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자유주간 4일차인 29일 워싱턴DC 미하원의원 회관에서 열린 톰랜토스 인권위원회(Tom Lantos Human Rights Commission) 청문회에서 북한의 노동착취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이 있었다.
톰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인 차원에서 국제인권문제를 조명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으로 이날 청문회에는 탈북자 림일 시인이 자신의 쿠웨이트 노동 착취 경험을 증언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그렉 스칼라튜 미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존 시프톤 '휴먼라이이츠'(Human Rights) 아시아국장 등이 배석해 북한의 노동착취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함께 가졌다.
림일 시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쿠웨이트를 비롯한 해외 건설 및 공사현장에 대규모로 파견돼 집단생활을 하게 되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 당한채 월급을 모두 당국이 가져가고 있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규모는 약 2만 명으로 이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북한 당국이 외화를 한 해에 12억 불에서 23억 불을 벌어 들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 자리에서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한의 주민들에 대한 노동착취는 세계인권선언과 국제노동기구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노동규정 등 국제적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해외 근로자들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렉 스칼라튜 미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인력에 대한 노동 조건 개선 요구를 거부하면 북한 근로자의 해외 파견을 국제적으로 중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 당국이 국제 사회의 촉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또 미 의회가 제정할 북한제재법안에 북한 해외 근로자 문제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 시프톤 휴먼라이츠 아시아국장은 "의회가 나서서 미 국무부가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노동 착취를 중단하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이번 미 하원 톰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는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탈북자들이 워싱턴DC를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열렸다. 다음은 노동자 출신 탈북자 림일 씨의 증언.
저는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해외노동자로서 쿠웨이트에 파견됐는데 떠나기 전 김일성과 그 정책 체제를 선전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평양에 있던 제 회사는 저와 같은 북한 노동자 6백 여명이 소속돼 있었고 같은 일을 하는 회사가 2개가 있었는데 약 1800명이 노동자가 쿠웨이트에 파견돼서 일했다.
숙소는 걸프전 때 파괴된 학교를 썼다.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모든 교실에 붙어 있었다. 일하는 시간은 아침7시부터 저녁7시까지였다. 햇볕이 한 가운데 쬐는 가운데 목수로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은 12시 부터 1시까지 1시간이 주어졌다. 쿠웨이트 노동자들은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3시간씩 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우리는 1시간만 이용해야 했다.
저녁에는 문화생활을 했지만 그 시간은 1시간 밖에 안됐다. 일과 후에도 선전교육을 받았고 자아비판을 했다. 그리고 3일에 한번씩 야간작업을 했다. 북한 당국자들은 수령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일을 빨리 끝내라고 했다. 여기에는 누구도 싫다고 할 수 없다. 만일 거역하면 반역죄이기 때문이다. 15시간에 이르는 노동이 당연한 이유다.
잠시 주어지는 휴일에는 밀린 빨래를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런 휴일에도 일체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북한 노동자들은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제한돼 있다. 당시에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간첩들이 납치하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담당자가 하는 말이 쿠웨이트 현지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당에서 아직 돈을 주라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하지 못한다. 불만을 당에 표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른 노동자를 만났는데 1년 동안 단 한번의 월급도 받지 못하는 사정을 마찬가지였다. 쿠웨이트에 파견된 것이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 오로지 일만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 때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1997년 3월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평생을 살아 온 북한이 싫다고 했다. 김정일 정권에 세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남한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남한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했다. 한국 대사관에서 5일간 있는 동안 북한노동자들 앞으로 쿠웨이트에서 매달 550달러씩 월급을 지급한 사실을 알았다. 그 돈은 모두 노동당 외화관리 부서로 들어간다.
김정일 정권은 고액의 달러를 늘 요구했고 또 필요로 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전시돼 있는 태양궁전 유지하려고 천문학적 금액을 사용한다. 지금은 김정은에게 충성을 바친 대가로 고급 자동차와 아파트가 지급된다. 김정은은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외화를 엄청나게 필요로 한다. 지금도 20채가 넘은 호화 빌라가 있다. 이것을 관리하는데 한해 3억 불의 돈이 필요하다. 작년 한해만도 고급음식 등의 사치품으로 6억4천만 달러를 사용했다. 이것이 저와 같은 해외 노동자들이 외국으로 파견되는 이유이며 이렇게 북한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것은 엘리트 계층에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아직도 쿠웨이트에는 4천6백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돼 있고 전 세계에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나가있다. 이들이 한 해에 12억 불에서 23억 불을 벌어 들인다. 그들은 노예처럼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전혀 임금을 받지 못한다. 저는 지금도 가끔 쿠웨이트 동료들이 나타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 혼자만 탈북해서 편하게 살고 있느냐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것을 세계에 알려달라는 동료들의 꿈을 꾼다. 그들은 인권이라는 단어도 알지 못했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저는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에게 노예처럼 일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