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경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떤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세상적인 경영 개념을 접목시켰다고 분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담임목사가 최고경영자(CEO)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가? 일부는 찬성하고 일부는 반대할 수도 있지만 현대의 교회가 담임목사에게 CEO이기를 어느 정도 요구하고 있으며 그에 관한 서적도 수십권에 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 그럼 경영학자에게 교회 경영에 관해 묻는다면 여러분은 “목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목회자에게 교회 경영을 묻는다면 “너무 추상적이고 목회편향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래서 고승희 목사를 만났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주립대(Texas A&M University)에서 경영정보학 석사, 미시시피주립대에서 동일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기업 근무 경력도 갖고 있다. 이 정도면 경영에 관해 말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반기독교인이던 그는 예수를 영접한 후, 목회자로 대변신했다. 풀러신학교로 진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남침례회(SBC)에서 안수 받으며 목회자가 돼 18년째 아름다운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이 교회는 지난 2003년에는 LAMC라는 선교대회를 130여개 교회가 연합한 가운데 개최해 연인원 1만명에게 선교에의 도전을 주기도 했다.


교회와 경영, 그 핵심적 개념으로서 목회 경영에 관해 그와 이야기 해 본다. 교회의 최고경영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과 뜻을 어떻게 교회에 구현할 것인가? 어떻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다시 세워질 것인가?


-교회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균형감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균형의 핵심은 요소 요소간의 거리와 간격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중요한 요소들의 균형감이 있는 교회, 각 요소의 거리와 간격이 적절한 교회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예배에만 너무 집중하면 기도원같은 교회가 되어 버리고, 교육에만 집중하면 신학교같은 교회, 선교에만 집중하면 선교단체같은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이 3가지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3가지에 대해 교회는 균형감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요소에 있어서도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모든 사역을 하되, 균형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 하나를 강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예배, 교육, 선교 중 하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교회는 '아름다운 교회'라고 자부하십니까?


우리 교회를 “절대적 기준에서 볼 때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저는 우리 교회가 아둘람 동굴의 400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빚진 자, 원통한 자, 환란당한 자들, 오늘날 말로 하면 지지리도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윗의 왕국을 시작하며 하나님이 약속한 땅의 대부분을 정복해 냅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불쌍하게 생각하며 같이 고생하면서 자라나는 공동체가 바로 아둘람의 400인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역에 있어서 서로를 돌아보며 균형감을 맞추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교회라면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교회에 부임했을 때 성도는 9명이었습니다. 교회 재정 300불을 갖고 있던 재정부장은 이 돈을 인수인계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이 교회에 왔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갈 곳이 없어서 왔습니다. 오라는 곳이 없는데 이 교회에서 오라고 하니 온 것이죠. 저는 이 교회에 오면서 비상 탈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도 없이 왔다가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안되니까요. 저는 이 교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 두가지를 고안해 냈는데 교회가 재정적으로 파산하거나 성도가 모두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성도가 오면 “제대로 신앙생활 안할 거면 떠나라”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목회하니 제대로 하려는 사람만 남게 되고 교회가 오히려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눈치보지 않고 목회하니 교인들로부터 신뢰도 얻게 되었고 이제는 이곳보다 목회하기 쉬운 교회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요즘 건강한 교회에 대한 요구가 큽니다. 교회가 건강성을 담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초대교회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핍박이 일면 교회는 작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성장했습니다. 현재도 그렇습니다. 중국교회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성도 수는 100만이 되지 않았는데 선교사들이 빠져 나간 이후, 지금은 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중국인 교회 리더들은 “선교사들이 빠져 나가니 그동안 선교사들이 지던 짐을 우리가 지게 되었고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었다. 우리에게서 이 고난이 없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핍박이 거세어질수록 더 기도하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세상적 가치를 지닌 사람은 교회에 아예 오지 않기에 교회가 더욱 순결해집니다. 교회의 성장, 건강함은 어떤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교회의 현 모습에서 한국교회, 한인교회를 보게 되는데 그 안타까움이 큽니다.


고등종교의 타락을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역사적으로 불교가 타락하면 중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목사가 되려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목회라는 자리가 세상에서의 힘과 권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를 가 보면, 목회자가 목회자인지 대기업의 CEO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미주의 경우는 넘쳐나는 신학교에서 양산된 목회자들로부터 목회자 전체가 질적인 저하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교인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목회자의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분은 주님이시지만 사실 교회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목회자의 자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 한명의 리더십으로 인해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한명 한명의 목회자가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성장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을 낳았는데 이스마엘은 인간적 방식, 이삭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에겐 아들이 12명이었지만 이삭에겐 손자가 12명이었습니다. 인간적 방식으로도 성장은 즉각 들풀같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 보다 얼마나 건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 주신다면.


목사가 목회를 포기할 각오로 교회 지도자들을 세워 가야 합니다. 만약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한다면 목회를 떠나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부임한 후 13년간 안수집사가 한명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나도 목회자로서 자격이 부족하지만 여러분 중에 성경의 기준에 맞추어 안수집사가 될만한 인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면 성도들의 추천을 받아서 찾아 오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7명의 안수집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의 제직을 잘 세우는 일이 교회의 건강에 직결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름다운교회는 어떤 기준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제직은 곧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에 분명한 뜻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영혼에 대한 관심입니다. 일단 자신이 속한 셀이 잘 운영되고 그 안에서 양육과 성장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셀에서 분립해 나간 셀도 그렇게 양육과 성장을 경험해야 합니다. 얼마나 그가 리더를 잘 키워냈는지 보는 것이죠. 기도가 좀 부족하고 교육이 좀 부족해도 영혼에 대한 사랑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교회의 리더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봅니다.


-한인교회에는 교회 갈등과 분열로 대표되는 병약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직들의 당회 문화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처음 당회원이 된 분들은 은혜가 충만한데, 당회에 참여하다 보면 점점 변질됩니다. 그 이유는 당회가 기획, 조직, 통제라는 세가지 기능을 모두 장악하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예산을 기획하고 실제로 추진하며 나중에 결과를 평가하는 모든 기능을 당회가 갖고 있습니다. 즉,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당회원들이 당회원다우면 이것만큼 민주적이고 좋은 제도도 없는데 당회원이 당회원답지 않으면 이것만큼 부패하기 쉬운 제도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안수집사들이 1년의 예산을 세우고 구체적인 집행 지침을 마련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정책은 젊은 서리집사들이 실제로 수행합니다. 일종의 행정부입니다. 그리고 이 행정부가 계획대로 잘 수행했는지를 정기적으로 감사, 검사합니다. 재정팀과 관리팀으로 나뉘어 감사가 시작되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공식 서류들을 열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권한을 분립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침례교단에는 없는 ‘장로 제도’도 있는데, 우리의 장로 개념은 목회자입니다. 다만 사례비가 없고 신학 교육을 안 받았을 뿐입니다. 자신이 맡고 싶은, 헌신하고 싶은 전문 분야의 사역이 있다면 우리가 그를 장로로 장립하고 그 사역을 맡깁니다. 행정이나 교회 경영을 하는 장로가 아니라 사역을 하는 장로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찬양팀에 소명이 있다며 장로가 되기 원하면 공정한 심사를 거쳐, 그는 교회에서 찬양 사역을 이끄는 사역의 리더로서 장로가 됩니다. 저는 장로가 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평생 할 사역을 먼저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교회 권한 분립, 장로의 사역화, 이 두가지는 우리 교회가 시도하고 도입한 것인데 교회의 건강성을 확립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는, 목회 그 자체가 아니라 교인과 조직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영학을 공부하며 조직 관리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현대 목회자들은 교회의 의사 결정이나 운영에 관해서 보다 구체화된 접근법을 익히는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갈등을 해소할 좋은 방법도 하나 제시해 주십시요.


갈등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의 12 아들 등 창세기만 봐도 이루 셀 수 없습니다. 다윗도 반란, 즉 갈등을 겪었고 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갈등은 성경 전체의 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죄가 오면 나뉘어지고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이 오신 후에도, 이방교회와 예루살렘교회가 갈등을 겪었고 고린도교회 안에도 각종 계파가 나뉘어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교회들이 갈등을 겪을 때 기도만으로 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갈등을 대하며 겸손이라는 덕목을 내세웁니다. 예루살렘교회에는 은혜라는 덕목을, 고린도교회에는 사랑으로 인내함을 요구합니다. 즉, 문제 해결의 기초는 당연히 기도이며 십자가이지만 그 접근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방금 전까지 세상의 이론을 차용하시더니 갑자기 성경 이야기로 돌아 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속(俗)에 있지만 모델은 성(聖)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모델을 찾아서 현실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There Then의 이야기를 Here Now의 이야기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개발한 다양한 성경공부 교재 중에 Sexuality라는 제목의 교재가 있습니다. 부부가 갈등을 겪을 때 교회는 “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혼하는 분들 대부분은 기도도 해 보고 별 것도 다 해 보고 안되니 이혼을 결심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기도하자는 것은 아무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부부에 대해 “이 비밀이 크도다” 했습니다. 즉 이 비밀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어야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저희가 개발한 이 교재는 지금도 우리 교회 가정 사역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인기있는 책입니다. 목회자는 야전사령관처럼 성도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많은 문제를 예의주시하면서 연구하고 답을 성경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델을 찾으시고 모델들로부터 원리를 추출한 후 현실의 문제에 적용하면 그 문제가 풀릴 수 있습니다. 고로 목회자는 성속을 늘 왔다 갔다 해야겠지요.


-그럼 믿음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이런 접근이 가능한가요?


믿음에 관해 우리는 흔히 추상적으로 “믿는다”고 하는데 이런 개념이 불신자들에게는 가슴깊이 다가오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이것을 풀어 보겠습니다. 어떤 친구가 10불을 빌려 달라 합니다. 믿어지진 않는데 그래도 10불은 밥 한끼 산다 생각하고 빌려 줘 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확히 갚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100불을 빌려 달라 합니다. 저번의 경험이 있으니 또 빌려 줬는데 또 갚았습니다. 그렇게 200불, 300불, 1000불을 빌려 주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00만불을 빌려 달라 합니다. 그럼 고민 고민하다 거절할 수도 있고 빌려 줄 수도 있습니다. 빌려주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아직 100만불 믿음은 생기지 않은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렇게 금액이 커져 가는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하나님을 신뢰하다 보면 인격적 교제 가운데 점점 큰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는 믿음에 대해 공부할 때, 성경에서 아벨, 에녹 등 히브리서에 나온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분석하고 그들이 삶에서 믿음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연구합니다. 거기서 모델을 만들고 믿음의 원리를 추출합니다. 그러면서 내 삶의 문제들을 어떤 원리를 이용해 해결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이 성경의 원리에 따라 하나하나 문제가 해결되어 갈 때 우리의 믿음도 그와 함께 서서히 자라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부부 문제, 대화 문제, 내적 치유, 중보 기도 등에 관한 다양한 교재를 발간했습니다.


목회자의 목회는 성도들이 삶에서 대하게 되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것을 말씀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 목사님.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