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피임약을 건강보험 대상으로 의무화한 새로운 정책에 대한 가톨릭계의 반발이 예상밖으로 거세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절충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캠프를 책임지고 있는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7일 MSNBC에 출연해 "우리는 누군가의 종교적 자유를 위축시키기를 원치 않는다"며 "여성들을 위한 예방적 진료도 제공하고, 종교기관의 특권도 보장하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가톨릭계의 반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들의 우려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의 잇따른 발언을 놓고 백악관이 타협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8일 미국 어론들이 일제히 해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1월 피임약 보험적용 여부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톨릭 성당은 예외로 인정하지만, 가톨릭 병원, 대학, 자선단체 등은 피고용인의 피임약 구입시 보험이 적용되도록 의무화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고 여성들의 건강을 보호한다는게 정책의 취지였다.
그러나 가톨릭이 반발하고 나섰다. 가톨릭 교리가 인위적인 피임을 금지하고 있는데 반해 새로운 정책은 가톨릭 단체로 하여금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다.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도 지지하는 여론이 많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단의 반대 파급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이번 정책을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에 '반(反) 종교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백악관은 자칫 이 사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가톨릭계를 달래는 조치에 대한 내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교단과 대화를 추진하며 적극적인 타협책을 고려중이라는것.
하지만 절충점 마련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새 정책을 가톨릭계의 반발에 밀려 원점으로 되돌릴 경우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원칙이 허물어지게 되는 문제가 있다. 또 어느 정도로 절충점을 제시해야 가톨릭계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여성표와 가톨릭 표는 미국 대선에서 승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투표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여성과 가톨릭 양쪽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게 백악관의 과제이다. 정책의 명분도 유지하고, 대선판에 미칠 표계산도 함께 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이 무엇이냐는게 고심거리이다.
타협책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하와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하와이주 법은 피임약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당연히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있지만, 종교단체 고용주의 경우 피고용인에게 미리 피임약은 보험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고 보험회사와 별도의 계약을 맺도록 하고 있다.
이는 종교단체로부터 나온 돈이 피임약을 구입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 피임을 원하는 피고용인이 자기 호주머니에서 피임약 구입 비용을 내도록 하는 것은 막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