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데니스에게. 이 카드의 주인은 한때 유럽을 지배했었단다. 바로 3년 전 네가 태어났을 때 일이지. 하지만 지금 그는 죽었고 멸시를 받고 있으며 그의 조국은 폐허가 됐단다."


미국 버지니아 주 랭리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사설 박물관에 새로 전시된 작품 중에는 아버지가 세 살배기 아들에게 보낸 이런 내용의 편지가 있다. 그런데 이 편지지에는 독일 나치의 십자표식과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 편지는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CIA 국장을 지냈던 리처드 헬름스가 아들 데니스 헬름스에게 보낸 것이다. 2차대전 당시 CIA의 전신인 OSS(전략첩보국)의 정보원으로 활동했었던 리처드가 독일 패망 직후 베를린의 히틀러 집무실에 숨어들어가 히틀러 편지지를 훔쳐 가져왔고 자신의 아들에게 이 편지지를 사용해 나치독일의 패망과 역사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적어 보냈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리처드는 히틀러의 편지지에 `한 인간이 인류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에 관한 자신의 역사적 시각을 적어 보낸 셈인데, 특히 CIA 박물관 직원들이 지난 5월 아들 데니스로부터 이 편지를 기증받아 수령한 날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날이어서 의미를 더했다고 WP는 전했다.


1945년 5월29일의 소인이 찍힌 이 편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문구가 적힌 우표 2장이 붙어 있다.


리처드는 편지에서 히틀러에 대해 "그는 권력을 갈망했고 개인으로서의 한 인간을 낮게 평가했으며 지적인 정직함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전 세계 악의 원동력이었다. 그의 죽음, 그의 패배는 인류에게 축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 천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적었다.


리처드는 OSS에 들어오기 전 한 통신사 기자로 일하면서 히틀러를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던 경력을 갖고 있었다. 리처드는 1966년 CIA 국장으로 임명돼 재직하다가 닉슨 대통령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진 뒤 물러났고 이후 이란 주재 미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