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미국 알래스카의 유콘강 삼각주에 사는 원주민 리사 메리 아이요테(22.여)가 자신의 집에서 한 침입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은 2009년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아이요테는 범인이 떠난 후 부족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겼지만 역시 허사였다.


사실 현지 경찰이라해야 고작 3명밖에 안됐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요테는 철저하게 혼자 힘으로 고통의 세월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당시의 성폭행범은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그는 올 봄 한 인터뷰에서 "한동안 술에 의지해 살았다"면서 "나름 노력해 봤지만 항상 벽에 부딪히곤 했다"고 털어놨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원주민인 인디언 가운데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폭행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는 여성이 3분의 1이나 된다. 미국 전체 여성 평균치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대표적인 지역이 알래스카 오지다. 그곳에는 진입로는 물론 전화나 전기, 인터넷도 없으며 아이요테가 사는 마을처럼 사시사철 얼음에 갖혀 있는 지역도 있다. 시골 도시인 에모나크의 경우 인구 당 경찰 수가 너무 적어 성폭행 범죄율 통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미 의회는 2004년 전국 원주민보호구역 여성의 성폭력 실태 조사를 지시했지만, 8년이 지난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예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법무부는 해명한다. 하지만 에모나크와 같은 지역의 성폭력 범죄율은 전국 평균보다 무려 12배나 높다는게 알래스카원주민연맹(AFN)의 설명이다.


원주민 여성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이들은 주변의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 성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증언한다.


현지의 열악한 보건환경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성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 의료장비가 제대로 갖취지지 않은 것은 물론 피임약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성폭행 여부를 확인할 숙력된 간호사가 없어 법정에서 이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우스 다코다주(州) 원주민보호구역의 여성보건 운동가인 샤론 아세토여는 "최소한 `딸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에 복용할 피임약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원주민 여성의 인권보호 대책은 여전히 정쟁에 발목잡혀 있다. 백악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성폭력방지법(VAWA) 개정안을 발의했고 상원에서는 별 문제 없이 통과됐지만, 하원은 지난주 이 법안을 의결하면서 핵심 조항을 삭제했다.


개정안은 원주민 여성을 성폭행한 비(非)원주민 남성을 부족법원이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은 부족법원의 권한 확대가 너무 위험하다며 이 부분을 빼버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