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성민 칼럼] 우리는 모두 같은 편입니다
수년 전, 어느 토요일 오후 막내가 나에게 학교에서 음악 발표회가 있으니 학교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음악회에 참여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학교로 갔다. 그늘도 없는 야외에서 다른 부… 
[정기정 칼럼] 중단할 수 있는 힘은 영광스럽습니다
한 저녁, 청년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담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밖이 시끌해졌습니다. 이웃 집에서 문제를 일으킨 한 남자가 경찰을 피해 저희 집 담을 넘어 차고로 숨어든 것이었습니다.… 
[이장렬 칼럼] 회복의 복음 IV (요21:9-11)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후에 제자들을 거듭 찾아주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두 번 대면한 베드로와 동료들은 함께 철야 고기잡이 작업에 나선다. 그러나 노동 무가치의 경험만 남는 듯했다. 밤새 허탕만 쳤… 
[김병태 칼럼] 죽음의 문턱에서
두려움도 아니다. 불안함도 아니다. 그런데 마음이 착잡했다. 나의 운명의 시간이 정해졌다. 밤 12시. 드디어 밤 10시가 되었다. 아내는 옆에서 잠을 잔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니 안쓰럽다. 
이스라엘신학 정립의 필요성과 유용성에 관하여 (2)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야웨의 특별한 파트너로서 이스라엘이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성경 안에서 살펴보자. 구약의 몇몇 전승들 안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소명과 목표의 일부로서, 
서병길 목사의 영성으로 가는 성지순례 이야기(28)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할할 때 단 지파는 블레셋 평야 부분(소라와 에스다울과 이르세메스와 아얄론, 에그론, 욥바, 맞은편 경계)을 할당받았지만 당시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지 못 
나실인의 사명 (사사기 16:15-30)
삼손은 세상에 태어날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면서 교만해지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고 타락하는 폐단들을 많이 봅니다. 삼손이 세상에 생겨날 수 없는 사람이었… 
[권 준 목사의 아침편지]섬기고 축복하라
지난 40일 간 형제와 함께 "세상을 감동시키는 블래싱 40일"의 일정을 지내왔습니다. 특별히 지난주는 3,000명 이상의 성도들이 교회에서 함께 국밥을 먹는 엄 
[장홍석 칼럼]냉정과 열정 사이
13,231... 이 숫자는 서장훈이란 사람이 15년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넣었던 골의 점수입니다. 이제 방송인이 된 서장훈은, 얼마 전 '말하는 대로'라는 프 
[강준민 칼럼] 사랑하면 마음으로 봅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며 40일 동안 금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생긴 절기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 주일을 앞두고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예수님… 
[민종기 칼럼] 이단이 주장하는 계시록의 “두 증인”
계시록은 특수한 문학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의 방법을 조심스럽게 익혀야 합니다. 특히 상징으로 비유된 말씀이 많기 때문에 해석은 지극히 주의하여야 합니다. 여러 이단들은 이 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 
[정기정 칼럼] 어느 정도로 부자이면 천국에 가기 힘든가?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과연 천국과 거리가 먼 것인가요? 과연 얼마나 부자이면 천국에 들어가기 힘든 걸까요? 
배우자에 대한 구체적 기도를 멈춰라… 왜?
우리는 가끔 어떤 말이나 교훈에 대해, 성경보다도 더 권위 있고 신빙성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에 담아두고 명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들은 크 
[송재호 칼럼] 사순절의 묵상 회개(눅3:3-14)
이제 부활절을 2주 앞둔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면 회개이다. 회개라는 단어는 특별히 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이다. 주위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경험이 있으십니까?" 물어 본… 
섬기는 자로서의 나사렛 예수(II)
예수는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예로서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 Le Bon Samaritain)의 비유(눅 10: 30-37)를 가르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