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제61-1차 실행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가 최근 자신이 서명해 발표한 ‘WCC(세계교회협의회) 공동선언문’에 대해 “성찰과 숙고 속에서 포용의 범위를 결정했어야 했다”며 “생각과 용기가 부족해 경계선을 설정하지 못했다. 필요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과했다.

김 총무는 17일 오후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NCCK 제61-1차 실행위원회에서 “절차와 과정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감정이 복받친 듯 울먹이기까지 했다.


▲침통해 하는 김영주 총무. ⓒ김진영 기자

선언문과 관련된 문제는 이날 실행위 말미 김근상 회장이 언급해 논의가 시작됐다. 김 회장은 “NCCK 총무의 이름으로 발표된 문서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말을 꺼냈고, 이에 김 총무가 사과하기에 이른 것. 이후 실행위 분위기는 “WCC 선언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실행위원들은 해당 문서에 대한 NCCK 내 협의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일부 실행위원은 “선언문에 어떤 내용이 담긴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근상 회장은 “선언문이 발표된 후에야 그 안에 WCC와 NCCK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이 같은 파행이 예고돼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배태진 목사(기장 총무)는 “일부 교단 인사들이 WCC 한국준비위 직책과 의사 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실행위원회까지 없앴다”면서 이번 사태 역시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배 목사는 “(김영주) 총무만의 책임이 아니다. 나 역시 책임을 통감한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WCC 한국준비위 직책과 NCCK 실행위원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말한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에큐메니칼 근간 훼손”, “잘못된 의사구조 때문” 등 지적

선언문 내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행위원들은 선언문이 담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반대와 개종전도 금지 반대 등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한 실행위원은 이에 대해 “에큐메니칼 진영이 간직해 온 신학적 양심과 신앙고백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광준 신부(성공회)도 “선언문의 내용은 근본주의적 시각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우스 대주교는 “선언문의 내용은 신학적인 면에서 큰 오류가 있다. 정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선언문을 버리지 않으면 (에큐메니칼 진영이) 큰 짐을 계속 지고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WCC 한국준비위와 NCCK 실행위원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힌 배태진 목사가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진영 기자

다양한 비판들이 쏟아진 가운데 실행위원들의 의견은 ▲NCCK는 발표된 WCC 선언문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사태를 수습하자는 것으로 좁혀졌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이날 실행위 정식 안건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돼, NCCK 실행위 차원의 공식 결의는 없었다.

단, 실행위는 김근상 회장이 이 같은 실행위원들의 의견을 모두 담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사태를 수습할 것을 결정했다. 따라서 김 회장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WCC 선언에 대한 NCCK의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주 총무에게 내려질 책벌은 김 회장에 의해 조직될 대책위가 결정키로 했다. 경우에 따라선 NCCK 임시실행위가 열릴 수도 있다.

논의가 진행되던 도중 김영주 총무가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말 죄송하다. 대책위가 구성된다면 수용하겠지만, 결자해지라고 혹 그 전에 제가 해결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줄 수 없겠는가”라고 실행위원들에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 NCCK 직원이 울며 회의장을 빠져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