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한인들이 다수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시내 오이코스 신학대학에서 한국계로 추정되는 미국인 남성이 2일 총기를 난사, 7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이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대학 캠퍼스 내 발생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 지난 2007년 4월 16일 한국 유학생 조승희에 의해 일어난 버지니아텍(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악몽을 되살리게 하고 있다.
◇ 수업중 침입 총기난사…순식간 생지옥으로 변해
목격자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3분께 대학 내 간호대학 강의실에 40대 아시아계 남성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소규모인 이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다 얼마 전 퇴학처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용의자는 강의실로 들어오면서 옛 학급 친구들을 향해 "줄을 서라. 너희들 모두를 죽이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학생들은 "처음엔 농담을 하는 줄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카키색 복장을 하고 회색 모자를 둘러싼 건장한 체격의 용의자가 45구경 캘리버 권총을 소지한 채 간호대학 강의실로 들어와 첫 번째 줄에 앉은 한 여학생의 가슴에 총격을 가한 후 다른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한 뒤 도주했다고 전했다.
한 목격자는 "용의자가 창문을 향해서도 수차례 총격을 가했고 창 밖을 향해서도 총질을 해댔다"고 말했다.
이날 학교에는 ESL(외국어로 배우는 영어)과 간호학과 수업 밖에 없어 평소보다 적은 35명만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경찰은 말했다.
◇인근 쇼핑몰서 저항없이 체포돼…용의자 국적 논란
신고를 받은 경찰은 특수기동대(SWAT) 등을 동원해 주변 도로를 차단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피시켰으며, 사건이 발생한 후 대학에서 5마일(약 8km) 정도 떨어진 알라메다의 한 쇼핑몰에서 한국계 미국인 용의자 고원일(43) 씨를 체포했다.
그는 쇼핑센터 내 슈퍼마켓체인 세이프웨이 직원에게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체포돼야 한다"고 말했으며, 출동한 경찰의 체포요구에도 순순히 응했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한국총영사관 관계자는 "미국 정부 측에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용의자가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라고 알려왔다"고 밝혔으나 오클랜드 경찰은 그가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라고 밝혀 그의 국적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총영사관 측은 국토안보부 등의 협조를 얻어 고 씨의 정확한 신분상태 등을 확인하기로 했으며, 한국 이름도 애초 알려진 '고원일'이 아닌 '고수남'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경찰은 현재 용의자를 상대로 구체적인 범행 내용과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범행에 사용된 총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방송은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어 통역을 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 씨가 조사에 매우 협조적으로 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 경찰 "희생자, 한국인 포함 국적 다양"
당국은 이번 사건으로 현재까지 모두 10명이 총격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 중 7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3명이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언론에 정확한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적이 한국, 나이지리아, 네팔, 필리핀 등이며, 여성 6명, 남성 1명이고 연령은 21∼41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교직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워드 조던 오클랜드 경찰서장은 "이 대학은 외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많아 희생자들의 국적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한국계 학생 가운데는 심모씨가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심 씨의 아버지는 현지 방송인 KTVU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희생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교 관계자는 "월요일인 오늘은 주로 한국인인 ESL코스와 간호대 수업 밖에 없어 교내 학생들이 많지 않았고, 간호대 학생들은 대부분 현지인인데다 두 강의실이 떨어져 있어 한국 학생들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장 출입이 차단돼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총영사관 관계자도 "간호대는 영주권자 이상만 수강할 수 있어 일단 한국 유학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범행 동기는 학교·학생들과 마찰?…불행한 개인사도 주목
용의자 고 씨는 이날 이 학교에 찾아가 한 여성 교직원(administrator)의 소재를 먼저 물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던 서장은 용의자가 "재학 당시 처우 등으로 인해" 이 직원에게 화가 나 있었으며 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고 씨가 태도와 분노 관리 등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지난해 11월 이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고, 이날 이 교직원은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 씨는 재학 시절에 주변 학생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놀리고 무시하는 등 제대로 대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고 씨는 또 지난해 형과 어머니가 잇따라 숨지는 등 불행한 개인사를 겪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빚을 갚지 못해 살던 아파트에서 퇴거당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 사건 발생 오이코스 대학…학생 100명 안팎의 소규모 대학
한국계 미국인 목사 김모씨가 2004년 설립한 사립대학인 것으로 알려진 오이코스 대학은 신학, 음악, 간호학, 동양의학 등 학과가 개설돼 있으며, 특히 신학과 음악대학을 중심으로 한인 학생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목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무실에 있던 중 여러 발의 총성을 들었으나 사건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 회계사인 제리 정은 "학생은 100명이 채 못되며 영어와 한국어로 강의를 한다. 설립자가 미국에 갓 입국한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신학과 간호학 강의를 제공할 필요를 느낀 것 같다"면서 "캠퍼스는 1개의 건물로 이뤄졌으며, 졸업생들은 주로 간호사와 교회에서 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