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내 자식은 굶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손가락이 휘도록 공부만 했다는 그가 이제는 목사가 되어 ‘혈육을 넘어 더 큰 가족인 북한 동족의 배고픔과 매맞음은 외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철학교수를 꿈꾸며 유학온 그. 그러나 지금은 동족의 배고픔을 함께 고민하며 탈북자 선교와 한국 내 좌파척결 문제에 매진하는 것에 삶을 바치고 있다.ⓒ권나라 기자
지금은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이희문 목사. 북한 인권 운동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다. 2004년 북한인권법 미국 국회 통과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북한자유연합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도움의천사들(HanKR)이란 단체의 대표로 탈북자 정착사역을 도와온 그가 최근 SNS를 통한 한국 내 좌파 척결에 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5월에는 13년 간 목회하던 하나교회를 사임하고, 탈북자 선교에 전념하고 있다.

“북한인권은 정치가 아니다. 한인이 깨어야 민족이 산다”고 외치는 이희문 목사.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북한 선교에 열정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6.25때 아버지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3대가 이틀에 걸쳐 모조리 총살당했다. 어렸을때부터 공산당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92년 세계한인선교사대회에 갔다가 비전을 받고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 살겠다'는 서원 기도를 했다. 평생을 북한 선교를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지금 나의 사역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5월에 목회를 그만두셨다. 이유도 탈북자 선교 때문인가?

목사가 탈북자들을 돌보다 보면 기존 성도들에게 가야할 관심이 빼앗기게 마련이다. 탈북자 선교와 이민 목회의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사실 사임 후에도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청빙이 들어오고, 훨씬 더 안정되고 폼 나는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싱턴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탈북자 인권을 위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또 통일이 됐을 때 이민 교회나 교포들이 탈북자 수십만명이 미국으로 몰려오면 돌봐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을까? 아직 안돼 있다. 그 기반을 내가 닦아야 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아무리 달라도 국가 존폐는 흔들면 안돼

-현재 하시는 활동 소개 중에 북한자유연합, 탈북자 미국 정착 도움 외에 ‘인터넷/SNS를 통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사역’이 있다. 한국 좌파척결이라는 모토도 내세우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인가?

1970년대 김일성 비밀교시가 떨어진 후 북한의 적화야욕의 치밀한 전략이 한국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좌파들이 지난 20년 간 전교조, 노동계를 통해 분신들을 심어놓았고, 그 사람들을 통해 조정하고 있다. 비밀 교시에 운동권 중에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 유학을 보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김일성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똘똘한 운동권 학생들이 이제는 자라서 정치, 법쪽으로 들어가 있으니 더욱 큰 문제다.

SNS를 하루에 4~5시간 하는 이유도 젊은 사람들 중 우리 일꾼들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게 지금 제 사역의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이 보시는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인가?

해이해진 안보의식과 국가 정체성이다. 현재 한국은 적군이 누구고 아군이 누군지 분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애나키즘이라고 하는데 민주주의가 아닌 무정부주의 같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을 보고,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가 앉아도 저런 분위기에서는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다음으로 물려받았다면 지금쯤 4만달러 국민소득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국가 안보관과 다른 두명의 대통령을 심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DJ의 6.15 공동선언이다. 국민적 합의를 가지고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지 않고 고려연방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해 선포한 선언으로, 대한민국 법을 어기고, 우리나라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다. 그리고 북방한계선을 영토선이 아니라고 말한 MH 때의 일도 그렇다. 엄연히 존재했던 보안법 다 무시하고 김정일 만세를 국회에서 외쳐도 감옥에 가지 않는 현 한국은 마치 무정부주의를 보는 듯 하다. 아무리 달라도 헌법은 같아야 되고 국가의 존폐를 흔들만한 것은 달라선 안되지 않는가?

나꼼수 따르는 현상은 해학 같은 것… 하지만 배후세력은 있다

-한국에서 부는 나꼼수 붐은 어떻게 보시나?

옛날 사회에서도 눌린자들이나 서민들이 양반들을 빗댄 하나의 해학으로 탈춤을 만들고 마당놀이를 했듯이, 지금 사회분위기가 정부를 향한 불신 불만이 팽배해진 상황이다. 앞장서서 정부를 비판하면 따라가는 세력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붐’이 이는 것이다.

그러나 반정부 현상은 50%가 국민의 문제라면, 50%는 북한에서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우리들(국민)은 미워서 돌팔매질 했지만, 죽으라고 한 것은 아닌데, 그들은 죽자고 달려든다. 그것을 주도하는게 불순 세력들이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세력이 있다. 단순히 정치적 색깔이 달라서, 비판의식에서 하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꼼수를 좇는 현상은 정부비판세력을 따라가는 하나의 시대적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번에는 터치하지 말아야 될 종교에 대한 영역을 건드렸다. 나는 목사지만, 그 영역이 불교나 천주교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조롱 할 정도의 도가 넘쳤다. 그것은 안 통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런 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 생각한다. 김용민 씨 선거 결과를 보면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가 튀어나왔다.

한국 북한인권법 통과, 북 체제 붕괴 도화선될 것

-조금 화제를 돌려서, 최근 SNS를 중심으로 북한인권법 추진단체를 결성하셨다고 하는데

북한인권법 추진단체 <북한자유인권시민연대>를 SNS 중심으로 500여명 정도 멤버를 구성했다. 이 안에는 북한 인권 전문가부터 안보위원 등 장성급의 쟁쟁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 단체를 통해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북한정권의 악랄한 인권탄압의 실상에 대한 체계적 연구 및 대안을 제시하고, 북한 인권에 대한 정규적 학술연구발표를 이어나갈 것이다. 또 현재 대한민국에 정착한 23,000명이 넘는 탈북자들과 함께 연구, SNS를 통한 북한 인권의 관심 유발과 효과적인 홍보, 교육을 통한 공감대 형성을 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을때 기대하는 가시적 효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다는 것은 북한 체제 붕괴의 도화선을 붙이는 것이다.

먼저는 북한 정권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세계가 북한 인권을 떠드니까 20만명 되는 정치범 수용소가 거의 20여개 있었는데, 지금은 6개로 통폐합 시켰다. 이것은 북한이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정치 개혁에는 민주화와 인권 바람이 주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두번째로는 법이 통과된다는 것은 돈과 정치적 지원이 함께 따라온다는 의미다. 더 많은 탈북자들을 데려올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고, 탈북자 인권의 실질적 향상을 의미한다.

-워싱턴에서 북한자유연합을 통해 이뤘던 일들을 돌아본다면

가장 큰 업적은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인권 문제가 미국 정치 현안에 문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는 것이다. 지금은 북핵 만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북한인권이 됐다. 2004년 북한자유연합이 북한인권법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면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한국교회, 늘 한 쪽으로 치우쳐 문제

-기독교인들이 왜 탈북 인권 운동을 외쳐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이 왜 정치에 관여하냐?’면서 북한 인권을 정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세계가 빼앗겨서 ‘말할 수 있는 권리, 먹고 살 수 있는 권리’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말이다.

구름 위에 둥둥 떠서 정치나 세상은 나몰라라 하는 것은 내 신앙 양심 상 할 수 없다. 예수님도 변화산 상에서, 제자들이 ‘여기가 좋사오니’하니까 ‘내려가자’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닌 곳은 세리와 창기의 집 그리고 시장판이었다.

야고보서 1장 27절(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라)이 기독교인 생활지침의 핵심이라 본다.

한국교회는 한쪽으로 치우쳐 문제가 됐다. 기장 측에서는 사회 쪽으로 너무 치우쳤고, 보수 측에서는 제자훈련과 개인 경건에 너무 치우쳤다. 제자훈련만 받고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율법주의다. 그런 기독교인이 사회에 90%가 된다 한들 무슨 영향력이 있겠는가?

-한국에서 강연도 많이 하시는데,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 동족은 한 몸이다”라며 한국에 가서 이렇게 열변을 토하면, 목사님은 목사고 미국 시민권자인데 왜 이렇게 삽니까? 하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아프기 때문에 합니다” 라고. 손가락을 꼬집어도 몸 전체가 아픔을 느끼는데 한 몸인 민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픔을 느껴서 그렇다고. 배고프고, 또 아파서 눈물이 나서 운다고 말한다. 북한에서는 하나님은 왜 미국에만 갑니까? 요덕수용소에도 와주십시오 하고 절규를 하는데….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주님 만났을 때 당신들의 대답을 준비시켜 줄려고 왔다’고 한다. 내 몸의 반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말이 필요없는 것이고, 저절로 느껴지는 것 아닌가?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북한 자유주간 행사를 위해 한국으로 간다. 미국에서 6년 간 북한자유주간을 하다가 2010년과 2011년 한국으로 개최지를 옮겼다.

긍정적인 것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통해 젊은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것. 이를 위해 보수파 한국 대학 동아리도 자생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천안함 때만 해도 덜했는데, 연평도 사건 때문에 북한도 예상치 못한 P세대들이 일어나고 있다. P는 애국심(Patriotism)의 약자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군 해군 사관학교 등 학생들 만나고 대화 나누고, 대한민국의 흔들리는 안보관을 복음적인 입장에서 심어주려고 한다.

기독교인, 구원사적 입장에서 반기독세력 진단해야

-목회자의 입장에서 현 시대를 진단하신다면

좌파 세력이 밀까부르듯이 까불면서 기독교인들을 조롱하는 때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보면 대한민국 기독교의 영적인 성숙도와 건강도를 체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한국 사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 기독교 세력과 기독교의 싸움이다. 반 기독교 가운데 좌파도 있고 이단도 있다. 민족의 통일 문제도 큰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작은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덜하면서 이 갈등을 빨리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워싱턴 지역 한인들에게 남기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나라 해방 때도 그랬고 6.25때도 그랬고 해외 동포들의 독특한 역할이 있다. 800만에 달하는 한민족이 전세계 퍼져사는 데 한국이 어려울 때 한민족 전체가 통일이라는 민족의 갈등,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다 연관된 문제인데, 교포들이 깨어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다들 사는 데 바쁘고 힘들지만, 우리가 통일에 기여하는 일이 뭘까 하는 고민을 하며 일거리를 찾아보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