질없다는, 나홍진 식 영혼 이해를 반영한 메시지이다.
이러한 부질없는 시도 가운데는 각종 종교적 믿음 역시 포함된다. 그나마 <랑종>에서는 반종 감독의 의향 덕분인지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 영적인 억압과 저주를 피하는 방편으로 제시되지만, 이것 역시 신내림과 관련해서는 별반 효력이 없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렇듯 종교적 믿음의 무기력함에 대한 나홍진 감독의 메시지는 종교철학자 루돌프 오토가 널리 알린 개념, 누미노제(das Numinöse)의 한 측면을 편향적으로 부각시킨다.
오토는 인간이 자연적 현상 혹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인간을 절대적으로 압도하는 힘의 존재를 인지하며, 이 신비한 힘에 대해 절대적 경외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외심이 바로 누미노제, 즉 누멘적 감정이다. 이 감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매혹이다.
나홍진 식 영혼 이해는 누미노제의 두려움 부분을 집중적으로 내세운다. 도무지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인간의 곁에 상존하고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을 붙들어 뒤흔들지 알 수도 없다.
인간이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신비로운 힘, 그것에 대해 인간들은 극단적인 공포심을 갖게 된다. 나홍진의 영화 속에서 이러한 공포심은 '귀신에 의한 폭력'으로 구체화된다.
▲영화 <랑종>에서 조카 밍에게 붙은 악독한 귀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조상신에게 기도하는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 분). |
우선 극단적인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러한 힘이 만일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 이용될 수 있다면, 이 힘은 단지 두렵기만 한 힘이 아니라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힘이 된다.
종교적 믿음은 누미노제의 매혹적 속성을 부각시킨다. 인간이 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충심으로 섬긴다면 그 무한한 힘이 인간을 보호하고 이롭게 할 것이라는 신념은, 인간을 영혼이나 무한과 관련된 신비롭고 압도적인 힘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누미노제의 이런 매혹적 성격이 현실화되려면, 종교적 믿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의 영화에서는 종교적 믿음이 결코 원하는 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발휘될 듯 하다가도 무너지고 만다. <곡성>과 <랑종> 모두에서 이런 특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곡성>과 <랑종>에서 누미노제의 매혹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누미노제의 매혹적 성격은 전혀 다른 방면으로 발현된다. 이는 바로 두 작품이 영화라는 점, 즉 그 서사가 허구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영화적 현실 속에서는 영적 저주나 귀신들림이 막막한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관객들은 이런 일들이 오로지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다소간의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영화 밖 현실의 자신은 영화 속의 그 무서운 힘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 기괴한 영적 현상이 주는 공포심을 상쇄하는 매력에 이끌려 영화를 감상한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