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하는 `월가 점령' 시위가 26일 40일째로 접어들면서 빠른 속도로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위 소득계층 99%를 대변한다는 이들의 분노는 한동안 미국 각지는 물론 세계 각국의 청년 실직자와 진보단체 등으로부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한달을 앞둔 지난 15일에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82개국 1천500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리면서 지구촌 전역에서 반(反) 월가 함성이 휘몰아쳤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그러나 그때를 정점으로 급속도로 잦아들고 있다. 지도부 부재와 조직력 미비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출발한데다, 무질서한 생활과 위생 문제로 인한 주민과의 마찰, 장기적인 노숙생활에 따른 피로감, 추위 등 여러가지 장애요소가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리비아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과 터키 강진 등 대형 뉴스들이 터지면서 언론의 관심도 이들에게서 멀어졌다. 급기야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25일 시위대에 대한 강제진압이 이뤄졌다. 영국 성공회도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 노숙 농성중인 시위대에 자리를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다음은 국가.도시별 시위대의 최근 상황.


◇ 조지아주 애틀랜타 = 경찰이 25일 아침 시위대에 대한 강제진압에 나서 50여명을 연행했다. 이들은 2주 동안 애틀랜타 시내의 우드러프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시위를 해왔다. 이에 앞서 경찰은 전날 자정께 공원에서 떠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곳은 우리의 공원"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불응했다. 경찰은 상공에 헬기를 띄운 상태에서 특공대와 기마요원 등을 총동원해 입체작전을 펼쳤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며칠 전 시위대에 합류한 빈센트 포트 주의회 상원의원도 끼어 있었다. 그는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카심 리드 애틀랜타 시장은 지난 주말 우드러프 공원에서 시의 허가 없이 600여명의 관중이 참여한 콘서트가 열린데 대해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하고 시위대의 공원 점거 허용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 같은날 저녁 경찰이 시청 앞 광장에서 농성을 계속해 온 시위대 수백명을 향해 최루탄 등을 쏘며 해산시키고 85명을 체포했다. 최루탄 연기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한 시위 참가자는 수류탄을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AFP 기자가 전했다. 시위대는 이후 다시 모여 진압경찰을 향해 "이게 바로 우리가 너희를 돼지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외치며 달걀 등을 던졌고 경찰은 페인트 볼을 쏘며 대응했다.


26일 오전 시위대가 있는 현장은 한결 조용해졌으나 긴장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전날 수백명에 달했던 시위대가 이날 오전에는 수십명으로 줄었다.


◇ 뉴욕 맨해튼 = 반월가 시위의 진원지인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도 최근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시위대는 위생상의 문제로 인한 강제퇴거 위기는 무사히 넘겼지만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그치지 않으면서 운신의 폭도 그만큼 좁아졌다. 지난주에는 주민들이 자치회를 소집해 극심한 소음과 노상방뇨 등에 강하게 항의했다. 일부 주민들은 강제단속과 퇴거에 나설 것을 당국에 요구하기도 했다.


혹독한 뉴욕의 겨울을 앞두고 추위와 질병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주코티 공원에서 의료 자원봉사를 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 따르면 최근 기온이 떨어지면서 하루 평균 100명의 시위자가 의료 센터를 찾고 있다.


뉴욕검찰은 이달 초 브루클린 다리에서 시위하다 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수백명에 대한 공소 취하를 제의했으나 변호인 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시위에 나서 다시 검거되면 어차피 다시 기소될 것이 뻔한데다 특히 이런 식의 거래는 시위대의 의지를 꺾어놓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미국 기타 지역 =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당국은 도심 플라자를 점거한 시위대의 와해 작전에 돌입했다. 시당국은 앞으로 야간에는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 하나에 2명의 불침번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자정을 기점으로 모두 내보낸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시위대는 이에 반발하며 지지자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25일 밤에는 야간 총회가 열리는 시간에 모두 150명이 모였다.


뉴멕시코주에서는 수십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뉴멕시코 대학이 교내에 설치된 야영장을 철거할 것을 요청했으나 시위대가 거부하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시내 예일 파크에서 시위대를 내보내고 이 공간을 폐쇄했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콜로라도주에서는 30여명이 덴버 시내의 거점에서 담요와 침낭, 목탄 등을 쌓아두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날 아침 첫눈이 내려 4인치 가량 쌓였지만, 시위대는 당분간 시위를 계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겨울 야영에 관한 브리핑을 받고 저체온증을 점검하는 방법도 배웠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는 시위대에 속한 남녀가 헤로인을 판매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을 시위대에 합류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난 24일 석방했다. 경찰은 시위대에서 마약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기습단속을 벌였다고 밝혔다.


◇ 영국 런던 = 영국 성공회는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 농성중인 시위대에 텐트를 철거해줄 것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지난 15일 금융지구인 `시티' 진입을 차단당하자 길목인 세인트폴성당 앞에 200여 채의 텐트를 세웠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 서열 3위인 리처드 샤르트레 주교는 이날 "성당 앞 시위대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했지만, 노숙 텐트들로 인해 그러한 취지가 완전히 빛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세인트폴성당의 주임 사제도 시위대에 대해 텐트를 철거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시위대는 인근 핀즈베리 광장에 제2의 노숙 장소를 마련해 텐트들을 일부 분산시켰다. 성당 측은 화재·안전·위생 문제를 들어 지난 21일부터 관광객과 신도들의 입장을 금지했고 23일에는 1940년 이후 처음으로 일요일 공개 미사를 열지 못했다.


◇ 캐나다 = 반월가 시위를 주도해온 캐나다의 애드버스터스는 모든 금융·통화 거래에 1%의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로빈후드세(稅)'의 도입을 촉구하는 시위를 이달 29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다음 달 3∼4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이 이런 과세 정책을 도입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애드버스터스는 자체 웹사이트에서 "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자: 매일 전 세계 카지노에서 허비되는 1조3천억달러의 자금을 줄이고 사회프로그램과 환경문제에 자금을 공급하라"고 말했다. 애드버스터스는 지난달 17일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를 촉발하고 주도해온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