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쓸고 지나간 빈 자리는 ‘열차’가 쏜살같이 채워 나가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몰고 온 기후변화로 빙하기를 맞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 <설국열차>이다.
19일 현재 국내 관객 600만명을 넘어서며 질주 중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답게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열차가 현 체제나 시스템을, ‘엔진칸’에서 ‘꼬리칸’까지는 빈부 격차나 사회 계급을, 영화의 결말은 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각각 제시한다는 데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설국열차’는 ‘노아의 방주’로 간주될 수도 있으며, ‘열차’를 만들어 낸 윌포드(애드 해리스)는 영화에서 상류층에게 ‘창조주’로 불리면서 신격화되는가 하면, 자신의 몸을 희생해 꼬리칸 사람들을 살린 길리엄(존 허트)에게서는 ‘구원자’의 그림자도 비친다. ‘꼬리칸의 반란’을 주도하며 앞으로 계속 전진해 가는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여호수아’나 ‘베드로’ 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비중 있는 배역 중엔 ‘요나(고아성)’라는 이름도 있는데, 봉 감독은 이에 대해 “성경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성경에서 요나는 배를 타고 가다 고래에 먹히는 인물로, 3일 만에 기적적으로 토해내져 살아나기 때문에 ‘고래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는데, ‘기차에서 태어난 아이’인 작품 속 요나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했다.
이렇듯 성경에 영향을 받은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잔인하고 우울한 인류의 마지막’이 연상된다. 개봉을 앞둔 영화 <엘리시움>도 2154년 황폐해진 지구와, ‘가난·전쟁·질병’이 없는 선택받은 1%의 세상’이 대비를 이루면서 좌절감을 안긴다.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는 <설국열차>에 대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그렸다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았다”며 “인간의 모습 이대로는 멸망일 뿐이고, 예수님과 복음이 아니고서는 새로운 희망을 그리려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엘리시움>이 유토피아를 말한다는데,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 자체가 성경 내러티브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종말이 궁금한 세상, 종말에 침묵하는 교회
이렇듯 세상은 ‘종말’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표출하면서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진 교회가 이같은 내용을 비기독교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 전반에 퍼진 불안감·절망감 등을 자연스럽게 ‘전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데도, 이를 놓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최근에는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기만 해도 마치 이단을 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교회는 침묵 아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상언 선교사(낮은울타리)는 이에 대해 “영화는 그 시대의 얼굴이자 정신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이 들어 있다”며 “감독들은 이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 영화로 녹여내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여기에 이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선교사는 “최근 온갖 어두운 뉴스들과 미래에 대한 소식들, 예를 들어 북극 얼음이 녹는다거나 거대한 토네이도의 피해, 점점 더 많아지는 지진과 테러, 홍수와 화산 폭발, 긴 장마, 테러의 위협, 쓰나미와 원자력 발전소의 파괴 등이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을 향해 성경적인 내용으로 종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교리나 설교 형태로는 먹히지 않고, 결국 문화로 이야기해야 하지만 마땅한 소통 수단이 없어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기독 출판계에서는 그나마 논의 ‘활발’
그나마 기독 출판계에서는 ‘종말’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편이다. 지난해부터 요한계시록 관련 강해서들과 종말론 관련 학술서들이 심심찮게 간행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온 도서들을 보면 기독교문서선교회(CLC)의 「요한계시록의 비전(2012년 7월)」, 대장간의 「요한계시록의 내세관(2012년 8월)」, 김홍전 목사(성약)의 「요한계시록 강해(2012년 12월)」, 대한기독교서회의 「종말론(2012년 12월)」, 부흥과개혁사의 「개혁주의 무천년설(2013년 1월)」, 송태근 목사(삼일교회)가 쓴 넥서스(지혜의샘)의 「쾌도난마 요한계시록 1, 2(2013년 3월)」 등이 있다.
특히 ‘지구 최후의 날’을 소재로 한 ‘영적 스릴러’ 「레프트 비하인드(홍성사·Left behind)」는 올해 1월 11권 ‘아마겟돈’과 6월 12권 ‘영광의 재림’이 출간되면서 완간됐다. ‘종교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판타지 문학’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는 영미권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시리즈는 미국에서만 6500만부가 팔렸고, 게임으로 만들어진 데 이어 내년 개봉을 목표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는 탁월한 예언서 연구가인 팀 라헤이의 묵시록 해석과 전문 작가 제리 젠킨스의 글쓰기가 결합해 탄생한 작품으로, 기독교적 종말론을 세상을 알린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기독교 소설’ 장르가 열악한 한국에도 일종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지난 5월에 나온 「성경이 말하는 대환난의 진실(새물결플러스)」에서는 ‘지진과 토네이도, 폭탄 테러, 핵무기 개발, 경제위기, 지구 온난화와 물난리 등 각종 ‘기상이변’과 ‘국제분쟁’ 속의 오늘날,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환난(The Great Tribulation)’이 과연 종말의 징조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최근에만 봐도 ‘이상 고온 현상’으로 동북아 3국이 시달리고 있는 점에서, 사람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저자인 윌리엄 R. 킴볼(William R. Kimball)은 책을 통해, 감람산에서 예언된 ‘대환난’이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의 파괴로 대변되는 이스라엘 멸망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킴볼은 ‘미래적 대환난’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면서 ‘마지막 때’의 실제 상태는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닥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기독교영화제 집행위원장 출신의 저술가(「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등)이자 철학자 김용규 선생은 “영화는 대중매체이므로, 근래에 종말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대중들이 가진 불안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구체적으로는 부단히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지진·쓰나미 같은 자연재난, 조류독감처럼 통제 불가능한 전염병 등이 현대인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선생은 “이같은 종말론적 불안과 공포에 관한 기독교적 대응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며 “우리는 이를 단순히 가만히 앉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 맞서 담대히 싸움으로써 우리의 삶과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에 동참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지닌 본질이 인간과 세계의 변혁이라 할 때, 기독교적 종말론의 진정한 의미도 역시 인간과 세계의 변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국내에서 열린 종말론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 발제를 했던 정성욱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보장된 최종 승리’에 대한 확인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며 “기독교의 종말론은 영적 의미에서 오히려 소망을 주고, 예수님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주면서 그 환희와 기쁨을 소망하게 하므로 창조·구속 신앙과 함께 ‘종말신앙’을 사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