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의 커크랜드에 사는 찰스 러셀(43) 가정의 연간 소득은 23만 달러다. 미국 가구의 소득 상위 5% 안에 들어가지만 은행 계좌가 없다. 은행 거래에 따른 비싼 수수료 때문에 은행 계좌를 없앴다. 대신 은행이 아닌 금융 회사가 발행한 직불카드나 선불카드를 사용한다. 러셀은 "은행 계좌를 만들 필요나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러셀처럼 은행을 이용하지 않은 가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은행 계좌가 없다는 것이 경제적 고통의 지표로 여겨졌던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현재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금융 거래를 하는 가구는 1천200만 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2%였다. 2009년의 7.7%보다 증가했다.


정상적인 금융서비스가 제한되는 2천400만 가구도 은행에 계좌가 있지만 급여일에 갚는 조건의 소액대출, 선불카드 등을 사용해 은행 시스템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은행을 이용하지 않거나 자주 이용하지 않는 가구의 비중은 28.3%로 2009년의 25.6%보다 높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각종 서비스에 부과되는 은행 수수료에 대한 불만과 금융위기 이후 까다로워진 신용 거래 조건, 전통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 등으로 은행을 이용하는 가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은행은 고객이 직불카드를 사용할 때, 예금 잔고 이상으로 수표를 발행할 때 등 각종 수수료를 부과한다. 금융위기 이후 신용카드 등을 발급할 때 이전보다 엄격한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은행을 떠난 가구는 넷스펜드 홀딩스(NetSpend Holdings Inc.), 그린 닷(Green Dot Corp.) 등 비은행 금융회사의 선불카드나 직불 카드 등을 이용한다.


이들 카드는 식료품점이나 편의점에서 현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고 일정 금액을 넣어두거나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면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은행을 이용하는 가구가 줄어들면서 현금 지급 없이 소비재를 사는 소비자 신용도 지난 7월 거의 1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신용카드 사용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애덤 솔리스는 미국 가구의 중위 소득보다 많은 5만5천달러를 벌고 은행 계좌도 있지만 그린닷의 직불카드를 사용한다. 솔리스는 "매달 직불카드에 수백 달러를 넣어두고 사용하면 은행의 비싼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소비를 관리하기 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