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김영규 목사. 자비량으로 목회하고자 투잡을 뛰지만 목회직에선 성도가 3배 이상으로 부흥했고 세상직에선 용감함과 헌신을 인정받았다.
쨍쨍한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색에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는,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 같은 목사. 웨스트LA에 있는 방주교회 담임 김영규 목사다. 얼핏 범상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평범하지만은 않은 게 그의 인생 스토리다.
우선 그가 시큐리티 가드를 업으로 삼은 지 10년 된 목사라는 게 특이하다. 평일엔 자바시장 홀세일마트에서 자그만치 하루 12시간씩 일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홀세일마트 10명의 시큐리티 가드 중 5명이 방주교회 성도다. 김영규 목사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땀을 흘린다. 일하면서 오전엔 틈틈이 빈 깡통을 줍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자바시장 한인 업주들 사이에서 증거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 깡통이냐고? 이걸 팔아 한 달에 두 번 있는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 행사 때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별것 아닌 듯 보여도, 꽤 수입이 짭짤하다. 행사 때마다 적게는 2백여명에서 많게는 3백여명씩 찾아오는 노인들을 섬기려면 최소 1천 불 이상의 재정이 들어가는데, 한인 업주들 가운데 생색 내지 않고 기부해 주는 ‘천사’들이 있기에 지금껏 2년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행사를 이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신세만 지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김 목사는 성도들과 연초에 회의를 갖고 ‘1년에 한 번은 우리 힘으로 섬기자’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빈 깡통 모으기다. 지난 8월엔 반년간 모아온 재활용 물병과 캔 100여 자루를 팔아 1200불을 모아 행사 경비로 사용했다. 매달 평균 140불 모아지는 데 비해 지난 19일엔 188불을 모았다면서 ‘기록’이라고 연신 기뻐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다.
최근엔 바쁜 와중에도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사역에 앞장서 온 공을 인정받아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마련한 제1회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해 화제가 됐다. 얼마 전에는 자바시장에서 4만5천불이 든 해외 쇼핑객의 가방을 훔치려다 도망친 강도를 붙잡아 ‘훌륭한 경비원’으로 한인언론 및 주류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칼의 위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호루라기를 불면서 끝까지 추격해 결국 강도들이 포기했다고.
원래 김 목사는 한국에서 평택대학교와 백석대학교(M.Div.)에서 수학하고 나눔 사역을 위해 도미했다. LA에서 홈리스 대상으로 나눔 사역을 펼쳐 오고 있는 울타리선교회 나주옥 목사와도 인연이 깊다. 그의 동생 나하나 선교사는 백석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제자였던 여성을 김 목사에게 소개했고 둘은 결혼했다.
나 목사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왔지만, 막상 와보니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말이 쉽지, 땅을 파서 구제사역을 할 수도 없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시큐리티 가드 일이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어디 가서 남한테 빌어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직접 발벗고 나서 뛰어야 했다. 아버지로서 또 지아비로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비록 부족한 살림이지만 지금껏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아내에게 한 번도 바깥 일 시키지 않은 게 스스로 봐도 대견한 듯, 사나이로서 체면이 선다.
그래도 명색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에 건너왔으니, 주의 종으로서 ‘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세운 것이 자바선교회다. 7년 전부터 LA 한인 경제의 심장부이자 세계 최대의 의류시장 중 하나인 자바시장이 변화되면 세계가 변화된다는 비전 아래, 자바선교회를 창립해 꾸준히 선교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이곳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것이 그의 주된 사역이다. 그에 따르면, 상인 한 명이 바뀌면 한 나라를 책임질 일꾼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바시장은 선교의 잠재 인력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얼핏 의문이 든다. 이렇게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사니, 주일설교 준비할 시간이나 주어질까 하는 궁금증이 앞서 김 목사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도대체, 설교 준비는 언제 하세요?”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설교문을 펴서 보여주면서 “월요일이 되면 설교문을 미리 작성해 평일에 틈틈이 일하면서 깡그리 외울 때까지 묵상하기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감사한 것은 그가 속해 있는 루터교단의 특성상 연간 주일 설교 본문이 미리 주어진다는 것. 매주 본문을 뭘로 해야 할지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본문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이에 맞춰 설교문을 작성하는 훈련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돼 있다. 가령 목회자 모임에서 간혹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설교자가 늦게 오거나 불참할 경우 땜빵으로 지목 당해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그만큼 평소 본문에 따라 설교하는 훈련이 잘 돼 있기 때문.
그는 앞으로도 평일엔 시큐리티 가드로 주일엔 목사로 ‘투잡’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다행인 것은 2년 전만 해도 교인수 20명이었던 교회가 구제사역 탓인지 입소문을 타고 전도가 돼 교인수 70명으로 불어나는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했다.
방주교회는 담임목사부터 시작해 전도사 할 것 없이 사역자 전원 자비량으로 사역하는 특이한 교회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 루터교단 소속 교회 건물을 매달 70불에 빌려 쓰고 있다. 교인 1명당 1불인 셈이다. “매달 적은 경비로 예배당을 빌려 쓸 수 있으니 미국교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라고 김 목사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