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연합뉴스) 시카고는 미국에서 인종별 거주지 분리 현상이 가장 심한 곳 가운데 하나다.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암살되기 2년 전인 1966년부터 시카고에서 흑인 민권운동을 펼쳤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다.


시카고 NBC방송은 16일 킹 목사 기념일을 맞아 이 같은 현상의 배경을 조명했다. 이에 따르면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 주는 1870년대부터 흑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당시 시카고에는 이미 흑인 시의원과 주의원, 연방의원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흑인의 정치적 권리 신장과 무관하게 시카고에는 지금도 흑백 인종 분리 현상이 뚜렷이 존재한다. 흑인들은 주로 도시 남부와 서부에 모여 살고 백인들은 북부와 교외지역에 흩어져 산다.


NBC 방송은 이 같은 현상이 1950년대 중반부터 21년간 시카고 시장을 역임한 리처드 J.데일리 전 시장(1955-1976 재임)의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데일리는 지난 해 퇴임한 리처드 M.데일리(1989-2011) 시카고 시장과 윌리엄 데일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아버지다.


데일리는 백인 중산층이 흑인들을 피해 교외 도시로 이탈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흑백 거주지 분리 정책을 고수하고자 했다. 당시 시카고 남부를 지역구로 하고 있던 흑인 연방하원의원 윌리엄 도슨과 일부 흑인 시의원들도 이에 찬성했다. 흑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이 그들에게 의원 자리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킹 목사는 이에 맞서 백인 거주지를 찾아가 행진을 주도했다. 흑인들의 '주거권'을 위해 투쟁한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우리는 흑백 통합, 인종차별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대응했고 킹 목사는 머리에 돌을 맞고 쓰러지기도 했다.


데일리는 경찰을 동원해 이들 백인의 반발을 진압했다. 동시에 법 개정을 통해 흑인들의 시위 규모와 시간을 제한했다.


결국 킹 목사와 협상 테이블에 앉은 데일리는 인종이나 종교에 의한 주택 매매 차별을 금지하는 오픈 하우징(open-housing) 입법과 도시 저소득층의 거주지 이전( scattered-site housing)을 위한 주택 건설 정책 추진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킹 목사가 승리를 자축하며 시카고를 떠난 직후 데일리는 그 약속이 법적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는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었다고 선언했다. 킹 목사의 오랜 친구이자 보좌관이던 랠프 애버내티는 이후 "데일리는 우리가 당할 수 없는 여우였다"고 표현했다.


NBC는 "흑인 민권운동 시기 흑인 지도자들 사이에 '남부지방 백인들은 흑인들이 신분 상승을 꾀하지 않는 한 함께 섞여 사는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북부지방 백인들은 흑인들이 주거지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그들의 신분 상승에 개의치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킹 목사는 남부지방에서는 불 코너, 조지 월레스, 레스커 매덕스, KKK(Ku Klux Klan), 백인 시민위원회(White Citizens Councils) 등 여러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싸워 이겼지만 시카고에서는 데일리 시장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