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지난 23일 미국 메릴랜드주(州) 스프링필드의 29번 도로에서 검은색 람보르기니 차량이 교통경찰에 단속됐다. 차량 번호판에 영어알파벳이나 숫자 대신 배트맨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차량을 세운 경찰은 곧 모습을 드러낸 운전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스크에 검은 망토, 황금색 벨트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의 남성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배트맨이 경찰단속에 걸렸다'는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배트맨이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둬라", "경찰이 배트맨의 마스크를 벗겼나요" 등의 농담 댓글이 이어졌다.
화제가 된 `29번 도로 배트맨'의 친구인 마이클 로젠월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는 29일 당시 상황과 함께 친구의 감동적인 사연을 1면 기사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했다. 로젠월드 기자는 "당시 경찰은 슈퍼영웅의 행동강령은 존중했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기지 않았다"면서 "배트맨은 자신의 이름이 영화 속 `브루스 웨인'이 아니라 레니 B. 로빈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사업가인 로빈슨(48)씨가 배트맨 복장을 한 채 검은색 람보르기니를 운전하고 다닌 것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들의 병문안을 위해서였다.
아들 브랜든을 통해 배트맨을 알게 된 그는 지난 2001년부터 11년째 한 달에 두세차례씩 지역 병원을 찾아 투병중인 어린이들에게 배트맨 모자, 티셔츠, 가방, 책 등을 선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쓰는 돈만 한해 2만5천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아들 브랜든이 배트맨의 친구 `로빈' 역할을 하면서 함께 다녔으나 지금은 혼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로빈은 어디 갔나요'라고 물으면 "로빈은 대학수능시험(SAT)을 준비하고 있단다"라고 대답한다.
로빈슨씨와 함께 병원을 찾아 어린이들을 만난 로젠월드 기자는 배트맨의 병문안이 의학적인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DC 소재 국립어린이병원의 제프리 돔 박사는 "어린이들이 몇주 혹은 몇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지치게 된다"면서 "슈퍼영웅의 방문은 이들이 기운을 차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