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종교자유에 역사적 이정표를 쓰게 될 소송이 연방대법원에서 3월 25일 시작됐다. 고용주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오바마케어의 낙태 및 피임 강제조항을 거부하겠다는 하비로비 사와 이를 강제하겠다는 미국 보건복지부 간의 소송, 이른바, 시벨리우스 대 하비로비 소송(Sebelius v. Hobby Lobby Stores, Inc.)이다.
이 소송의 핵심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종교자유가 개인이나 비영리 단체에만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영리 목적의 기업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기업도 고용주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종교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오바마케어의 낙태 조항을 거부할 수 있겠지만, 종교자유가 없다면 낙태 조항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오바마케어의 낙태 조항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의 근간이 되어 온 종교자유에 대한 적용 범위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소송이 되는 것이다.
이 소송의 구두변론은 25일 열렸다. 이 시간은 양측이 법적 논리를 겨루는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연방대법원 판사들의 거침없는 질문 공세에 답해야 하며 언론들도 이 과정을 매우 상세히 보도하기에 여론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소송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연방대법원 판사들의 성향이다. 현 연방대법원은 보수 4명, 진보 4명, 중도 1명으로 구성돼 있어 1명의 중도파 스윙보터가 매우 중시된다. 또 이번 소송에서는 판사들의 정치적 색채에 더해 이들의 종교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 연방대법원은 역사상 최초로 개신교인 판사가 한 명도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가톨릭 교인이 6명, 유대인이 3명이다.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낙태와 피임에 반대하고 있으며 유대교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입장을 갖고 있기에 종교적 이유로 낙태와 피임을 반대한다는 하비로비의 입장을 판사들이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고용주의 종교성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영에도 반영되어야 하는지 여부이며 기업이 종교적 이유를 내걸고 소송을 하는 것이니만큼 기업의 종교성이라는 그 근거와 주체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이 있다.
스윙보터로 꼽히는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은 보건복지부를 향해 “영리 기업은 주주와 고용주의 종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보는가?”라고 물었으며 소니아 소토마이어 대법관은 하비로비를 향해 “영리 기업이 어떻게 종교적 신념을 구현할 수 있는가? 이 종교는 주주의 종교인가? 직원들의 종교인가? 기업이 어느 정도까지 종교에 헌신적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종교와 영리 기업에 대한 관점을 넘어 종교와 의료 행위에 대한 질문도 오고 갔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종교적 이유의 수혈 거부, 예방접종 거부, 키모 치료 거부 등 종교가 의료 행위와 마찰을 빚은 전례가 많다.
소토마이어 대법관은 “만약 종교적 이유로 인해 기본적인 의료 행위에 대한 보험을 반대하는 고용주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즉, 고용주가 종교적 이유로 낙태에 관한 보험을 거부할 수 있다면, 다른 의료 행위에 대해서도 거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소토마이어 대법관은 수혈, 예방접종, 돼지고기가 관련된 의료 행위를 예로 들었다. 미국 내에서 자주 다뤄져 온 수혈 문제는 여호와의증인들이 거부하며, 의무적 예방접종은 미국 내 3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종교적 이유의 면제를 허락하고 있는 사안이다. 돼지에서 추출한 콜라겐 시술은 무슬림들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더 나아가 “이런 주장에 따르면, 고용주가 종교적 신념에 의거해 성차별금지법, 최저임금법, 어린이노동법, 가족관련휴가법 등도 거부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묻기도 했다.
한편, 이 소송에 대한 판결은 오는 6월 중순에 발표될 예정이며 연방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하느냐에 따라 오바마케어의 종교 면제 조항의 범위, 영리 기업의 종교 자유 여부, 종교와 의료 행위 간 우선권 논쟁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송의 당사자인 하비로비는 이번 소송에서 패할시,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