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다. 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당선 기준인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대형 주 플로리다에서 접전 끝에 클린턴을 이긴 데 이어 오하이오에서도 승리하는 등 초반부터 우세를 이어갔다.
플로리다와 오하이오는 펜실베이니아와 함께 선거인단 67명이 걸린 3대 경합주로 꼽힌다. 1960년 이후 이들 3개 주 가운데 2개 주에서 이기지 못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다.
백인 기독교인들의 지지
주류 정치인이 아닌 트럼프의 당선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과 분노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NBC 방송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남성, 중노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또 클린턴 후보에 대한 반감이 강한 백인 기독교인의 표가 트럼프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와 공공종교연구소(Public Religion Research Institute, PRRI)는 공동으로, 자신을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백인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기도 했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백인 기독교인들은 후보의 신앙상태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후보가 강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백인 기독교인은 49%였는데, 이는 지난 2011년 대선 당시 64%였던 것과 비교해 무려 15%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또한 절반에 해당하는 49%가 '트럼프가 종교적이다'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비종교적 이슈 부상
이처럼 과거에 비해 후보의 신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미국의 백인 기독교인들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건 비종교적인 이슈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라이프웨이리서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선거 이슈는 경제 호전(26%)이었으며 두 번째는 국가안보(22%)였다.
후보 개인의 성품(15%)과 연방대법원 판사 후보(10%)가 뒤를 이었고 종교의 자유(7%)와 이민정책(5%), 낙태허용 여부(4%) 등 과거 교회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크게 떨어졌다.
다만 목사들의 경우에는 후보의 성품(27%)이 가장 큰 관심사였고, 다음이 연방대법원 판사 후보(20%), 종교자유(12%), 낙태(10%) 순으로 나타났다. 경제(6%)와 안보(5%), 이민(2%)은 낮은 순위를 보였다.
트럼프 “기독교계에 많은 빚 지고 있다”
앞서 멀티캠퍼스 프리채플교회 담임이자 트럼프의 복음주의위원회 자문 역할을 맡아온 젠센 프랭클린 목사는 조지아 게인즈빌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위원회와 최초로 가진 회의에서 10년 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고백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 트럼프는 장로교 배경에서 자라온 것과 아비지가 가족들을 빌리그래함 크루세이드에 데리고 갔던 일을 회상했다. 트럼프는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 집무실 내의 설교자가 아닌 지도자”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한편, 지난 6월 21일 벤 카슨 박사와 토니 퍼킨스 박사 등 보수·복음주의 지도자들 500여 명은 뉴욕 시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비공개 회담을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나는 기독교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나는 살면서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중에서 복음적 기독교인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이곳에 선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해야 할 일은 모든 이들이 한 특정 인물에게 투표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지도자들은 기독교와 복음주의자들을 파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쟁자 클린턴 후보를 향해서는 "그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클린턴은 기독교를 파멸시키는 지도자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 또 "클린턴의 당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동성애’ 등 미국의 미래는?
트럼프가 당선됨에 따라 보수적인 연방대법관을 임명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연방 상원 인준을 거쳐 세워지는데, 9명의 종신직 연방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미국 내 최고 사법기관으로 미국 사회의 방향을 정하는 판결들을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6월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다. 이 판결 후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지난 2월 낙태와 동성결혼을 반대했던 보수 성향의 안토닌 스칼리아 연방대법관이 사망하면서 현재 1개 자리가 공석이다.
연방대법관 중 루스 긴즈버그(83세), 안토니 케네디(80세), 스티븐 브라이어(78세)가 고령이라 조만간 사망이나 은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는 현재 공석인 연방대법관 한 자리를 비롯, 많게는 4명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
현재 연방대법관 8명은 보수 4명, 진보 4명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연방대법관의 비율이 높아지면 판결 내용도 달라지고, 이에 따라 미국 사회의 방향도 보수적으로 흐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