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연합뉴스)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26일(현지시간) 밤샘 논의 끝에 유로존 채무·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대책에 합의함으로써 유로존 위기는 일단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유로존 위기가 유럽을 넘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어 EU 정상회의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EU는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위기 해결을 위한 `포괄적' 대책들을 내놓았다.


그간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두 가지 대책을 발표한 것과 달리 이번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포괄한 종합대책이란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상회의 타결 내용이 알려지자 유럽 뿐만 아니라 각국 증시가 일제히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도 크게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은 과거보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으나 유로존 채무ㆍ금융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은 그리스 국채 손실률 확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운용자금 증대, 은행 의무 자기자본비율(Tier I)과 자본 확대, 각국 재정·예산 구조 개혁, 경제·재정 통합과 감독강화 등 5가지다.


이 가운데 시장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은 앞의 3가지다. 이는 모두 금융시장의 유동성과 직접 관련된 사안들이다. 또 그리스 디폴트 우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다른 나라들도 위기를 맞을 것이냐 여부도 1차적으로 이 3가지 조치와 관련 있다.


이번 조치로 그리스의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우려는 일단 가라앉게 됐다.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이 손실률(헤어컷)을 21%에서 50%로 높이기로 합의한 덕분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 부채(3천500억유로) 중 1천억 유로를 탕감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EU의 설명이다. 채무가 너무 많아 기존 원리금을 갚기도 어렵고 추가 이자는 계속 불어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은행들의 자본을 확충해 의무 자기자본비율(Tier I)을 높이는 것은 이미 그리스 국채 투자 손실로 신용등급이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의 위기 시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유럽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에 필요한 1천60억유로의 규모의 자금은 은행이 1차 조달하되 어려울 경우 각국 정부와 EFSF가 지원해주기로 한 대목도 투자자들을 안심시켜줬다.


아울러 구제금융을 투입, 위기 발생 시 소방수 역할을 할 EFSF의 자금 운용 여력을 확대한 것도 주목되는 조치다. 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덩치 큰 나라들까지 흔들릴 경우에 지원할 `실탄'을 대량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U는 정상회의 후 성명에서 "EFSF의 자금 운용 여력을 4-5배로 늘릴 것이며, 자금을 약 1조유로로 늘리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현재 EFSF 자금은 4천400억유로이나 이미 대출 또는 예정인 것들을 빼면 2천500억유로 안팎만 운용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EFSF 자금 운용 여력 확대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채를 매입하는 은행들에 원금 중 예컨대 20%를 EFSF가 보증해 주는 이른바 레버리징 등의 방법으로 확대 효과를 낸다는 초안은 마련돼 있으나 방법이 확정되지 않아 규모 역시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11월에 재무장관회의를 열어 구체안을 확정 짓는다는 것이 EU 측 설명이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에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또 20% 정도의 지급보증만으로 민간 은행 등 투자자들이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 등을 다량 매입토록 유인할 수 있을지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울러 비록 정부와 EFSF가 일부 지원을 해주더라도 그리스 국채의 손실률을 50%로 높인 것을 감당하지 못할 은행들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위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버리지로 확대 효과만 내는 것은 한계가 있고 EFSF의 기금을 실제로 늘리고 유로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근본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내놓았던 `소총들'보다는 나아졌으나 시장이 기대했던 `바주카포'에는 미치지 못하고 `기관총 몇 정'을 내놓은 수준이라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를 비롯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엄청난 채무를 제대로 갚아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이번 유로존 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이 나라들은 국가 빚을 줄이기 위해 이미 가혹할 정도의 긴축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매우 어려워졌고 정치·사회적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나친 긴축으로 내수가 위축돼 성장률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성장을 해야 세수도 늘어나 빚을 갚을 수 있는데 상황은 반대로 벌어지고 있는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이다.


EU가 정상회담 성명서에서 각국 재정·예산 구조 개혁, 경제·재정 통합과 감독강화 등의 방안도 함께 내놓았으나 경제성장이 없으면 중장기적으로 위기는 물밑에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이번 합의가 "요술지팡이가 아니며 개혁을 위한 시간을 번 것"이라고 평하면서 후속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졸릭 총재는 산업과 금융, 노동시장, 공공부문 등의 구조개혁과 함께 세수 확대를 위한 조세 개혁과 생산성 향상, 사회기반시설 구축 등을 거론했다.


이 같은 점을 EU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호세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지난 23일 1차 EU 정상회의에서 브리핑을 통해 안정과 함께 성장기반을 다지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이라며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대책들이 실제로 성공을 거둬야 유로존 채무·금융위기가 해소될 것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