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위원회 793개. 주보 48페이지. 12년 연속 세례자 수 60명…. 서울 초대형교회가 아니다. 전라남도 완도의 성광교회(담임 정우겸 목사) ‘스펙’(spec)이다. 주일예배 참석교인 약 1천명의 이 교회엔 남다른 숫자들이 많다. ‘예배 안내 기획위원회’부터 ‘실직인 사랑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평신도 사역을 세분화한 위원회가 793개에 이른다. 이들 위원회의 사역 내역이 매주 48페이지의 주보를 통해 공개된다. 차라리 한 권의 책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평신도들의 교회’인 만큼 새신자 정착률이 높아서 지난 12년 동안 매년 60명에게 세례를 줬다. 1년 세례자 수 50명만 되도 ‘기적’이라는 요즘에, 그것도 ‘시골 of 시골’인 완도에서.


이 교회 담임 정우겸 목사는 “신학생 시절 성경을 배우면서 사도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신앙을 전수받은 소위 평신도들 역시 복음전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았다”며 “지금의 교회에도 평신도들로 구성된 리딩그룹이 필요하다. 이제 목사 혼자, 혹은 당회원 몇 명이 교회를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더 이상 평신도는 교회에서 ‘의미없는 다수’가 아니다. 교회 전반에 적극 참여해 다양한 변화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바야흐로 ‘평신도’의 시대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

평신도, 리더십·재정 등 교회 전반에 적극 개입


바야흐로 ‘평신도’의 시대다. 오늘날 평신도들은 더 이상 ‘의미없는 다수’가 아니다. 선교, 봉사 등 교회의 대사회적 사역 뿐만 아니라 재정과 인사를 비롯한 교회 내부 일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특히 목회가 전문화, 다양화 되면서 평신도들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그들은 목자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기독교의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 몇몇 대형교회들이 리더십을 교체하거나 내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평신도들은 더욱 부각됐다. 이들은 공동의회나 별도의 집회, 온라인 등 저마다의 소통 방식을 통해 교회 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그러면서 담임목사 등 리더십을 바꾸는가 하면 당회 결정의 철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는 얼마 전 ‘공동요청문’으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공동요청문은 다름 아닌 이 교회 평신도들이 ‘성추행’ 의혹으로 논란을 일으킨 전 담임목사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사임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간사, 신혼부부, 집사 등 평신도 약 60명은 자신들의 실명을 그대로 밝히며 ‘당회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 같은 공동요청이 있기 전까지 겉으로 보기에 이 교회는 내부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본 듯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많은 수의 평신도들이 당회의 결정에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 이번 일을 계기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의문을 교회 리더들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당회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내부 조율을 거쳐 곧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평신도들이 교회 갈등에 개입, 변화를 이끌어 낸 사례들도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미숙한 모습들이 자주 노출됐지만, 특히 재정과 관련해 한국교회가 전근대적 악습들을 버리고 진일보하는 데 하나의 이정표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밖에 리더십 교체기에 있는 한 교회 역시 교인들이 청빙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스스로 의견을 개진하고 당회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사들 옛날처럼 목회하기 힘들 것… 평신도, 전면에 나서야


앞서 예로 든 완도성광교회 정우겸 목사는 “교회를 비롯해 어떤 단체든 리더 몇 사람의 능력만으론 움직일 수 없다. 보다 많은 이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권위주의적 영향으로 평신도들의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김동호 목사도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신도들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이전 세대들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그런 세대였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렇게만 몰고 가선 안 되는 세대들이다. 목사들도 옛날처럼 목회하기 불편해질 것”이라며 “지도자들은 대개 우민정책을 편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한 게 있어야 교회가 건강해진다. 평신도들이 깨어 건전한 여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평신도 중심 교회’를 모토로 명동에 교회를 개척한 ‘교회다움’ 민걸 목사는 “교회는 양을 먹이는 일과 세상을 섬기는 일, 이렇게 두 가지가 기본 사역”이라며 “목양엔 목사와 장로들의 몫이 크고 지역사회와의 소통에선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목사와 장로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성장 중심이었기에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했고, 그러면서 평신도들을 간과했다. 그러나 이젠 평신도들이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