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를 ‘지독하게’ 하는 교회가 남가주에 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큐티를 안 하고는 버티지 못한다. 큐티를 생활화하겠다고 결심하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지만,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적응하지 못한다. 그만큼 큐티가 생활화돼 있어 성도들간의 교제도 늘 말씀과 묵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교회 어린이들이 그날 묵상한 큐티 말씀을 이메일로 담임목사에게 보내면, 담임목사는 스마트폰으로 이를 확인하고 답변을 준다. 그러면서 담임목사는 어린이들과의 벽을 허물고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또 매 예배 설교 전에 한두 명의 성도들이 묵상한 큐티를 나누면서 은혜를 더하고 있다.


큐티(QT)는 quiet time의 줄임말로, 경건의 시간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갖는 영적 교제의 시간으로, 성서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큐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 인격, 생활을 닮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큐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티를 전교인들에게 적극 권장하면서, 큐티를 엔진으로 하는 교회, 캘리포니아 토랜스 인근에 위치한 코너스톤교회 이종용 목사를 만나봤다.


-큐티 운동을 전교인을 대상으로 펼치게 된 계기가 있나.


1982년도에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신학교에 다닐 때 교수님 한 분이 제의해 주셨다. 그분이 ‘큐티를 하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지 않으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얘기였다.


미국에 들어오기 전에 故 하용조 목사님이 시무했던 연예인교회에 다녔는데, 하 목사님이 큐티를 많이 강조했다. 큐티의 핵심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흔히 우리가 큐티 하면 떠오르는 것이 지식인들만이 한다는 개념이 있고, 또 큐티를 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말씀에는 기도가 따라야 하고, 기도는 말씀이 따라야 한다. 둘 중에 하나가 없으면 큐티가 아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삶이 큐티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 안에서 큐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서에 사도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영에 속한 사람이어야 깨닫는다고 했다.


공부를 잘 못한다고 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은 영적으로 받아들일 때 알아들을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나고 박사 학위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못 알아 듣는다. 큐티를 하는 삶은 하나님 말씀을 받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큐티를 지성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큐티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영적인 양식을 먹어서 항상 깨어있는 삶이 큐티하는 삶이다.


-목회자는 큐티를 일반 성도보다 더 많이, 그리고 깊게 해야 할 것 같다.


목사를 은사로 본다. 성경에선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했다. 목사라는 은사를 받은 것이다. 목사는 큐티를 하고 평신도는 안 한다는 개념이 우리 교회에는 없다. 평신도들이 각 가정에 심방하는 개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는 부목사가 없다. 평신도들이 사역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부목사도 교회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은사를 받은 직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가족의 개념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가 한 구성원이다. 교회 구성원은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나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 리더이기 때문에 더 전문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큐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린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식사를 잘하는 세미나’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자연히 부모와 형제를 통해서 배운다. 여러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지만 자연히 자란다.


우리도 물론 큐티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성도들이 자라는 모습이 아이가 가정에서 성장할 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부흥회는 가끔 하지만, 큐티는 매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교회 달력에도 하루하루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웹사이트에도 큐티가 올라가 있다.


로마서 10장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다. 그렇듯이 말씀을 많이 묵상하면 그것이 삶으로 나타난다. 주일 대예배를 드릴 때도 설교 전에 성도 한 명이 큐티를 나눈다.


수요예배에는 어린이도 참여해서 설교 전에 3~4명이 묵상한 성경구절을 3분 이내로 나눈다. 수요예배는 큐티 내용으로 설교를 한다. 새벽예배도 마찬가지로 묵상한 성경구절을 나누고 예배를 드린다.


지금은 무작위로 지정해서 큐티를 나누게 한다. 다른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의아해할 정도이다. 교회 초창기 때 첫 1년까지는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언질을 줘서 나누게 했다. 큐티를 나누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는데 하신 분들에게는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참고로 목장모임도 그날 큐티 내용으로 하고 있다.


-큐티하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편지를 보낼 때에는 목적이 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실 때, 주시고자 하는 뜻을 아는 것이 큐티다. 묵상하는 성경구절 앞뒤 문맥을 모르면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 있다. 나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큐티는 이어지기 때문에 어제 했던 큐티 내용이 중요하다.


먼저 기도하고 큐티 말씀을 읽고 종이에 적으라고 한다. 성경구절에 나오는 인물을 적고 자세하게 내용을 요약한다. 내용을 요약하는 가운데 성령님을 통해서 스토리를 이해하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진의를 알게 된다. 묵상을 통해 주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고 발견해서, 주님의 말씀을 갖고 하루 동안 적용하면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큐티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삶 속에 말씀이 적용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큐티가 깊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가 깊어진다.


-매주 주일설교도 큐티를 기반으로 한다고 들었는데, 성도들의 반응은 어떤가?


한 주 큐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큐티를 가지고 설교를 해서 부담이 적다. 묵상했던 말씀을 들고 전하니 비교적 쉽다. 묵상한 말씀에 주석과 책의 내용을 더해서 설교문을 작성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큐티를 제대로 하면 교회가 양적으로 큰 성장은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전 교인이 천국 가족이 될 수 있다. 요즘 교회들을 보면 가족 개념이 많이 없어졌는데 교회는 성도간에 잘 알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교제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