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대명이라는 말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20) 혹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말씀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대명이 꼭 하나뿐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구약성경에서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대명 아닌가. 그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사랑대명의 선포였다. 이 사랑대명은 쉐마(신6:4-9)에 근거하여 교육대명이라고도 부른다. 인간교육의 기초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결교회에서는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는 말씀을 성결대명이라 이름 붙인다. 그리고 사회봉사기관들은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섬김의 대명으로 삼는다.
여기에 목회대명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기 전에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를 지명해 부르셨다. 그리고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물으셨다.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도 예수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지를 확인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 수준은 주님이 아시지 않느냐고 얼버무린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셨다. 실로 목회대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목회대명을 선언하신 배경은 교회를 설립하실 계획과 맞물려 있다. 예수님은 이미 교회를 세우실 것을 여러 가지로 암시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것이고 결혼잔치집이 그것이고, 양의 우리가 그것이고, 포도원이 그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뒤에는 곧바로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명백하게 선언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 가운데는 악한 목자들이 많이 있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않는도다.” (렘34:3). 이런 책망이 구약성경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양들을 잡아먹는 데만 혈안이 된 악한 도둑놈들이라고 가차 없이 질타하셨다. 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이 좋은 목자의 표준이라고 선언하셨다. 좋은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표준을 제시하셨다. (요10:11).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셨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목자였다. 그는 양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자나 곰과도 목숨을 걸고 싸웠다. (삼상17:34-37). 그리고 시편 23편 곧 ‘야훼는 나의 목자’라는 명시를 남겼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바로 그 혈통을 타고 나셨다. 그래서 이 땅 위에서 영혼구원, 교회설립, 제자훈련을 하시면서 항상 그 의식 속에 착한 목자가 될 결단을 가득 가득 채우셨다. 그리고 목회 대헌장을 후대 목자들에게 선물로 남기셨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대헌장이다. 베드로는 그것을 뼛속 깊이 새긴 까닭에 예수님을 목자장(벧전5:4)으로 모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
지금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이 무엇일까? ‘예수님의 양을 먹이라’는 목회대명, 그 양들을 위하여 단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라는 목회 대헌장의 실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