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욕망(갈망), 시편 여기저기 넘쳐
예수님 주기도부터 욕망 조정하는 내용 아닌가
성에 대한 신학적 견해, 종말론적 소망도 지녀
‘기도, 욕망, 성(gender): 오늘을 위한 삼위일체론 재해석(Prayer, Desire, and Gender: Re-thinking the Doctrine of the Trinity for Today)’이라는 주제로, 제12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이 25~26일 양일간 서울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명예교수인 여성 신학자 사라 코클리 박사(Sarah Coakley)가 초청돼 3차례 강연을 진행했다.
25일 오전 첫 강연 ‘기도, 욕망, 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탐구(Prayer, Desire and Gender :Exploring Their Relation Afresh)’에서 그는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3가지 주제가 성서와 교부시대의 증언 속에서, 삼위일체론 발전의 초기 역사 가운데 중요한 맥락으로 함께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사라 코클리 박사는 “하나님에 대한 욕망(갈망)이라는 기본 주제는 시편 여기저기에 넘쳐난다. 게다가 이 주제는 예수님이 기억하시고 인용하시는 시편들 속에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새겨져 있다”며 “예수님이 ‘욕망’을 소홀히 하셨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오해”라고 주장했다.
코클리 박사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은 항상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대한 결정과 선택이었기 때문”이라며 “극히 값진 진주, 밭에 감추인 보화, 잃어버린 동전 등 모든 천국 비유들이 욕망의 선택들과 우선순위들에 대한 비유 아닌가? 참으로 주기도 자체가 기본적으로 욕망을 조정하는 내용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사는 “누가복음에 따르면, 유월절 식사는 예배 속 성스러운 합일에 대한 갈망의 절정이며, 주님의 만찬이 이미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God-in-Christ)’과 관련해 우리의 욕망이 점검되고 분류되는 장소이라는 점을 함의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그렇게 됐다”며 “돌아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이러한 점검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뭔가를 제시하신다. 성령 안에서 성부에게 드리는 자신의 최고의 기도인 성만찬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라 코클리 박사는 “초기 몇백 년에 걸쳐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많은 초기 교부들이 에로스에 관한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가르침들을 아가페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필연적 대립 개념으로 여기지 않은 것은 놀랍지 않다”며 “오히려 두 가지가 상호적으로 풍성한 비판적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마치 니사의 그레고리오스가 표현하듯, 에로스는 ‘갈망’ 안에서 확장된 사랑(아가페)”이라고 했다.
코클리 박사는 “‘욕망의 본질(What desire is)’은 결국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참여와 은혜로 우리를 그 안에 떠올리기 위한 끝없는 ‘신적 확장’이 존재한다”며 “계속되는 죄의 영향들로부터 우리를 은혜로 적합하게 정화하시고 재정향시키시는 분은, 인간의 모든 욕망들의 참 근원과 목적이신, 하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서술했다.
또 “‘(사회·문화적) 성(gender)’에 관한 주장에서 중요한 함의들을 지니는 아레오파기테스 위(僞)-디오니시오스의 ‘하나님-안에 있는-욕망(desire-in-God)’ 개념은, 기도 중 성령의 역할에 관한 사도 바울의 통찰들을 통해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미 제시됐다”며 “기본적으로 기도가 우리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욕망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리고 예수님과 바울은 ‘성(sex)’과 ‘성(gender)’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사라 코클리 박사는 “오늘날 글로벌 세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조직신학자로서, 욕망, ‘성(sex)’, 섹슈얼리티(sxuality), ‘성(gender)’과 관련된 문제들에 새롭고 시급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조직신학이 신뢰성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세계가 이러한 주제들에 관한 논쟁들로 분열돼 있고, 이 분야의 세속적 통찰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중대하고 예언적인 책임이 기독교 신학에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했듯 욕망이 하나님에게 뿌리가 있다면, 이는 성(sex)보다 더 기본적 범주이다. 반면 인간적 ‘성(sex)’은 신체성에 기인하므로,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영역을 통해 2차적으로만 복되다(창 1:27-28). 저는 이 분석을 ‘성(gender)’의 문제로, 즉 어떻게 우리가 규범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원성’으로 세계를 상징적으로 분할하는지에 관한 문제로 확장시킬 것”이라며 “그리고 욕망이 성(gender)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점을, 더욱이 성(gender) 이슈가 있는 오늘날 세속적 문제를 푸는 참된 열쇠가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와의 신학적 연관성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고 했다.
코클리 박사는 “성(gender)이 여자에 대해 종속적 표현들로 고정돼 있다고 여기는 보수적 관점과, 고정된 성 ‘이원성’이 탈-근대적이고 세속적으로 거부되는 점 사이에서 우리는 교착 상태에 빠진 듯 보이지만, 성경적 근거들을 보면 상황은 더 복잡하고 낯설다”며 “가장 대담하고 예언적인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 모두가 어떤 다른 대안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gender)에 대한 또 다른 접근, 즉 제3의 접근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속적 성(gender) 이론은 무의식적이거나 부지중에 자주 복제되는 ‘문화적 추정들’을 어떻게 변화·변혁시킬지 고뇌하는 반면, 기도와 금욕적 실천을 토대로 한 관상신학(a contemplative theology)은 가장 먼저 창조, 타락, 구속의 신학적 개념들을 원하는 대로 사용한다”며 “이 신학적 개념들은 성(gender)의 수행 사항들을 절망과 희망 사이 다양한 실존적 가능성들 안에 놓는다”고 풀이했다.
또 “성(gender)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또한 종말론적 소망을 지닌다. 즉 경건한 허구 또는 소원-성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의 사건들에 확고하게 근거하는 소망을 지닌다”며 “주어진 의미로서 성(gender)은 제거될 수 없다. 그러나 이 견해에 따르면, 성(gender)은 불변은 아니다. 이 또한 도상에(in via) 있다. 타락된 것이 구속될 수 있고 성화될 수 있고,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해(sacramental)질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gender)은 단지 염색체 중 억압 유전자의 자리(locus)인 것이 아니라, 체화된 구원의 잠재적 수단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성(gender)은 관상적 금욕주의에서는 다르게 이해된다. 관상적 금욕주의는 경건의 실천을 통해 거룩한 실재, 즉 셋으로 계시되는 (이로써 어떤 둘을 변혁시키는) 실재를 만나고 수용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며 “오직 하나님께서 성(gender)이 중요하기를 바라시고(desires),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형상 안에서–신비스럽게–성(gender)을 재형성하시기에,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성(gender)의 ‘차이들’에 대해 상징적·신학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삼위일체와 성육신)이 주장하는 ‘차이(difference)’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며 “하나는 삼위일체로서 하나님(God-as-Trinity) 안에 있는 세 위격들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아주 다른 ‘차이’, 바로 존재론적 차이를 보여주는 근본적인 구분”이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에 대해 “성육신이 이러한 차이를 극복했지만, 아직 말소된 차이는 아니다. 기독교 전통은 바로 후자의 차이에 근거해 성(gender)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유혹을 받아왔다”며 “즉 ‘남성성’을 하나님에게 맞추고 ‘여성성’을 세상에 맞춘 다음,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시켜놓고 암암리에 여자의 지위가 ‘온전히’ 회복된다는 생각을 약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코클리 박사는 “최근 서양 일부 여성 신학자들은 그 반작용으로, 삼위일체적 ‘차이-안에서의-동등성’을 모방하기 위해 전자의 차이에 근거한 성(gender) 이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성서와 전통의 종합적 권위에 의해 분명하게 인정되지 못했다”며 “세속적 성(gender)의 ‘고정된’ 타락한 차이점들은 세밀(precisely)하게 중단하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의해 변화되며, 성령은 성(gender)을 삼위일체적 정화와 변혁으로 이끌어 가신다”고 했다.
결론에서 그는 “기도와 욕망, 성의 영적 관계가 비판적으로 회복되면, 현대의 삼위일체적 욕망존재론(ontology of desire), 즉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본성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간 욕망의 근원이요 목표라고 보는 입장을 위한 충분한 자원들을 제공할 것”이라며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인간의 한층 더 연약하고 종종 그릇된 욕망들을 일깨우고 훈계하고 정화시키며, 고통스런 성장의 여러 단계를 통해 어떻게 성자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시는지 알려준다”고 했다.
이어진 두 번째 강연 ‘기도, 삼위일체론의 기원으로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the Origins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as Prayer)’에서는 기도의 관점에서(특히 로마서 8장과 그 수용의 관점에서) 삼위일체론의 성경적·역사적 근원을 탐구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이 ‘기도에-근거한’ 통합적 시각이 왜 초기 공의회 논의들에서 무시됐는지 질문했다.
26일 ‘기도, 욕망, 젠더: 고전적 삶의 일체론의 과거와 현재(Prayer, Desire and Gender in Classical Trinitarianism and Today)’라는 제목의 세 번째 강연에서는 이미 성취된 삼위일체적 ‘정통 교리’ 시대로부터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적 신학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했다. 이를 통해 “참으로 욕망은 성(gender)보다 더 근본적이다. 그래서 성령-안에서의-기도는 중요한 현재적 함의들을 지닌 결론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고 주장했다.
사라 코클리 박사는
2007-2018년 케임브리지대학교 노리스-훌스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명예교수이다. 이와 함께 성 앤드류스대학교 명예교수(2018-2020), 옥스퍼드 오리엘대학의 평생회원, 호주 가톨릭대(멜버른 & 로마)의 방문연구 교수 등을 맡고 있다.
코클리 박사는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자원봉사교사로 얼마 동안 보냈다. 그런 후에 케임브리지대 학부생이 되었다. 그곳에서 신학 학위(B.A./M.A., Ph.D.)를 받고, 영국 하크니스 장학생으로(1973-1975) 하버드대로 가서 신학 학위(Th.M.)를 받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 부임 전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교수로, 에드워드 몰린크로트 주니어 신학 교수로 가르쳤다(1993-2007).
2012년에는 애버딘대학교 기포드 강좌에서 강연을 했고, 이 강연은 곧 <다시 희생: 진화, 통합, 그리고 하나님(2020)>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조직신학과 종교철학 분야에서의 코클리의 활동의 특징은 학제간 연구에 대한 지대한 관심, ‘영성’과 신학의 일치에 대한 든든한 헌신, 그리고 성(gender), 인종, 계층과 같은 현대의 긴급한 쟁점들에 관한 심대한 신학적 분석 제시 등에 있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출판들은 다음과 같다: 『권력과 복종: 철학, 영성, 젠더』(2002); (공편) 『영성: 서구 기독교의 하나님』(2012); (편집) 『신앙, 합리성과 열정』(2012); (공편) 『진화, 게임과 하나님: 통합의 원리』(2013); 『하나님, 성 그리고 자아: 삼위일체론』(2013). 이 책은 네 권으로 기획된 조직신학의 I권이다. 『신(新) 금욕주의: 성, 젠더, 그리고 하나님 탐색』(2015)은 코클리의 조직신학 체계에서 도덕적·금욕적 시각의 내용을 구성하는 글들 전집이다.
사라 코클리는 영국 일리 교구 성공회 사제이고, 이전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와반, 옥스퍼드 리틀모어 교구 부사제로 활동했다. 현재는 일리 대성당에서 협동 사제 및 명예 사제로 활동한다. 보스톤에 있는 감옥과 종합병원에서 목회했고, 옥스퍼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도 사역했다. 2019년 가을 미국으로 돌아가면, 워싱턴 D.C. 교구 협동 사제로 목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