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교수가 쓴 '어린이 이슬람 바로 알기'는 조선일보 좋은 책 선정도서, '어린이 도서연구회', '우리독서운동본부', '책읽는교육사회실천회의' 추천도서로 분별력이 없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많이 읽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90쪽에는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표현은 이슬람 사람들이 싸움을 좋아하고 강제로 이슬람을 전파했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서양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만들어 낸 말일뿐입니다. 꾸란에는 힘에 의한 이슬람 전파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꾸란에서는 '종교에 어떤 강요도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말이 서양 사람들이 적개심으로 만들어 낸 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들이 이슬람의 치명적인 약점을 덮으려고 어린아이들에게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이슬람도 처음에 메카에서 포교하여 교세를 구축하기 위해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라며 유화적이고 관용적인 평화정책을 폈다. 그러나 나중에 메디나로 옮겨 자체 세력이 커지고 강한 정치·군사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는 계시가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계시로 바뀌게 되었다.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라"(꾸란 9:5), "무슬림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꾸란 9:123, 김용선 역). 이런 계시에 붙여진 별명이 있는데 소위 '칼의 계시'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의 계시는 후에 칼의 계시들로 취소가 된 것이다. 먼저 계시가 나중 계시에 의해 취소될 수 있는데, 이것이 이슬람 특유의 '만수크 교리'다. 인터넷 주소창에서 'thequran.com'을 치고 들어가 'Read The Quran'을 클릭, 4가지 번역본을 선택한 다음 앞서 언급한 꾸란 2:256절을 치고 'Display'를 클릭하면 붉은 테두리로 두른 해당 구절이 뜨면서 "이 구절은 9:5절에 의해 취소된 구절임"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을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모를 리 없지만, 그는 목적을 가지고 이 같은 거짓 속임수의 말을 어린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이슬람의 계시를 지적받을 때마다 이미 취소되어 효력이 없어진 꾸란 2:256절을 인용하면서 평화의 종교라고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는 무슬림의 예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사실은 이슬람의 신자들의 많은 경우 이 구절의 취소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고 있는 경우도 이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역사학자 알 타바리와 이맘 알 와키디의 말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죽고 초기 무슬림 정복이 시작된 후 4년간 기독교인 33만3천 명이 죽임을 당했고, 그 후 10년간 추가로 10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칼의 계시 후에 그에 따른 이슬람의 정복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슬람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이 계시와 같이 살해되고 정복당했음을 역사가 증언해주고 있다. 따라서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은 이슬람의 정체를 잘 드러내는 지워버릴 수 없는 불변의 이슬람 상징어이다.
'이슬람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의 본산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에 그려져 있는 심벌을 보라. 이슬람의 신앙고백과 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슬람의 머리'로 불리는 이슬람신학의 본산 이집트가 낳은 무슬림형제단의 심벌마크에도 꾸란과 함께 쌍칼이 그려져 있다.
꾸란에 164개의 폭력적인 계시와 이 같은 상징들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 저자가 진실을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Islam)'의 뜻이 정말 복종과 평화인가
이희수 교수는 이어서 그의 책 92쪽에서 "기본적으로 종교와 폭력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원하거든요. 종교로서의 이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도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중략..그러나 이슬람 교리는 평화를 강조합니다. '이슬람'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평화입니다"고 말한다. 그는 이슬람 교리가 평화인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슬람의 뜻이 평화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알아보자.
이슬람(Islam)은 아랍어 어근인 원 자음 's-l-m'에서 파생된 'aslama'란 동사에서 기원된 말로 '복종하다'고 뜻이다. 이는 이슬람 종교의 특성을 한 마디로 잘 대변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이슬람 측에서는 이슬람(Islam)은 또한 'salaam'(평화)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평화의 종교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랍어는 어근이 되는 원 자음에 모음부호를 붙이는데 그 조합에 같은 어근에서 다양한 의미의 파생어를 만들 수 있다. 아랍어로 평화의 뜻인 'salaam'은 '안전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salima'(to be safe)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 이슬람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어근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 신학자 중에도 이슬람이 복종과 평화의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래에 예시한 아랍어 보기는 이슬람 측에서 이슬람의 뜻이 평화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 발표한 것이다. 아랍어 평화 'salaam'(어근 #1)과 이슬람 'Islam'(어근 #2)이 각각 's-l-m'과 'a-s-l-m'이라는 다른 어근에서 파생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그리스 무슬림 사이트인 www.greekmuslim.wordpress.com에서 "Islam does NOT mean peace" 참조).
그들마저도 '이슬람'(Islam)의 본래의 뜻은 '복종'뿐이라고 주장한다. 무슬림들이 이슬람 교리를 받아들이고 알라에게 절대복종하는 결과로서 그들만의 신앙을 통해 평화를 누릴 수는 있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슬람 종교의 이름을 평화(Salaam)라는 말의 어원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다. 세 글자의 원 자음에서 100가지 파생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슬람의 뜻이 복종을 포함하여 100가지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태동 시부터 오늘날까지 이슬람의 역사와 경전인 꾸란을 읽어본 사람은 이슬람이 결코 평화의 종교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상투적으로 "이슬람은 평화와 사랑과 용서의 종교이다"라고 말한다. 이슬람의 폭력성을 감추고 점증하고 있는 테러행위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슬로건은 특히 9.11 테러 이후에 강화된 전적으로 이슬람의 홍보 전략에서 온 것이다.
이런 책들이야말로 이슬람의 어린이용 포교전략에서 출판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먼 훗날을 내다보고 우리나라의 어린 영혼들을 잡기 위해 전략적인 포석으로 출판되어 읽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단순히 소개하는 정도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짓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지식을 갖게 하는 데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바로 가르쳐 경계시켜야 한다.
한장총 이슬람대책위원회 상임총무 강승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