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교협 교계지도자 기도회에 초청된 한영훈 총장(한영신학대학교)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과 같은 대형교회가 구조조정되고 중소기업과 같은 중형교회들을 양산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한 총장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특강을 통해 “대형교회는 교인들이 십자가 없는 은혜와 편안함을 제공받을 수 있는 도피처가 되고 있다”며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대형교회와 개척교회로 양분되어 있는 구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 총장은 2백 명에서 3백 명 되는 교회와 5백 명 혹은 1천명 이하의 중형교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인이 5백 명이나 1천 명 되면 수양관도 지을 정도로 교회자체의 커뮤니티가 충분히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총장은 이러한 중형교회들에 대해 “그런 교회들은 인간관계도 제공할 수 있고 최소한의 문화적인 혜택도 제공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교인들의 대부분을 교회의 교사와 성가대, 집사, 권사, 장로들로서 섬기는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며 한국교회의 ‘1천명 성도 이상론’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 한 총장은 “한국교회가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로 양분화 되어 가고 있는 구도를 삼분화 시키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중형교회를 빨리 더욱 많이 만들어서 대형교회에서 영적으로 편안하게 지내는 교인들을 머슴처럼 일할 수 있는 교인들로 만들어야 한다”고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총장은 “한국경제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미래의 나아갈 길이듯이 한국교회가 중형교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중형교회 살리기 운동과 중형교회 많이 만들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렇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미래에 한국교회가 건강해 지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이와 함께 교회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세상보다 더 빠르게 정보화 기기들을 복음전파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자체 인프라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총장은 “사냥꾼이 사냥을 할 때 짐승이 다니는 길목을 예측하고 덧을 놓는다,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을 붙잡아서 천국으로 가도록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며 “젊은이들의 마음과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여 복음을 들고 기다려야 한다. 그 길목이 바로 정보화의 길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길목(SNS)”이라고 말했다.


또 한 총장은 고령화된 목회 연령층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목회자의 재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에서 영적인 성숙이란 주제로 화두가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한국이 가진 지정학적 이점을 잘 살려 세계 복음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총장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선지자적 메시지를 외면했다. 옛 시대가 지나가고 새 시대가 되었으면 마땅히 거기에 맞추어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못했다”며 “개인과 교회와 기독교가 성경적으로 개혁을 시도할 때 한국교회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한영훈 총장 특강 전문.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보며


한영신학대학교 총장 한영훈 목사


한국교회의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올바로 진단해야 한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기도원을 중심으로 성령운동을 하고, 교회에서는 부흥회를 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열심히 성경 공부하는 일을 통해 성장하였는데 그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현재 문제점을 살피고 무엇이 한국교회를 침체시키는지 원인들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진단이 정확해야 미래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이 바르게 설정된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상으로 부족하니까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만 집중하려고 한다. 한국사회는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 사회현상을 모두 고려해야 되는데 그럴만한 시간은 없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편하게 설명하겠다. 부분적으로는 나와 생각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큰 방향에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겠나 생각하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과제”에 대하여 6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


1) 중형교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가 한국경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한국의 경제는 세계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세계 전문가들이 평가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력은 곧 국력인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G20을 개최하여 의장국을 맡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10위 경제대국에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빠른 성장은 수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외국에서 자원을 들여다가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내다 파는 것이 한국경제의 능력이다. 그런데 수출은 대기업의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반도체와 핸드폰, LCD와 LED, 자동차와 조선소의 선박제작, 플랜트, 건설 이런 업종이 한국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토목건설도 한 축을 담당했는데 앞으로는 아파트나 신도시와 같은 건설업이 세계로 수출될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업종은 대기업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것이 그 사람의 명예와 부를 상징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버니까 월급을 많이 받고 그들이 한국사회의 주류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이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빈부의 격차를 벌려 놓았고 그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라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한국교회는 앞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해결하기 위한 조정자 역할을 하여야 한다. 앞으로 한국에는 먹을 것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굶어죽는 절대적인 빈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사회복지 제도가 섬세해 지고 있어서 기초생활비가 지급되고 생계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상대적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더욱 심화될 터인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국사회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상황이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성장한 원인이 무엇인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절대적인 빈곤으로 인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영성을 유지하였다. 우리의 신앙과 기도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기에 절박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빈곤이 교인들의 신앙의 성장에 촉매제로 작용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극제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찾는 일이 궁색하여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과거의 절대적인 빈곤은 한국교회 성장과 영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오늘날의 상대적인 빈곤은 그다지 큰 영향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니까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의 먹고 마시는 문제는 해결되다 보니까 하나님을 애절하게 의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인 빈곤은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로 연결되거나 영성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강력한 자극제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현상이라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성장은 한국의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진행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대기업과 소규모 영세기업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교회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를 가만히 보면 대형교회와 개척교회로 점차 양분되어 가고 있다. 공룡처럼 비만한 큰 교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작은 교회는 평생 동안 목회자가 교인 몇 명 데리고 평생 개척교회처럼 예배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인들은 대형교회가 제공하는 문화적 혜택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에 대형교회를 몰려들 수밖에 없다. 한번 대형교회에 맛들이면 편안함 때문에 떠날 수 없다. 내가 봉사하고 싶으면 하고 종으로 섬기기 싫으면 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대형교회로 몰려드는데 사실 대형교회는 문화적 혜택과 교육의 혜택, 인간관계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성에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떤 측면에서 대형교회는 교인들이 십자가 없는 은혜와 편안함을 제공받을 수 있는 도피처가 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대형교회와 개척교회로 양분되어 있는 구도를 바꾸어야 한다. 2백 명에서 3백 명 되는 교회와 5백 명 혹은 1천명 이하의 중형교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교인이 5백명이나 1천명 되면 수양관도 지을 수 있다. 그런 교회들은 인간관계도 제공할 수 있고 최소한의 문화적인 혜택도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교인들의 대부분을 교회의 교사와 성가대, 집사, 권사, 장로들로서 섬기는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한국교회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해서 한국교회가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로 양분화 되어 가고 있는 구도를 삼분화 시키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중형교회를 빨리 더욱 많이 만들어서 대형교회에서 영적으로 편안하게 지내는 교인들을 머슴처럼 일할 수 있는 교인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한국교회의 성장과 영성을 주도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미래의 나아갈 길이듯이 한국교회가 중형교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형교회 살리기 운동과 중형교회 많이 만들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렇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미래에 한국교회가 건강해 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 정보화를 활용한 전도운동과 선교전략


세계적인 교회 성장학의 대부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교회 성장의 원리”(Your Church Can Grow)라는 책에서 교회성장을 위한 일곱 가지 요인을 들었다. 첫째는 목회자의 리더쉽이다. 한국교회 성장의 첫 번째 요인은 역시 목회자에게 있다. 목회자가 어떻게 목회를 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둘째는 평신도에게 있다. 평신도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목회 사역에 참여시켜 그들의 영성과 은사를 활용하느냐가 교회 성장의 중요한 관건이다. 셋째 요인은 환경과 여건이다. 교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는 예배와 조직, 그리고 모임 사이의 관계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설교와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교회성장의 쌍두마차일 것이다. 다섯째는 교회의 교인들이 동일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경우에 성장한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아무래도 다툼이나 분쟁이 최소화되어 교회를 이탈하는 숫자가 적을 것이다. 여섯째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다. 무조건 나가서 복음을 아무렇게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섬세한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우선순위의 문제가 올바로 정립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순서를 정하여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 시대나 교인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가 제시한 일곱 가지 교회 성장의 원리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섯 번째 사항이다. 효과적인 전도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 사회 흐름이 여섯 번째 사항을 중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정보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화가 새로운 사회와 문화의 화두다. 특히 자라나는 미래 세대는 정보화를 중심으로 모든 교육과 문화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미래는 정보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데스크 탑 컴퓨터로 정보화가 시작되어 노트북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노트북에서 갤럭시 탭이나 아이패드 같은 들고 다니는 컴퓨터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어떤가? 손 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이 대세다. 이 흐름을 주목해 보라. 정보화가 휴대성이 간편한 쪽으로 발전해서 손 안에서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정보화가 변신하는 주기도 상당히 짧아지고 있어서 발전 속도가 놀라울 정도이다. 요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전문가나 유명인들의 일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받을 수 있는 트위터(Twitter)나 전세계에 있는 친구나 가족과 지인들과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것들이 활성화 되었다. 친구관계를 넓힐 목적으로 생겨난 이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가 활개를 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가 공룡처럼 커지면서 이제는 문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 계속 진화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성세대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핸드폰 하나면 인터넷과 교육과 교제와 같은 수많은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은행일도 처리하고 주식도 사고, 음식점도 찾아가고, 네비게이션도 사용하고, TV도 시청하고, 무료문자 서비스도 생겨나서 여러 친구들과 자유롭게 교제한다. 요즘 한국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과거에는 특권층이나 지식인들의 차지였던 정보가 완전히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가? 정보화에 뒤처지고 있다. 정보화의 흐름을 타고 그것을 활용하여 복음을 빠르게 전파해야 하는데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세상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교회는 아주 먼 뒤꽁무니를 힘겨워하며 따라가는 판국이다. 조금 앞서가는 교회가 겨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정도다. 그나마도 젊은 세대가 만족해 할 만큼 홈페이지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저희 대학도 홈페이지를 대폭 수정해서 새롭게 만들고 있는데 지속적인 관리와 정보의 업그레이드, 더 나아가서 홈페이지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서로 교제하는 그런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한국교회가 복음을 정보화시키는데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교회는 젊은 세대를 세상 문화에 모두 빼앗기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보화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인들은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세상문화와 정보라는 바다에 노출되어서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데 그 관심을 돌려놓지 않으면 복음화는 점차 힘들어진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 문화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사냥을 할 때 짐승이 다니는 길목을 예측하고 덧을 놓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복음으로 사람을 낚는 사냥꾼이다.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을 붙잡아서 천국으로 가도록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복음의 사냥꾼인 우리들이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젊은이들의 마음과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여 복음을 들고 기다려야 한다. 그 길목이 바로 정보화의 길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길목(SNS)이다. 가급적이면 한국교회가 복음을 정보화시켜서 자라나는 세대가 쉽게 접할 수 잇게 만들고, 그들의 기호에 맞게 옷을 입히고,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고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앞선 세대의 희생과 헌신을 먹고 살는지 모른다. 과거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선배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희생의 덕을 누리고 있다. 그들이 흘린 십자가의 피와 헌신이 오늘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이끌어온 목회자와 장로들이 은퇴하고 나면 교회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지금 193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가 하나둘 은퇴를 하거나 소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모두 그 세대다. 70년대에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조용기, 곽선희, 박조준, 나원용 등의 목사가 은퇴하였고, 하용조 목사도 8월 초에 63세에 돌아가셨다. 한국교회의 노장들이 완전히 은퇴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이미 때가 늦었지만 지금 그것을 준비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두움이 찾아오기 전에 미리 정보화가 가져다 준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는 복음을 전파하는 지혜가 한국교회에 절실하다.


3) 목회자의 재교육


이미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교육도 변화하는 세계에 맞추어 제2의 복수전공에서 이제는 제3의 복수전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최소한 세 가지 전공은 가지고 있어야 죽을 때가지 벌어먹고 살 수 있다. 예전에 습득한 자격증과 전공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시대의 빠른 변화속도로 인해 많은 직업이 사장(없어지고)되고 새로운 직업이 생성되고 있다. 그래서 세상도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여 재교육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는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흐름에 맞는 시스템을 갖춘다. 그래서 한국기업체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적응하기 위해 체질개선을 하고 있고 그러한 체질 개선을 위해 빠르면 40대 늦으면 50대에 은퇴시킨다. 쉽게 말해서 물갈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업이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경제가 세계화의 흐름에 적응하는 비결이다.


이제 교회를 생각해 보자. 한국교회는 성장하는 한국기업체와 달리 퇴보하고 있다. 그 원인은 한국교회와 한국경제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주소를 올바로 진단하여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정확하게 처방을 내릴 수 없다. 한국교회는 한국기업체처럼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회도 변화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목회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을 재교육해야 한다. 현재 교회는 시대의 흐름이나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목회자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니 변화하는 세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얼마 전에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다. 이제는 5년 주기도 깨어져서 단축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빠른 시대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목회자를 재교육해야 한다. 따라서 현대세계에 적합한 목회자 양성과 재교육이 시급하다. 생각해 보라. 대기업은 조기은퇴를 통해 물갈이를 하면서 변신을 꾀하여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세계화로 나아가는데 교회의 목회자는 조기은퇴를 시킬 수도 없다. 늦어도 65세에서 70세까지는 담임이 보장된다. 그러니 구조조정도 힘들다. 그래서 세계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대 간의 차이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한국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걸 해결하는 최선책은 재교육 밖에 없다.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이미 채플에 참석할 때 성경책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삼성이 만든 갤럭시 탭이나 아이패드를 들고 들어온다. 어떤 학생은 아예 스마트 폰으로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듣는다. 그것은 기성세대에게 낮선 것이고 경건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고전적인 경건성보다 현대화된 실용성에 기초한 경건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하고 있는데 목회자의 사고는 고정되어 있다. 일부 목회자는 갤럭시 탭을 강단에 가지고 올라가서 그것으로 설교원고를 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목회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교회의 미래 성장을 저해한다. 아니 새로운 세대를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이 허락하는 범주 안에서 교회와 목회자들이 재교육을 통해 변신을 도모해야 한다. 급속도로 줄어드는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교회에 남아있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새로운 교회 문화를 창출하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의 길을 제시해 주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목회자가 재교육을 통해 교인들에게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비전을 제시해 준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4) 성장이냐 성숙이냐


한국교회는 교회 성장의 제1기라고 부르는 1970년 이전에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였다. 교회 성장의 제2기인 1970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교회 성장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었다. 문제는 1990년대 들어와서 시작되었다. 교회성장의 제3기인 이 시기부터 교회성장이 둔화되면서 하강기에 접어들었다. 1989년의 교회 성장률은 9%를 기록하였다. 1990년에는 6%, 1991년에는 4.5%를 기록하였다. 그러더니 2005년부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지금도 마이너스 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숫적으로 플러스 성장을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결과”에 따르면 기독교 인구가 876만명으로 19.7%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10년 후인 2005년 조사에서 기독교 인구가 861만 6천명으로 18%를 차지하여 불교의 1072만 6천명으로 22.8%에 뒤를 이은 것으로 나왔다. 이것은 보수교단에서 한국교인을 1300만으로 주장한 것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통계청이 1995년 조사한 것보다 2005년 조사한 것에서 기독교 인구가 15만명이나 줄었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니까 믿을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해마다 개신교인 20만명이 사라진다고 주장하였다. 20만명이면 작은 교단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교회의 쇠퇴는 빠른 인구감소와 함께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학자들은 부지런히 한국교회가 쇠퇴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성장이 감소하는 이유는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적인 원인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정체성 약화 내지는 상실, 자기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개교회주의의 팽배, 목회자의 소명의식의 결여, 성도들의 영적인 훈련부족 등을 꼽는다. 외적인 원인으로는 사회의 부패한 측면에 대한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 상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높은 도덕기준의 상실과 윤리성 부재, 선교열정의 냉각과 선교정책의 부재 등을 든다. 그런데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원인을 교회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대사회적인 측면에서만 국한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구변화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양적인 성장에서 영적인 성숙이란 주제로 화두가 넘어가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양적인 성장일변도의 교회성장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교회의 성숙은 교인의 성숙과 무관하지 않다. 성숙한 교인들의 인격과 사고가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성숙시킨다. 따라서 교인들의 신앙과 인격을 성숙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들 들어, 초신자 양육, 제자훈련, 성경공부, 사회봉사 같은 프로그램을 복잡한 사회 현상에 적합하게 맞춤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인 한 사람이 덕스럽지 못한 일을 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지만 여러 사람이 덕을 세우면 사람들이 다시 물이 맑은 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성숙을 통해 교회의 물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5) 한국교회의 세계화


과거에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와 헨리 그른왈드(Henry Grunwald)가 지적했던 것처럼, 실제로 기독교가 태평양을 건너 극동에 들어왔다. 헨리 그른왈드(Henry Grunwald)는 타임지에서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오래 전에 전망하였다.이러한 예측들은 현실로 다가와 이루어졌으며, 한국교회로 하여금 이제는 더 이상 “내 교회,” “내 민족의 교회”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세대학교 이사였던 원일한 박사는 “한국교회의 미래: 도전과 대응”에서 한 나라에서 어떤 종교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35%∼40%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을 고려하면 더 이상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감소하는 추세를 생각하면 그의 주장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의 미래는 국내가 아닌 세계 속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이미 세계 기독교 인구의 분포가 변화되고 있다. 앞으로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인은 42%에 불과하고 58%가 아시아인들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거의 60%라는 기독교인이 극동에 있게 된다. 이것은 앞으로 극동이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들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한국교회가 아시아와 세계라는 무대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기여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은 기독교인의 수가 3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40대 교회 중에 27%를 한국교회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1위와 2위가 한국교회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교회가 “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 없으며 눈을 떠서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질 때가 이미 지났다. 이미 백여년전 1905년에 고종의 밀사로서 헤이그에 파견되었던 헐버트가 앞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기독교를 수출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이제 헐버트와 같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세계교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의 유기적인 연관 속에 새로운 백년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세계화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다. 이미 한국교회는 자체적으로 세계화 되고 있다. 탈북주민이 점점 늘어나 한국에 정착하고 있다. 통일부가 2011년 2월 3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2010년 11월 중순에 2만 50명이었다. 2000년에 300여명이었는데 2002년에 1천명, 2006년에 2천명으로 늘어나더니 이제는 2만명이 넘어섰고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중국교포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동남아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가 15개 국가에서 21만명이나 된다. 그들이 매달 3천명씩 떠나야 하는데 40%가 떠나지 않아서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다. 결혼이민자는 올 6월 말에 19만 8451명이나 되었습니다. 20만명이 적은 숫자가 아니다. 방문취업제도 2007년 3월에 도입되었는데 29만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다. 토탈 약 100만명이 넘습니다. 이제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라 이웃이 되고 있다. 한류와 같은 문화적인 현상이 국가 사이의 장벽을 급속도로 허물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이미 인구구조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세계화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는 급속도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한국교회가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을 활용하는데서 미래의 갈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가지는 선교사를 파송해서 외국인을 복음화시키는데 주력하였는데 이제는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어떻게 복음화시킬 것인가에 관심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탈북주민을 훈련시켜서 통일 이후에 그들이 북한을 복음화 시킬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통일이 되었을 때 남한 사람이 북한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는 것보다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가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동남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북한 복음화와 아시아의 복음화에 달려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이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대 국가 사이에 끼어 있어서 강대국들을 복음화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또한 동남아 국가와 피부색이 비슷하여 선교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여기에서 한국교회가 세계화 되어야 하는 이유와 사명을 찾을 수 있다.


6) 교회개혁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해 왔다. 과거의 것을 고집함으로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유교사상이 선조들의 것을 보전함으로 효도한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 교회의 목회자들도 그런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가 살아남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변화는 필수적인데 문제는 그 변화가 성경적인 개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체질 개선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변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을 구원시켜야 하는 교회도 체질을 개선시키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니 새로운 삶을 요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교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성경에 유대교를 생각하면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유대교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장로들의 유전을 중시하였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살기 위해 변해야 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그들이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사라지고 이방의 땅에서 포로로 살게 되었을 때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예루살렘에서 살 때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율법을 저버린 것을 회개하면서 회당을 건설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된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였다. 성전 중심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제사의식 중심에서 말씀중심으로, 우상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 유일신 사상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변화에 성공해서 이방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자신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다니엘의 예언대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여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여 새로운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이 유대교가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와 개혁을 통해 성공한 비결이다.


반면에 유대교는 예수님 당대에 성경적으로 변화되지 못하였다. 새로운 메시야의 시대가 개막되었는데도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파묻혀 옛 것을 고집하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버림당하였다. 종교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선지자적 메시지를 외면하였다. 옛 시대가 지나가고 새 시대가 되었으면 마땅히 거기에 맞추어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못했다. 이것이 유대교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대거 유입시켜 새로운 시대의 천국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주역으로 삼지 않았는가! 이렇게 역사가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현대 사회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성경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개인과 교회와 기독교가 성경적으로 개혁을 시도할 때 한국교회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오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