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기독 출판계의 불황’ 소식이 꾸준히 들려오고 있지만,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독 출판계는 ‘가능성 있는 시장’이었다. <목적이 이끄는 삶>과 <긍정의 힘>이 잇따라 밀리언셀러에 오르면서 출판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마침 이 때를 전후해 출판업계에 ‘임프린트’ 열풍이 불면서, 기독 출판시장에도 앞다퉈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철수’하고 있다. 임프린트 열풍 이전부터 기독교 출판을 병행해 오던 출판사들도 일부 발을 빼는 형국이다. 물론 순조롭게 정착하거나 의욕적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곳들도 있다. 그리고 이같은 흐름은 출판계 자체의 임프린트 흐름이 한풀 꺾여서 그런 측면도 있다.
▲한 기독교 출판사에서 책을 읽거나 고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대표적인 곳이 중견출판사 ‘웅진’이다. 이곳에서는 2007년 ‘새로운 형식과 복음주의적 내용을 담은 양질의 기독교 도서’라는 슬로건으로 브랜드 ‘도마의길’을 출범시켰으나, 3년여 만인 2010년 문을 닫고 말았다. 햇수로는 벌써 3년째로, 웅진측은 외주 형식이던 도마의길과 ‘계약 해지’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기독 출판에서 손을 뗀 셈이다.
웅진출판사 단행본 전략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임프린트가 현재 27개 정도 구성돼 있는데, 특정 종교의 서적을 전문적으로 해내기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생명의말씀사 등 전문화된 종교 서적들에 비해 유통망에도 한계가 있는데, 이를 새로 개발해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성장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출판시장 전체가 불황인 면도 없지 않지만, 종합출판사에서 종교 서적에만 매진하려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여러 임프린트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위해 내린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위즈덤하우스의 기독교 전문 브랜드 ‘위즈덤로드’도 2년 가까이 신간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열림원도 ‘시냇가에심은나무’라는 이름의 임프린트로 故 이민아 목사의 저서 등을 펴냈으나, 이 목사의 소천 이후 신간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임프린트 형태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기독교 도서들을 출판하던 곳들도 주춤한 상태. 북이십일(21세기북스)과 살림출판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임프린트는 따로 만들지 않았지만 간간이 기독교 서적들을 간행하던 북이십일 측은 “저희는 기독교 서적의 양 자체가 많지 않았고, 기획에 따라 진행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기독교 시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청림출판도 지난해에는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기독교 담당 편집자는 “꾸준하게 새로운 책을 찾고 있으며, 계속해서 준비하는 중”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기독교 시장에 정착하지 못한 웅진 ‘도마의길’ 로고와 소개글. |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일반 출판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기 불황이나 기독 출판시장의 침체, 경험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새물결플러스 정모세 편집장은 “일반 출판사들이 기독교 시장에 매력을 느껴 진입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지속하려는 ‘의지(사명감)’가 약해 철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지는 있지만 베스트셀러를 펴내지 못하면서 경영 악화로 불가피하게 손을 뗀 경우도 있다. 일반 출판계에서의 ‘의지’는 주로 대표(CEO)의 신앙과 관련이 있는데, 이 경우 일반 서적의 ‘흑자’로 기독 출판의 ‘사명감’을 메꾸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기독교 시장의 경우 외서가 상대적으로 많아 비용이 국내 저자 발굴 때보다 많이 드는데, 판매가 이러한 투자만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국내 저자의 책을 펴내면 판매량이 여기에 못 미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 시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채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생각했던 것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서둘러 철수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반출판사 평단의 기독교 담당 김복녕 편집부장은 “기독교 출판 저자들은 대부분 목회자 분들이라, 원고가 일반 책들처럼 스토리나 플롯이 있는 게 아니라 설교 형식으로 콘텐츠의 부족 문제일 수도 있다”며 “독자들도 대부분 잘 알려진 저자를 선호하시는데, 그런 책들은 대부분 선인세 등의 이유로 메이저급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기독교출판협회 최승진 사무국장도 “물론 불황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방식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섣불리 접근한 때문일 수도 있다”며 “일반 출판계는 주로 마케팅에 의한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기독 출판계는 그렇지 않다”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각만큼 회전율이 따라주지 못하고, 결국 철수에 이른다는 것. 일반 출판계의 경우 지방 또는 도심 소규모 서점들이 많이 없어져 대부분 인터넷 대형쇼핑몰에서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점도 기독교 시장과는 다소 다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