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결혼이 무엇인지’가 사라진다면?
이번 회기 중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을 때 가장 타격을 입게 될 존재는 바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가 될 것이란 예측에는 큰 이견이 없다. 2013년에는 결혼보호법(DOMA)의 3개 조항 가운데 세 번째 조항인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 간의 법적 결합”이란 내용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면, 이번에 다루는 내용은 결혼보호법의 두 번째 조항으로 “각 주는 타주에서 이뤄진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결혼보호법의 두 번째 조항까지 폐지되고 나면, 첫 번째 조항은 결혼보호법의 명칭에 대한 설명일 뿐이므로, 사실상 결혼보호법이 완전히 폐지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큰 사건이다. 아예 결혼이 무엇인지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수 천년 동안 자연스럽게 이뤄져 왔던 이성 간의 결합이 결혼이라 인정되겠지만 결혼이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고 규정했던 법이 폐지된다는 말은 누가 누구와 결혼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부되고 붕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 기독교계에서는 결혼의 정의가 사라지고 나면 한 남성과 한 남성(한 여성과 한 여성)을 넘어서 한 남성과 여러 남성, 한 남성과 여러 여성, 한 남성과 사람이 아닌 그 무엇 간에도 결혼이 가능해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종교자유와 평등권 비중 따라 희비 크게 엇갈려
교회의 경우는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태평양법률협회(Pacific Justice Institute)의 브라이언 박 변호사는 “동성애자들은 동성 간에 결혼을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향해 반드시 제동을 걸게 된다”고 경고한다.
이번에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예측된다. 먼저는, 현재처럼 각 주가 결혼에 대해 정의할 자율권이 있으며 타주의 결혼을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인 판결이다.
반대로 동성결혼자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게 될 경우엔 또 두 가지로 방향이 갈린다. 동성결혼자가 이성결혼자와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정헌법 14조의 평등권이 수정헌법 1조의 종교자유와 상충될 때 종교자유에 비중을 둔다는 판결이다. 이런 방향으로 판결이 나면,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더라도 교회는 종교자유에 근거해 동성결혼 주례나 예배당 대여, 성소수자 고용 등에 있어서 거부할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으로 연방대법원이 종교적 이유로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개인에 대한 인권 침해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동성결혼을 평등권이나 인권의 문제로 해석하고 종교자유와 선을 긋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교회는 마치 피부색에 의해 사람을 차별했던 인종우월집단과 마찬가지로 성적 지향성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집단으로 매도되고 처벌받게 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제임스 돕슨 박사, 사무엘 로드리게즈 목사, 리차드 랜드 박사 등은 최근 한 성명에서 “종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을 포함해 어떤 벌금이나 처벌도 감수할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교회들도 법적 대응 준비해야
그러나 판결의 방향과 관계 없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종교자유 관련 법률단체들은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이 최소한의 법적 대안을 마련하라 조언하고 있다. 바로 교회의 헌법, 정관, 내규에 이 문제에 대한 법적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다.
먼저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은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와 함께 “Protecting Your Ministry From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Lawsuits”를 발간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와 예문까지 수록된 이 책은 윤리와종교자유위 웹사이트(https://erlc.com/store/product_detail/18876)에서 무료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태평양법률협회도 교회가 교회 헌법이나 신앙고백, 정관, 내규에 반드시 삽입해야 할 내용을 영어와 한국어 번역본으로 정리해 보급하는 한편, 전문 변호사들이 교회의 헌법이나 정관을 무료로 검토해 주고 있다.
법 전문가들은 “동성결혼에는 교회를 못 빌려준다”고 하면 소송될 수 있고 소송이 시작되면 거의 대부분 패소한다고 본다. 다만 이번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헌법 차원의 위법이냐, 주나 시의 반차별법 차원의 위법이냐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동성애자들이 결혼하기 위해 예배당을 빌려 달라는데 “동성결혼은 죄”라고 말하면 증오범죄자로 취급될 수 있고 트랜스젠더가 교회에 직원으로 지원서를 냈는데 성적 지향성 때문에 취업을 거절하면 교회는 면세혜택을 박탈당하고 벌금을 물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정관 등에 성적 지향성에 대한 근거를 명시해 놓으면 종교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 위험 부담이 상당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태평양법률협회가 제안한 교회 헌법이나 정관 예문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결혼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고 실시되어 왔다. 교회는 결혼을 남자와 여자 간의 일생의 헌신의 언약이라고 정의한다. 교회는 시민 정부에서 인가하는 두 사람의 연합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그 연합이 오직 현 교회 헌법(Articles of Faith)에 나타난 결혼의 정의와 일관성이 있을 경우에만 원칙 기준에 맞는 진정한 결혼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Marriage has been instituted by God. This church defines “marriage” as the exclusive covenantal union of a man and a woman in which such union is a lifetime commitment. A civil government’s sanction of a union will be recognized as a legitimate marriage by the church only to the extent that it is consistent with the definition of “marriage” found in these Articles.”
이런 정관을 보여 준 후, “동성결혼은 우리의 신앙 원칙과 맞지 않고 동성결혼식에 교회를 빌려주는 것은 교회 헌법에 어긋나기에 빌려 줄 수 없다”고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종교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 장소에 대해서도 구체적 명시가 필요하다. 태평양법률협회가 제안하는 내용은 “교회 사유지에서 결혼 예식을 진행하는 성직자들은 해당 교회와의 고용 관계 여부를 불문하고, 해당 교회의 교회 헌법에 동의해야 하며, 이와 일치된 언행을 수행해야 한다”고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또 “이 결혼 정책 요강에 나타난 절차들을 이행을 위해 해당 교회에서 임명된 성직자는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하여 요청된 행사가 교회 시설들의 사용을 요하거나 교회 사유지에서 행해지는 것을 요할 때 한 명 혹은 둘 다의 예식 신청자들이 신성한 결혼의 결속을 이루고자 하는 데에 교리적, 도덕적, 혹은 법적으로 현저히 사유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요청된 행사에 해당 교회의 시설이나 사유지의 사용을 거부하는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돼 있다. “Clergy officiating marriage ceremonies on church premises, whether or not employed by the church, shall affirm their agreement with the Articles of Faith and shall conduct themselves in a manner that is consistent therewith. The clergy assigned by the church to implement the procedures contained in this Marriage Policy may, in the minister’s sole discretion, decline to make church facilities available for, and/or decline to officiate at, a ceremony when, in the minister’s judgment, there are significant concerns that one or both of the applicants may not be qualified to enter into the sacred bond of marriage for doctrinal, moral, or legal reasons.”
특히 태평양법률협회는 목사 청빙, 직원 고용, 임직자 선출 등에 있어서도 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 경고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고용 및 임직 전 “도덕적 삶이 교회의 신앙 고백과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내용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만약 성소수자가 교회에 취직하고자 할 때, 혹은 교회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커밍아웃을 했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해고될 수 있는 사유도 교회의 신앙고백에 어긋날 경우, 마약 복용이나 범죄의 경우, 책임이 결여된 경우, 당회의 결정을 무시한 경우, 교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등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
비단 피고용인뿐 아니다. 한인교회는 교회를 방문해 등록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등록교인이 되어 공동의회 참석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의 성도로 멤버십을 갖기 위해서는 교회의 신앙 고백과 치리에 절대 동의하겠다는 서면의 약속을 받아놔야 소송으로부터 보다 안전할 수 있다.
현재의 한인교회는 사실상 이런 문제에 무방비 상태라 볼 수 있다.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경우는 교단 헌법이 결혼과 성적 순결 등을 명시하고 있기에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이 교단 헌법의 언어가 법정에서 효력을 갖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태평양법률협회의 케빈 스나이더 변호사는 “교회 헌법이 결정적인 법적 보호 장치로서 역할 하기 위해서는 교회 헌법이 관련 법률 조항들의 언어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법률 조항들의 언어 혹은 그 언어의 의미를 포함할 때 그 언어가 규정해주는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교단법이 이런 면에서 부실하다면 교회 차원에서 반드시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야 하며 독립교회라면 더욱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교단이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상황이라면 성적 지향성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의 법이 상위법인 교단법에도 불구하고 유효하다는 증빙도 필요하다.
대안 마련했다고 안심하긴 일러
이런 법률단체들이 교회를 돕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사실 정말 교회가 안전할 수 있을지는 법률 관계자들도 확신하지 못한다. 브라이언 박 변호사는 “캐나다에서는 동성결혼이 죄라고 설교하거나 심지어 동성결혼을 비판하는 성경 구절만 읽어도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태평양법률협회 한인코디네이터 주성철 목사는 “협회 변호사들에 따르면, 미국은 캐나다에 비해 발전된 종교자유법을 갖고 있기에 법적 보호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