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지 않는 이유들을 따라가 보면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1) 바빠서 기도하지 않으면 소명의 확신이 떨어지게 되어 우선순위가 망가진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다(행 6:4).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다른 바쁜 일들로 대체하게 되면 시간을 질이 아닌 양으로 다루게 되어버린다.
2) 기도하지 않으면 거룩과 멀어진다.
기도 없는 사역은 동기가 사라진 행위가 되어 겉으로는 거룩해 보여도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들로 전락한다.
기도가 없는 인생은 말이 있어도 능력은 없다.
말뿐인 거룩이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3)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진다.
그분이 나를 떠나서가 아니라 내 편에서 관계가 소원한 것처럼 경험되기 시작한다.
마치 하나님을 피해서 어딘가에 숨을 수 있을 듯한 거리감을 가져다준다.
기도를 멈추면 심령이 예배와도 멀어지고 모든 거룩한 행위들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4)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의지하게 된다.
기도를 통한 영적 호흡이 없는 곳에서는 숨막혀 하는 영혼의 발악이 세상의 지푸라기들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기도로 모든 것을 구해서 최선의 것을 얻게 되는 특권을 저버린 이상, 어떤 것을 의지해도 허망할 뿐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5) 기도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기를 높이게 된다.
기도를 등한시하는 성도는 반드시 '나'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지 않는 한 시야는 말할 수 없이 좁아진다.
기도가 사라진 심령은 언제나 자기밖에 모르는 영적 어린아이가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6)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나타내게 된다.
성령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자아의 세속적 욕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7) 기도를 떠난 성령의 사람은 영안을 잃고 삼손처럼 세상의 굴레에서 쳇바퀴를 돌리다 비참하게 복수를 외치게 된다(삿 16:21-28).
기도가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임한다.
고난 없는 영광은 가짜다.
죽음 없는 부활은 거짓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우리의 예수님은 새벽에도, 바쁜 중에도, 억지로라도, 습관을 가지고 기도하셨던 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도 늘 기도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줄 알고도 기도할 정도였다. 의인은 기도했다.
기도꾼은 용맹하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 죽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정을 골방에서 먼저 진행한다.
골방 고향으로 들어가라. 사지에서 사기를 드높여라.
죽음의 그림자들 앞에서 무서워하지 말고, 천국의 그림자를 찾아 기도의 방석을 펼쳐라.
세상의 모든 바벨론 앞에서 기도의 뜻을 정하고 의미 없는 죽음으로부터 몸을 지켜라.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늘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신 분이 그러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들은 더욱 기도해야 한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성도의 기도도 의인의 기도이다(약 5:16).
[출처: www.godtal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