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 정기섭 집사.

일산 십자가 호수공원에서 2m 50cm짜리 사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한 남자를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영감을 받고자 기도골방에서 기도를 하다가 잠깐 나와 산책을 하던 중 ‘영감’을 받아, 사다리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게 됐다. 편안해 보이는 나무다리가 그에게는 ‘십자가’로 보였던 것이다. 사람 키높이에서 보면 십자가로 보이지 않지만, 사다리를 놓고 가서 찍으니 영락없는 ‘십자가’였다.

이 사진은 광고기획자 겸 크리에이터로 활동해 온 정기섭 집사(50·제이에드 대표·일산 충신교회 집사)가 ‘예수’를 주제로 여는 복음광고 전시회의 초청장을 장식하게 됐다. 정 집사는 이번 달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복음광고 40여점을 선보인다.

물질을 위한 일이 아니라 ‘좁은 길’이었고, 먼저 간 이가 적은 개척자의 길이라 더욱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돈을 주는 광고주(클라이언트)를 ‘주님’으로 섬기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주님이 동행하시니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아래는 정기섭 집사와의 일문일답.

-‘복음광고’라는 개념은 낯선데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됐나.

“11년 전에 IMF 위기 가운데 사업을 접어야 되는 상황이 됐다. 광고회사를 10년 했었는데 나이 40에 삶의 의미를 못 느끼게 됐다. 그동안은 사업을 한다고 교회도 다니지를 않았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사업에 푹 빠지다보니 교회도 가지 못했는데,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은 굵고 짧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 한참 자살이 유행처럼 많이 보도되다 보니 ‘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했다.

어떻게 죽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까 생각해보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름을 남기지 하고 생각을 하다, 저는 광고인이니 제가 만든 광고로 이름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그 때 마침 제가 만든 작품이 미국 클리오광고제에서 입상을 해서 깐느 광고제에 출품을 하게 됐는데, 그것으로써 인생을 마감하려고 여행을 떠나게 됐다.

유럽에 처음 나가게 됐는데 기왕 나간 거면 유럽의 멋진 풍경도 구경을 해야겠다 생각을 해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었던 스위스 융프라우도 올라가보고 여러 곳을 관광하니 무척 좋았다. 유럽의 예술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나 체험하게 되고,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신나게 여행했다. 자살하려는 마음도 잊어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있다가 깐느로 가면서는 다시 마음의 결의를 갖게 됐다.

그런데 깐느에 도착해보니 낙선이 돼 있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뭔가 이벤트다운 이벤트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때 어떤 작품들이 입상을 했나 싶어서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한 작품이 제 뒤통수를 쳤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카피 두 줄이었는데 금상이 됐다. 보니까 어떤 내용이었냐면 ‘신은 죽었다’고 니체가 이야기하고, 바로 옆에는 ‘니체는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카피였다.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니체가 죽었다’고 말씀하신다는 역발상의 광고였다.

니체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독일의 철학자였다. 허무주의에 빠져서 신은 없다고 부르짖고 죽었다. 그걸 패러디해서 역발상으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다는 가정을 하고 코믹한 이야기를 한다. 기독교단체가 싱가포르 광고회사에 주문을 해서 만든 것이다.

저는 그 전에는 모태신앙이었는데도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서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 광고를 접하고 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게 됐다. 그것이 정말 나처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구나 싶었다. 나같이 실의에 빠지고 희망이 없고 좌절에 빠진 사람이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을 때, 절대 자살하는 일도 없을 거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그런 사명을 받고 돌아와서 제가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됐다.”

-복음광고를 만들겠다는 사명은 한국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었는가.

“돌아오자마자 교회에 등록했는데, 그럼에도 회사의 고난이 얼마나 크던지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자며 뒤척이는 것보다 새벽기도를 드리면 어떻겠나 싶어서 결단을 하고 시작했는데, 놀라운 것은 새벽기도를 하면서 부르짖고 기도하니 6개월 만에 사업이 회복됐다.

그리고 나서 제가 프랑스 깐느에서 받았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제 머리로 짜내는 것은 인간적인 광고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가지고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기도하고 만든 작품이 2004년 대한민국공익광고대상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를 만들어보자 해서 제 1평 정도 되는 지하의 기도골방에서 한 달간 작정을 하고 기도했다. 영감을 주시는 것을 받아서 만들려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한 주가 지나도 두 주가 지나도 안 주셨다. 마감일이 한 달이었는데 마지막 날까지 안 주시는 것이다.

저는 제 기도에 너무 간절함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해서, 절실함이 있으니 울면서 통성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근데 눈물이 나지 않아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랬더니 별이 보이면서 아프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 울면서 부르짖는데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단다’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무 놀라서 일단 어두우니까 불을 켜고 메모를 해서 다음날 출근해서 직원들에게 이런 아이디어 어떠냐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정기섭 집사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한 달간 기도하며 아이디어를 받아 만든 첫 광고. 공익광고대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든 것이 공익광고대상 수상을 했다. 그때부터 ‘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정말 주시는구나’ 확신이 됐고, 그때부터 기도골방을 창작공간으로 이용했다. 10여년이 넘게 거기서 기도하면서 아이디어 주시는 것으로 발전을 시켜서 광고 작업을 하고 있다.”

-복음광고와 일반광고를 같이 제작하고 있나.

“처음에는 세상적인 상업광고도 하고 복음광고도 했는데 1년에 한 작품 나올까 말까 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겠구나, 하나를 버리자’ 해서 2010년 새해가 됐을 때 하나님께 올인하겠다 결단을 하고 추진하게 됐다. 복음광고에 올인하겠다고 했으니 기도실을 저의 작업실로 삼아 거기서 기도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구했다.

하루는 너무 갇혀 있는 공간인 것 같아서, 집이 일산인데 시내 한번 나오고 싶어서 영락교회 직장인 예배를 드리러 나오게 됐다. 10년 정도 나갔는데, 마침 후배가 충무로에 있어서 같이 예배드리자 해서 불렀더니 예배에서 이 친구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 예배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제 비전을 나누게 됐는데, 그 후배도 저랑 똑같은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 친구가 저에게 재택근무하지 말고 사업장을 합쳐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 했는데, 저는 사업장이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기도해 보고 응답주시면 하자 했다. 그러면서 매주 만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될지 상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원래 금요일마다 있는 직장인예배 때밖에 만날 수 없는데, 3개월이 지나서 부활주일이 지나서 이 친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것을 다른 친구와 전화 통화 중에 알게 됐다. 나이가 45밖에 안 된 친구인데 쓰러졌다니 너무 놀라서 병실에 가보니, 뇌사상태에 빠졌고 의사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상태였다. 이 친구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저는 장례식장에서 앉아 있는데, 또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주셨다. ‘인생이란 게 이렇게 허무한데 너는 무엇 하다 올 거니’.

생각해보니 늘 그 후배와 만나서 비전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계속 비지니스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용품을 어떻게 만들어서 팔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례식장이 호화로운데 세상적으로 권력 가지고 호상 치르는 분들을 보니까 조화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걸 보니 ‘다 허례허식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의 장례식은 조화를 받지 말아야겠구나. 내가 죽을 때쯤 되면 내가 받은 영감으로 만든 복음광고로 전시장을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때 복음광고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다.”

-후배의 죽음이 본격적으로 복음광고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나.

“후배의 죽음을 보며 ‘나도 멀지 않았을 텐데 열심히 이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장례를 마치고 다시 기도골방에 들어가자, 아이디어를 두 달간 50개를 주셨다. 그런데 제작비가 없었다. 클라이언트가 하나님이라 기도로 양식을 갖춰서 새벽기도하는 골방에서 하나님께 ‘결재’를 올렸는데, 그날 아침에 제가 알고 있는 지인에게서 잠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제가 이름을 지어준 ‘아크라인’(Arcline)이라는 해운회사였다. 물건을 실어나르는 일을 대행하니까 방주처럼 했으면 좋겠다 해서 이름을 지어준 거였다. 사장을 만나러 갔더니 회사 달력을 만들고 싶은데 배나 비행기 운송수단만 나오는 그런 것 말고 문서선교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때가 6월이었다.

그래서 제가 ‘혹시 이런 거 아니냐’고 하면서 새벽마다 스케치했던 것을 보여줬더니, 무릎을 치면서 바로 그거라고 하면서 ‘제작비를 댈 테니 12컷을 골라서 제작을 하자’고 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제가 기도하며 영감을 받은 50개 되는 것을 보여주며 맘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 했더니 40개를 골랐다.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2010년도에 나온 첫 작품이다. ‘토마토’라든지 ‘100-1’, 이런 작품들이 들어가게 됐다.

아크라인은 지금까지 매년 복음광고로 캘린더를 만들고 있다. 본격적으로 캘린더 시장에 내놓지는 않고, 지인들이나 원하는 교회들에서 제작을 하고 원가에 드리는 일을 했다.


▲정기섭 집사가 만든 광고 ‘토마토’ 편.

그래서 그건 첫 작품이니 하나님께 열매로 드려야겠다 해서 판매를 하지 않았다. 대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 백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인데, 갑자기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첫 작품을 그 분에게 선물하게 됐다. 일면식도 없지만 메시지로 많은 영감을 주시는 목사님이고 신앙적으로 멘토가 되는 분이었다. 간증과 함께 써서 보냈는데 받으시고 곧장 전화를 주셔서 귀한 일 하신다고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하셨다.

다음날이 됐는데 크리스천 CEO 잡지의 관계자 한 분이 전화를 하셔서 이재철 목사님이 부탁을 잘 안 하시는데 정기섭 사장을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면서 인터뷰 제안을 하셨다. 그 인터뷰가 제 복음광고를 세상에 발표하는 귀한 통로가 됐다. 또 3년간 그 잡지책의 두 페이지에 광고를 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지면을 제공해줬다. 거기에 제 작품을 계속 발표할 수가 있었다. 정말 하나님의 작품은 신묘막측하셨다.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주셨다.

복음광고을 만든다고 할 때 타겟이 되었던 것이 크리스천 CEO다. 크리스천 기업들 광고를 보면 전혀 영적인 광고들이 없어 아쉬웠다. 그런 기업들이 제 광고를 보고 회사 제품과 접목시켜 기업 이미지로 사용을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잡지도 타겟이 크리스천 CEO이니, 그분들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한번은 거기 편집장님이 인터뷰 때문에 어느 기업의 회장실에 가게 됐는데 잡지에 냈던 광고가 액자 속에 들어가 있더라고 사진을 찍어서 저한테 보여줬다. ‘역시 하나님의 메시지는 다 보고 있구나’ 싶어서 위로가 됐다.

요새 전도 방법이 ‘예수천당, 불신지옥’, ‘예수 믿으세요’, ‘교회 나오세요’ 하는 게 사람들이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광고로 접근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정말 만나고 싶은 예수님을 만나게 공감하게 하면 교회가 많이 부흥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복음광고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많았다. 다른 간증도 많을 것 같다.

“청어람에서 전시회를 하게 된 것도 기적이었다. 10년 정도 복음광고를 해오니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광고가 뭔지도 모르고 다들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회를 하겠다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요새 페이스북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청어람 1층이 세미나장이면서 전시회를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김동호 목사님께 웬 용기가 생겨서 초면에 저에 대한 간증을 하며 전시회 부탁을 드렸다. 묵묵부답이셨는데 여기서 물러서면 제가 좌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음날 ‘제가 매일 한 작품씩 복음광고를 보내드려도 되겠느냐’ 메시지를 보냈다.

김동호 목사님 말씀을 좋아해서 그 말씀을 기억해내서 아이디어를 짜낸 것과 접목해서 보냈는데, 10번째 작품을 보낸 뒤 목사님께 ‘매우 좋은 작품이고 좋은 전시회가 될 것 같다’고 메시지가 왔다. 그러면서 청어람의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해 놓을테니 전시회를 하라고 하셔서 굉장히 기뻤다. 그래서 이번에 청어람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

-복음광고를 캘린더와 잡지 게재 외에 어떻게 소개하고 있나.

“저는 사명을 받은 후에 해마다 프랑스 깐느에 복음광고를 출품하고 있다. 입상이 되든 안 되든 심사위원들도 볼 것 아닌가? 그들이 보면 복음의 메시지가 꽂힐 것이다. 한 영혼이 중요한 것이지 수상을 하고 명예를 얻는 것은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도 출품을 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페이스북(www.facebook.com/jad8888)에 작품을 매일 올리고 있다. 처음 회사 이름인 ‘Jad’의 ‘J’가 제 이름 ‘정’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십자가 형태가 하나 첨부되면서 ‘Jesus’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어떤 분은 ‘잠도 안 오고 너무 힘들었는데 당신의 페이스북에서 복음광고 하나를 보고 위로가 됐다’는 그런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제가 얼마나 감동이 됐던지, 한 사람 한 영혼이 중요한 것이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가 그 경험을 했으니까 저의 고백도 그 고백이다.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가 있다. 불황에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 감사하다.

페이스북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성화되어 있으니 영어로 해도 좋겠구나 싶다. 복음의 메시지는 범세계적이니……. 가장 한국적인 스타일과 무게의 맛을 가지고 표현한 수묵화 작품도 많다. 의수 화가 석창호 화백과 만나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 그 작품들도 올해 전시회 때 발표를 한다.


▲정기섭 집사가 의수 화가 백창호 화백과 함께 만든 수묵화 작품.

-전시회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전시회 타겟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교인’이다.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저같이 방황하다가 하나님 만나서 뒤집어져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시킬 수 있겠다 생각을 한다. 복음광고란 무엇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다. 줄지어 관람하는 전시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