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 며칠 전 서울 순화동 평안교회 1층 세미나실. 8명의 청년들이 시험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언뜻 학교 교실 풍경 같기도 한 이곳에선, 예장 합동 평양노회의 ‘목사후보생고시’가 열리고 있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등 교단 신학교의 신대원에 진학하려면, 먼저 노회가 주관하는 이 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옛날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예비고사’와 비슷하다. 정기노회가 있는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치른다.
시험은 성경의 기본 내용과 신조, 일반상식, 영어 등을 묻는 형식이다. 대개 1시간 안에 풀 수 있는 수준이고 총 40개의 문제가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나뉘어 출제된다. 이 문제들은 다시 10개씩 4개 항목으로 분류되는데, 각 항목별 만점은 100점, 통과 커트라인은 항목당 60점이다. 하나의 항목이라도 60점이 못 되면 다음 고시 때까지 꼬박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목사를 꿈꾸는 이들 사이에선 그야말로 ‘고시’와 다를 바 없다.
이날 시험 응시자는 단 8명 뿐이었지만 하나같이 진지해 수능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필기시험 후 진행된 면접에선 때로 비장함까지 비쳤다. 목사가 되리라는 각오가 단단해 보였다.
▲목사후보생고시를 치른 응시생들이 시험이 끝난 후 함께 기도하고 있다. 젊은 나이,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들이다. |
그러나 젊은 혈기의 치기를 염려해서일까. 면접관으로 나선 이 노회 관계자는 혹 응시생들이 순간의 감정으로, 아니면 막연한 꿈으로 목사가 되겠다고 한 건 아닌지, 한 명 한 명에게 꼼꼼히 그 소명을 물었다. “다시 숙고해 보라. 꼭 목사가 아니라도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길은 많다”는 그의 말…, 의지를 확인하려는 이 말에 응시생들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부모님께선 교회를 다니시나?”
“네, 아버지께서 미자립 개척교회 목회자십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을 텐데, 그래도 목사가 될 텐가?”
“……, 힘들었지만 제 인간적 목표 이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자 합니다.”
면접관은 이런 말도 했다. “지금도 목사들은 너무 많다. 목사가 돼도 갈 데가 없을 수 있다. 여러분의 결심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앞서 길을 간 선배로 목사라는 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함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애잔했다.
이 길밖에 없다는 마음 들 때, 한 발 더 나아가길
이날 고시를 치른 김모(28) 군은 올해 칼빈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하기 위해 이 시험에 응했다. 그에게 왜 목사의 삶을 택했는지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심코 목사가 될 거라고 했었어요. 그렇게 신학교까지 갔는데, 입학하고 나니 오히려 고민이 됐습니다. 정말 이 길이 맞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스스로 많이 되물었죠. 그후 여러 사정이 겹쳐 휴학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오히려 학업을 쉬면서 제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겠구나…,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 여기까지 왔네요.”
면접관의 충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목회자들과 관련해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들이 있으니까, 다시 그런 것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 아닐까요. 어떤 위기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믿음을 가지라는 거겠죠. 마음 깊이 새길 겁니다.”
시험이 모두 끝났다. 면접관은 끝으로 “신대원에서 공부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오늘 말한 것들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을 두드려 보라”며 “이 길이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 때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라. 무엇보다 한 영혼을 위한 목사가 되라”고 권면했다.
이렇게 20대의 젊음들은 목사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넓지 않은 좁은 문의 그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