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지난 2009년 겨울 처가에 들렀다 승용차를 타고 귀경길에 오른 정모(39)씨 가족은 경기도 양평에서 도로 옆 축대벽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씨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당시 네 살과 아홉 살이던 두 딸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끝내 숨졌다.


운전대를 잡은 정씨가 '사고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진술해 단순 사고로 마무리될 뻔했지만 경찰은 석연찮은 구석을 발견했다.


혼자 살아남은 정씨가 사고 열흘 전과 일주일 전 부인이 사망하면 1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받을 수 있도록 거액의 생명보험 두 종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씨 부부는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수시로 외도를 하는 정씨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정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내연녀와 1년여 간 불륜을 저질러오다 사고 보름 전 아내에게 발각당해 크게 싸우며 이혼을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이혼남인 척 행세해 온 정씨가 실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아내로부터 듣게 된 내연녀는 이별을 통보했고 정씨는 '용서해달라'며 매달리기도 했다.


검찰은 정씨가 아내를 죽인 뒤 보험금을 타내 내연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살인 등의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보험사의 의뢰를 받은 도로교통사고 감정사 두 명도 사고 현장 사진과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운전자가 조수석에 주된 충격이 가도록 핸들을 조작했고, 벽에 부딪히기 전 피할 수 있었으나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법원은 결국 결백을 주장하던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강을환 부장판사)는 "제출된 증거만으로 정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는 무죄로 보고 운전 중 전방 주시를 게을리한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만 인정해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 부부의 불화, 보험 가입 등으로 유죄가 의심되더라도 확신을 하게 할 정도로 증명력 있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정씨에게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사로부터 의뢰받은 감정사들이 내놓은 결과이며 사고 발생일로부터 두 달 이상 지난 후 감정했기 때문에 객관적 중립성,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