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2011년을 뒤로 하고, 올해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의 발걸음도 한창 분주할 때다. 본지는 2012년 목회자들이 붙들어야 할 목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본지 편집고문인 박희민 목사, 민종기 목사, 고승희 목사, 정우성 목사를 초청해 <2012년 한인 이민교회를 말한다”를 주제로 특별대담을 했다. 주제는 <한인교회의 영적 리더십과 권위 회복>이었으며 권위 실추 문제와 목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갔다. 대담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교회의 권위 실추 문제가 목회자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공통된 의견을 보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의 에너지를 선교와 전도는 물론 대사회적 영향력 회복에 투자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대담은 2시간에 걸쳐 본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회 김준형 기자 2012년 한인교회를 두고 많은 주제를 논의할 수 있겠지만, 이 대담에서는 특별히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대사회적 영적 리더십 회복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문제다”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한인교회에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박희민 목사 신학적으로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와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로 나뉘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완전한 교회이며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교회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완전을 지향해 가는 곳이기에 당연히 많은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민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해 봅시다. 한인교회에는 일단 한국교회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주류사회와 구분되는 이민사회라는 특성, 이중문화권이라는 성격까지 복합적으로 더해져 있습니다. 이런 갖가지 문제점이 한인교회의 독특성을 규정하고 있기에 교회의 권위가 쉽게 도전받고 그 권위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목회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진실된 사명감과 섬김의 정신을 갖지 못한 목회자들이 양산되면서 성장 위주의 목회만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회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평신도들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 박 목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목회자의 문제가 신학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이민 신학교들이 훌륭한 사명을 감당하기도 하지만 교파주의에 얽매여 신학교가 난립하면서 교육의 질은 낮아지고 목회자의 수는 넘쳐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교들이 연합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나 제안해 봅니다.
저 역시 목회자의 문제가 결국 평신도에까지 영향을 미쳐 교회의 영적 리더십 실추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성도들을 교회까지 오게 하는 데에는 열심을 내지만 막상 제자훈련과 같은 교육에는 소홀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세상과 맞닥뜨렸을 때에 내공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자 두 분께서 목회자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잘 지적해 주셨는데 이 문제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책임은 없을까요?
고승희 목사 요즘 사람들은 가게에서 혹여 싸움이 생기면 “여기가 교회인 줄 알고 싸우느냐”고 책망한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교회가 사회를 끌고 가기는 커녕 오히려 끌려 가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이미 자신의 모국을 한번 떠나 본 사람들이기에 교회 옮기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편을 다섯번 바꾼 사마리아 여인이나 교회를 여러번 바꾸는 이민자들이나 모두 보통 사람들은 아닙니다.
교회를 잘 바꾼다는 말은 한 교회에서 훈련받고 참고 견디며 성장할 기회가 없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한 교회에서 저 교회로 자신의 필요만을 따라 이동하면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이뤄질 수 없고 이런 분들이 교회에 와서 세상적 가치관을 갖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만 누리려 하니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또한 섬김의 모습조차도 그것이 은혜받은 자로서의 헌신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성취의 동기로 삼고자 하거나 열등감의 발로인 경우가 있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정우성 목사 저는 최근 개척목회를 하면서 “이민교회 성도들이 한국식 교회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단숨에 몇백명, 몇천명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대만큼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때에 크게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기조차 합니다. 이들은 성장이 부진한 이민교회를 대하며 동시에 목회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 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 목회자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도 이민자로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형교회 이상은 자립해 사례비를 받으며 말씀 사역만 할 수 있게 배려를 받지만 작은 교회는 주중에 목회자가 일하고 사모도 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목회자를 본 성도들은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평신도들은 목회자를 대할 때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경험과 자기 철학으로 평가하려 합니다. 교회에는 헌신된 교인이 부족해지고 목회 환경은 더욱 척박해졌습니다.
사회자 교회의 권위 실추 문제는 분명 목회자로부터 시작되어 평신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목회자들이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을까요?
박희민 목사 제가 70년대에 이민목회를 시작했을 때에는 목회자들이 참 헌신적이었습니다. 교회들은 다 작았고 목회자가 사례비를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비량으로 목회했고 아내들은 직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민사회가 성장하면서 동시에 이민교회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커지고 많아졌는데 오히려 이민 초창기에 비해 권위는 더 떨어졌습니다. 교회 내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두 사람만 모여도 갈등이 생기는 법입니다. 갈등이 부정적으로 발전하면 위기가 되지만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고승희 목사 요즘 평신도들의 지적, 영적 수준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교회 권위 문제를 말함에 있어서 사실 목회자의 권위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의 평신도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하고 실력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때 하는 비유를 들으면 그것이 논리적으로 왜 안 맞는지를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들으며 다른 사람들이 “아멘”하는 것을 보면 교회 자체가 이상해 보일 수 밖에요.
목회자들이 평신도를 대하는 시선과 수준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섬기는 아름다운교회는 12월에는 평신도들이 설교를 하는데 그렇게 논리적으로 체계적이며 은혜롭게 잘 합니다. 세상에서 일할 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말하는 것이 훈련이 된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마귀가 얼마나 진보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라”하면 진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고 삶의 기준을 바꾸라”하면 그럴 듯하다 합니다. 결국 같은 말인데 말입니다. “전도 축제”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다 하고 “인생 뒤집기”라고 하면 “나도 한번 가 보자”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세상을 연구하고 시대에 맞게 복음을 잘 전해야 합니다. 마귀의 가장 큰 영적 전략이 이처럼 말씀을 진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좋은 단어는 이단들이 다 가져가서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케 하기도 합니다. 하나되자는 연합의 의미인 통일이란 단어는 통일교가, 구원이란 단어는 구원파가, 안식에 대한 것은 안식교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종말에 대해 말하면 말일성도인가 의심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중요한 단어를 세상 혹은 이단에 빼앗겨 버린 이유는 교회가 성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놓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세상의 코드를 끊임없이 읽어내야 합니다.
박희민 목사 교회의 리더십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교회의 경우 창조적으로 목회하려는 목회자가 전체의 5% 밖에 안됩니다. 15%는 그 5%의 것을 모방해서 약간 변형시킨 후 도입한다고 합니다. 즉 전체의 20%는 세상에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나머지 80%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진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발전하고 평신도들은 앞서 가는데 교회와 목회자는 뒤쳐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들이 크게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민종기 목사 저는 신학자로서 목회 현장에 뛰어 들면서 어떻게 평신도 훈련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훈련을 거친 제자들이 세상을 위한 제자가 아니라 교회 내부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우리끼리 천국이고 우리끼리 행복하고 세상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제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소수였으나 세상에 묻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민교회 초기에도 교회는 소수였으나 목회자들이 민초들의 삶 속에서 함께 그 삶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제도화되고 이민교회도 제도화되면서 이런 모습이 상실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자를 1차적 제자와 2차적 제자로 나누어서, 1차적 제자는 교회 내적인 제자가 되는 것이고 2차적 제자는 자기 소명에서 드러나는 제자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우리는 1차이면서 동시에 2차를 모두 가진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가 되어서 섬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기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박희민 목사 저는 크리스천에겐 두 개의 무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는 교회란 무대이며 또 하나는 사회란 무대입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주연입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고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주연은 목회자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평신도들이 주연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직업이 교수인 평신도는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목회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직업이 정치인이면 법을 바꿀 수도 있지만 목회자는 아닙니다. 목회자는 이 사회에서 조연입니다. 저는 평신도들이 교회에서는 조연으로서 충실히 잘 훈련받고 세상에서는 주연으로서 큰 목소리를 내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조용하고 교회에서는 시끄럽게 하면 교회가 갈등을 겪고 오히려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됩니다.
사회자 평신도들이 삶 속에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목회자가 깨어서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갈등이 빈번한데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여력이 남을까 궁금합니다.
민종기 목사 저는 교회가 갈등을 겪는 이유가 교회의 에너지를 세상 속으로 분출하지 않고 교회 안으로 분출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30-40년간 한인교회가 부흥하면서 우리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에 노력했어야 하는데 건물을 짓는 등 외적인 부분에만 투자했습니다.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양육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인색했습니다. 복음의 문화가 횡적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일을 간과했고 LA라는 우리 삶의 터전을 복음화하는 일을 놓쳐 버렸습니다. 교회가 내적으로만 거대해지니 이를 두고 교회 구성원 간에 갈등과 불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고승희 목사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이 한반도 진출이 목적이 아니라 일본의 내부적 갈등을 분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분출하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일본의 당시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교회도 내부에 쌓이는 막대한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붕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전도와 선교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그 교회는 건강성을 잃어 버립니다.
이민교회도 몇 개 되지 않을 때에는 갈등이 적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져도 사역자들에게 사역의 길을 열어 주지 않고 붙잡아 두려 하니 교회가 깨졌습니다. 싸워서 나뉘어지거나 축복하고 분립해 주거나, 교회가 나뉘어졌다는 결과는 같은데 그 방법과 과정은 판이합니다. 한 교회에 찬양 리더가 4명 있는데 예배는 3번뿐이라면 4명이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를 개척해서 1명의 찬양 리더를 그곳으로 보내 주면 싸우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혹시라도 휴면될 뻔했던 그 1명이 더욱 창조적으로 사역할 길이 열립니다. 개척해 주고 나눠주면 리소스를 잃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사역이 더 확장되는 것이고 갈등도 사라지게 됩니다.
정우성 목사 교회가 섬기고 나누어 줄 때, 성도들도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 주변을 청소하는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섬기고 한글학교를 열어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성인 영어학교를 열어 부모들을 섬기자 젊은 부부들이 소문을 듣고 교회를 찾아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같은 개척교회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것은 가능한 일이었고 또 성도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섬기는 것을 봤습니다. 요즘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내는 헌금 혹은 자신들이 하는 헌신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사회자 그러나 그런 일은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단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 듯 싶은데요?
박희민 목사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본질적 사명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먼저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양육과 교육을 통해 복음을 가르치고 예배를 통해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복된 사람들이 선교하고 전도하고 구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먼저 말씀 안에서 바른 목회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성, 영성 하는데 결국 이 영성은 예수를 닮은 삶입니다. 성육신의 삶입니다. 성육신의 영성이란 예수를 닮은 섬기는 종으로서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자 교회가 사회 속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때에 권위를 회복할 뿐 아니라 본연의 사명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민종기 목사 성육신의 영성이란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요즘 한국사회를 보며 막스주의자들이 품었던 꿈이 한국의 좌파를 통해 실현됐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막스주의자 중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옥중수고(Prison Notebooks)란 책에서 공산주의 운동에는 기동전과 진지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동전은 무기를 들고 나가서 싸워서 한 나라를 전복하는 것입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진지전은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주변을 공산주의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법조인, 기업인, 정치인, 노동자를 만드는 형식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는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전교조 등 전문화된 직업군 안에서도 공산주의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군대에도 침투해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80-9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기독교 서적과 막스 서적입니다. 그런데 막스가 사회 변혁을 말할 때, 기독교는 부흥만 말했습니다. 사회가 정의를 말할 때, 기독교는 자신만을 이야기 했습니다. 교회가 사회와의 접촉점을 상실하자 사회에서 리더십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이민사회에도 곧 닥치리라 보고 있습니다. 신학적 전환, 행동의 전환이 되어야 하고 말 잘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행동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정우성 목사 저도 중요한 것은 말씀을 아는 것이지만 그에만 그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진리의 말씀이 오는 데에 시간이 걸립니다. 이민교회의 살 길은 성도들이 말씀과 영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다시 살며 이렇게 목회자와 리더가 본을 보인다면 교회의 대사회적 리더십과 권위 회복도 그리 요원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고승희 목사 우리가 지금까지 살던 삶의 익숙성을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극복해 가는 방법은 단순, 집중, 반복입니다. 말씀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살지만 우리의 신앙적 삶이 그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런 훈련의 과정을 거쳐서 변화되어야 세상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훈련이 되지 않은 오합지졸은 전쟁에 보내 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됩니다.
그리고 교회 자체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조직적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삼권분립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짜는 부서가 따로 있고 이 일을 수행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결과와 진행 상황을 놓고 점검, 평가하는 부서가 따로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간이 다스림의 원리를 교회에 잘 적용할 때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다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네. 감사합니다. 끝으로 박 목사님께서 2012년 한인교계에 조언의 말씀을 하나 해 주신다면요.
박희민 목사 2012년 한인교회들이 개교회 중심주의를 탈피해서 연합해야겠고 이 연합을 통해 주류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지난해 로즈볼 기도회에는 한인이 1만명 이상 참석해서 미국사회와 타인종 커뮤니티에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앞서 우리가 말한 것처럼 교회가 교회만 보지 말고 사회를 이끌 수 있는 크리스천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의사 등을 키워 사회 전체가 기독교적 비전과 가치관을 갖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 교육이 이런 분야를 너무도 간과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 차세대들을 신앙으로 키우는 것이 수천만불짜리 예배당 건축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2012년에는 모든 지도자들이 힘과 뜻을 모으고 기도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