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미국 뉴욕시 퀸즈의 비디오 대여점인 황제비디오 실내. 한인교포 몇명이 빌려본 비디오테이프(VHS)를 내려놓고 새로운 VHS 몇 개를 집어든다. 한국드라마 `바보 엄마'와 `맛있는 인생' 등의 인기가 특별히 높다. DVD도 준비돼 있지만 이들의 관심 밖이다. 드라마는 역시 VHS가 제격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 비디오 가게의 진열대와 바닥에는 각각 수천개의 VHS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매주 한국드라마나 영화가 담긴 비디오 3개를 빌려 본다는 박영재(66.여)씨는 "나는 구식"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 온라인 스트리밍과 블루레이 디스크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지만 여전히 VHS가 수북이 쌓여 있는 곳이 있다며 한인사회를 포함한 뉴욕 이민자 공동체의 모습을 소개했다.
VHS에 대한 이런 애정은 한인 특유의 검약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NYT는 평가했다. 한인들 중에서도 특히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일수록 새 것이 나오면 옛 것은 구닥다리라며 곧바로 버리는 미국 소비자 문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할렘 지역의 한 세네갈인은 아프리카 영화가 담긴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한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출신자가 운영하는 비디오점에서는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가 담긴 VHS가 빼곡하다.
황제비디오를 찾은 또 다른 고객인 최제숙씨(60.여)는 집에 DVD 플레이어가 있지만 사용법을 모르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용본 적도 없다고 했다. 사실 최씨는 굳이 사용법을 배울 생각도 없다. VHS를 통해 "한국의 전통"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김영우(52)씨가 황제비디오를 연 것은 이민 온 직후였던 1989년. 당시만 해도 DVD보다는 VHS가 일반적이었다. 현재 김씨 가게에서 VHS의 비중은 30% 정도지만 다른 가게와 비교하면 VHS 의존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김씨 가게에는 VHS에 담긴 한국 드라마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DVD로도 볼 수 있지만 많은 노인 고객들은 여전히 VHS를 선호한다. 대여료는 테이프 한개당 한주에 1달러로 공짜나 다름없다.
어떻게 수지타산을 맞추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솔직히 요즈음엔 많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고객들 중에는 VHS가 DVD보다 더욱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VHS의 강한 생명력은 고객보다는 업주들에 의한 것이라는게 NYT의 지적이다.
부피가 크고 진열대 공간을 독차지한다고 불평하면서도 VHS를 찾는 사람이 있고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VHS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잭슨하이츠의 콜롬비아 공동체 지도자인 올랜도 토본은 "이민자들은 과거에 갖지 못했던 것을 소중히 여긴다"며 "따라서 어떤 기기든 제대로 작동하는 한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