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특수목적고 재지정 평가 기준점에 미달한 서울외국어고에 대해 '지정취소' 결정을 내렸다.
교육청이 특목고의 운영성과를 평가해 지정취소 결정을 내린 것은 2010년 관계법령 개정 이후 전국에서 서울외고가 처음이다.
또 외고 지정취소 결정은 외고 도입 3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서울외고는 학교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이게 됐다.
과거 입시 비리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영훈국제중에 대해서는 2년 뒤 개선계획 이행 여부 등을 따져 재평가하기로 했다.
◆ 서울외고 특목고 지정 취소 결정
교육청은 7일 서울외고의 특목고 지정 취소를 결정하고 교육부에 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올해 서울 소재 특성화중 3곳과 특목고 10곳의 운영성과를 평가했으며, 지정취소 기준점수(60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영훈국제중(영훈중)과 서울외고, 두 학교를 상대로 소명을 위한 청문 절차를 진행했다. 교육청은 서울외고의 특목고 지정 취소 결정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의견진술 기회를 줬지만, 일절 청문 절차에 응하지 않아 예정된 처분을 낮추거나 바꾸는 등의 특별한 사유를 찾을 수 없었다"며 서울외고 지정취소가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교육청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가운데 최종 결정은 교육부 장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교육감이 특성화중, 특수목적고, 자사고를 지정 또는 지정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을 장관의 동의를 구하도록 개정한 바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제60조 1항의 관련 법령에 따라 교육부 장관은 교육청의 지정취소 동의신청을 받은 날부터 50일 이내에 동의 여부를 결정해 교육감에게 통보해야 하며,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서울외고의 특목고 지정취소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서울외고의 특목고 퇴출 여부는 6월 말께 최종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정 통보는 2개월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교육감에게 동의 신청서의 보완이나 반려를 요청할 수 있어 경우에 따라 8월말 이후로도 늦어질 수 있다.
앞서 지난달 2일 서울교육청의 특목고 운영성과 평가 전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재지정 청문대상에 올랐던 서울외고는 학부모의 거센 반발 등을 이유로 교육청의 청문회에 세 차례 불참했다.
교육부 장관이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에 동의해 지정취소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경우 서울외고는 설립 22년 만에 일반고로 전환된다.
현 재학생은 특목고생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2016학년도부터는 학교 유형이 바뀌게 된다.
서울외고 학부모들은 이번 지정 취소와 관련해 타 외고의 점수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교육청에서는 "다른 학교의 평가가 서울외고 평가에 영향을 미친게 아니기 때문에 공개 불가능하다.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서울외고를 제외한 다른 외고들에 점수를 공개해도 되느냐고 질의했지만 모두 안 된다고 답했다"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울외고 학부모들은 또 교육부를 상대로 구명 운동에 나섰다.
◆ 서울외고 "교육부에 충분히 해명할 것"
서울외고 측은 이번 지정취소 결정과 관련 교육부에서 충분히 해명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 관계자는 "교육청이 2년 뒤 재평가 결정을 내릴까 봐 걱정했는데 최종결정은 교육부가 하므로 교육부에 가서 충분히 해명하겠다.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강배 서울외고 교장은 "(교육청은) 청문회에서 소명할 기회를 줬다고 하지만 우리는 평가 자체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봤다"며 "교육부에서 제대로 소명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재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장학관과 중·고교 교원 등으로 구성된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를 구성해 자문기구로 활용할 수 있다.
필요하면 이 기구가 서울외고 관계자를 불러 해명과 계선계획 등을 청취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일단 서울시교육청의 동의 신청서를 살펴보고 나서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청으로부터 공식적인 동의 서류를 받고 나서 규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교육청의 평가 절차가 전체적으로 적절하게 진행됐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외고가 특수목적고로서 목적 달성이 가능한지가 핵심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 칼자루 쥔 교육부의 결정은?
교육부는 지정취소에 동의 또는 부동의, 어느 쪽도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에 '퇴짜'를 놓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서울외고 학부모들이 평가 결과가 공정하지 않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는데다 학생들이 겪을 혼란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방송 인터뷰에서 "학교를 바꾸는 것은 학생들에게 너무 큰 충격"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많은 기회를 주면서 가급적 보완해주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구제 쪽에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을 뒤집는 것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서울외고에 대한 지정취소에 절차적 하자가 없음에도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교육자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지역 10개 외국어고등학교와 국제중·고등학교가 올해 처음 시행된 운영성과 평가를 모두 통과, 5년간 특수목적고와 특성화중으로 재지정됐다.
서울외고에 대한 지정취소가 번복되면 교육당국이 외국어고, 자사고 등 특목고에 대해 '봐주기'로 일관한다는 비판과 함께 특목고 평가 제도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다.
◆ '적극 개선 의지' 영훈고는 2년 뒤 재평가키로
교육청은 영훈국제중에 대해서는 2년 뒤 개선계획 이행 여부 등을 따져 재평가하기로 했다.
영훈국제중은 교육청 청문회에서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인 점 등을 인정받았다.
영훈국제중은 성적조작, 공금유용, 금품수수 등 '입시비리의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학교 재단인 영훈학원은 김하주 전 이사장의 지시로 2012학년도 입학전형에서 같은 법인 산하인 영훈초 출신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해 입학 편의를 봐줬다.
또 2012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비경제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에 지원했을 때에 이 부회장 아들의 성적을 조작해 합격시킨 사실이 알려졌다.
영훈국제중의 입시비리는 특목고, 국제중이 설립 목적을 위반한 경우 교육감의 판단으로 상시로 지정취소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러나 교육청은 "(영훈국제중은) 청문 절차 이전에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외에 추가로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발표했고, 청문회에도 평가 결과 미흡하다고 지적된 점에 대해 구체적인 개선계획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입시비리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영훈국제중을 마땅히 지정취소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마련한 개선책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에 발전의 기회가 되고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평가의 본래 목적과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또 "정상화 노력을 꾸준히 해와 2년 전과 현재의 영훈국제중은 판연히 다른 학교"라고 말했다.
입시비리나 회계비리는 바로 지정취소할 수 있는 사유이지만, 교육청은 "입시비리 부정만으로 지정취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령개정이 이뤄진 게 작년 2월인데, 영훈국제중의 입시비리는 2013년의 일"이라고 말했다.
◆ 진보교육단체, 영훈국제중도 지정 취소 요구
그러나 교육청이 영훈국제중의 지정취소 여부를 2년 뒤 다시 평가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정의당 의원과 진보성향 교육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고 "부정부패에 찌든 비리사학의 핵심인 영훈국제중이 기준 점수 미달을 받고도 2년 유예를 받은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유예를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대규모 입시비리를 저질러도 평가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좋지 않은 선례"라며 "앞으로 특목고와 자사고, 국제중은 입시비리나 금품수수 등 심각한 비리를 저지르고 설립 목적을 다하지 못해도 재지정 평가를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교육청의 이번 평가에서도 영훈국제중은 2011∼2014년 정기고사에서 선행 문제를 출제하는 등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정 의원은 지적했다.
진보성향의 교육단체 모임인 서울교육단체협의회도 즉각 성명을 내고 영훈국제중에 대한 교육청 결정에 반발했다.
협의회는 "영훈국제중은 입시부정 말고도 일반학교를 슬럼화하고 사교육을 초등학교까지 확산시킨 주범으로 지목돼왔다"며 "이번 결정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핵심 공약이었던 일반학교 살리기 정책이 사실상 막을 내린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또 "비리 특권학교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실망스럽고 분통 터지는 일"이라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