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자녀의 존재를 몰랐더라도 자녀가 태어난 날부터 양육비를 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이목을 끈다.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 이광만)는 3일 외제차 딜러 문 모(32·남)씨를 상대로 혼외 자녀를 출산한 이 모(32·여)씨가 낸 소송에서 "과거 양육비로 920만원, 장래 양육비로 딸이 성년이 되는 날까지 매달 7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는 시대 상황의 변화 등을 반영해 혼외 자녀에 대해서도 부양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존재를 몰랐던 혼외 자녀 양육비도 혼인관계의 자녀와 마찬가지로 출생 시점부터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3년 전 동갑내기 남자친구 문 씨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됐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안 문씨가 결혼을 거부해 헤어졌고 지난 2011년 1월 혼자 딸을 출산했다. 이씨는 출산 뒤 8개월이 지나 문 씨에게 연락해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문 씨는 '딸의 존재를 몰랐던 과거의 양육비까지 부담할 수 없다'며 맞섰다.

혼외 자녀에 대해서는 인지를 통해 비로소 부모와 자식관계가 형성되고 아직 인지되지 않은 혼외 자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가 없다는 1987년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씨는 소송을 냈고 1·2심에서 법원은 모두 1994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자녀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부양 의무는 출생 시점부터 적용된다며, 양육비도 출생시점부터 부담해야 한다"고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1987년 대법원 판례는 당시 학설이나 판례에 따른 것인데, 가사소송법의 제정 등에 따라 효력을 상실했다며 혼외 자녀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은 상황이지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혼모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