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을 씻겨 주세요.”
“제자들의 발처럼 내 때묻은 발을, 나의 추한 발을 씻겨 주세요.”
“흐흐흑.”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Eternal Life) 첫 장면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의 구슬픈 노랫가락이다.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 앞에서, 이 여인은 온갖 수치와 고통 속에 신음하다, 한 줄기 빛을 보게 되는데….

2천년 전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한 인간의 삶을, 오늘 이곳(Here and Now)의 언어로, 창작극이라는 예술양식으로 재현해 낸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가 무대 위에 올랐다. 13일 저녁 은혜한인교회 본당에서 보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무장해 2년만에 남가주 관객과 만났다.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는 먼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과 예수의 이야기로 시작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 공생애 마지막에 나귀 새끼를 타고 군중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 겟세마네의 기도, 십자가 고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 부활 후 성령의 능력 등이 스토리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서막을 알리는 음악과 함께 간음한 여인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지나가던 예수를 향해 여인은 자신의 죄를 씻어 달라며 호소한다. 사실 이 장면은 극본을 쓴 작가의 기량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성경엔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의 발을 씻겨 주셨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 직전 고뇌하는 장면에선, 숨어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유다의 심리를 표현해 낸 가사 내용은 인간 죄성의 폐부를 찌르기까지 한다. 마지막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선 피비린내 나도록 바람을 가르는 채찍의 효과음이 공연장을 채운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색옷이 걸쳐진 예수님의 몸이 크게 움찔하더니 이내 파르르 떨렸다. 객석도 조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무대 위에 재현해 낸 십자가 장면이 현실감 있게 표현됐다.


부활 이후 성령의 능력을 안무로 표현한 피날레 장면을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나자 출연 배우들이 모두 무대 위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번 공연은 예수 역에 CCM 가수 정홍규, 가룟 유다 역에 성악가 김상은, 베드로 역에 연극배우 배도익, 루시퍼 역에 성악가 이병진, 천사장 가브리엘 역에 성악가 이재일 등 주연급 10여 명을 비롯해 총 210여명의 배우들이 출동해 한인사회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현철 감독(창조문화선교회 대표)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고전에 상상력을 가미해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는 점에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냈다. 한국과 뉴욕에서 드라마와 방송을 전공하고 꾸준히 창작극 활동을 해 온 김 감독은, 4년간에 걸쳐 기도 중에 4복음서를 중심으로 극본과 가사를 창작했다.


2시간 10여분 내내 귀와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은 작곡가 정봉화 씨가 31곡 모두 직접 작곡했다.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현대 팝, 클래식 오페라, 성가곡 스타일의 노래 등을 망라해 실력을 발휘했다. 1,2층 복합구조로 꾸며진 무대와 블루 특수조명으로 브로드웨이 수준의 의상과 분장을 비추는 등 외형적인 면에서도 일반교회 성극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다는 평가다.


특히 연출가의 세심한 구성이 배우들의 뛰어난 소화력과 융화돼 한 호흡을 자랑한 것은 한인사회 문화 사역에 또 다른 한 장을 열었다 평가할 만하다. 다만 전반부의 탁월한 구성에 비해 후반부로 가면서 단조로운 순간이 반복되면서 다소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는 은혜한인교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무대로 14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