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쌀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 만큼 고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고생을 자처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그건 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들이다. 최근 고향과도 같은 시카고를 방문한 에디오피아 박종국 선교사(Mission Hills 아프리카 대표)를 만났다.
▲최근 고향과도 같은 시카고를 찾은 박종국, 장은혜 에디오피아 선교사 부부를 헤브론교회 선교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종국 선교사는 선교에 대한 힘듦보다 소명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의 아내 장은혜 선교사도, 아프리카 오지에서 외롭고 힘들때도 있지만 사역(내 일)이 있기에 견뎌낼만 하다고 말했다. |
그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 아프리카 선교, 힘드실텐데... 힘들땐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솔직히 아프리카인들의 주식인 '인젤라'(신 맛이 나는 부침개)를 하루 세끼 먹는다는 건 고역이죠. 바다가 없으니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생선도 없고, 마땅히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도 없죠. 인터넷은 근래 들어오긴 했지만, 사용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써야하죠."
- 왜 하필 새벽 5시에 일어나 인터넷을 써야 하나요?
"인터넷이 연결되는 시간이 그 시간이기 때문이죠. 낮에는 연결이 안 됩니다. 전화 모뎀을 이용한 다이얼업으로 연결하는 건데, 그거라도 들아와 있으니 다행이죠."
하지만 그는, 그저 '힘듦'을 토로하는데만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그곳, 아프리카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그는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건 바로 '소명'이었다.
이어서 그는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은 계기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갔다.
"힘들어도 부르심(Calling) 때문에 견뎌낼 수 있죠. 우리에게 맡겨주신 현지인 사역. 이게 가장 큽니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죠. 사실 저희는 선교지를 결정할 때 3가지를 우선순위에 뒀어요. 첫째는, 한국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것. 둘째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반응이 가장 큰 곳으로 갈 것. 셋째는 열매가 많은 곳으로 간다는 거였고, 교회 개척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염두에 두었어요.
제가 처음 에디오피아로 가게 된 것은 1983-84년 당시 가뭄 때문에 한창 고생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이들을 돕고자 모금을 해서 아프리카 단기선교를 한달간 다녀온 적이 있었죠.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교회 청년들은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저 혼자 돌아오는 길에 에디오피아를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 못 사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에디오피아 남쪽 지방에 '아와사'라 하는 지역으로 내려갔어요. 갔더니 지푸라기로 지은 집(교회)에 젊은 청년들이 2백여 명이 모여 있더라구요. 그 청년들이 제가 목사니까 저더러 설교해 달라고 해서 마치고 나올려고 하는데, 젊은이들이 손을 붙들면서 "이곳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세요" 하는 거에요.
사실 공산권이 무너지고 루마니아로 갈려고 기도하고 있던 때였어요. 그 뒤로 루마니아와 에디오피아를 놓고 왔다갔다 하다 점점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로 절 인도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결국 결정하게 됐는데, 선교지에 사역하러 가기까지도 사연이 많아요. (웃음)
선교에 대한 사명을 받기까지…
어린 시절, 유치원 다닐 때서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었어요. 그런데 장성해서 군대 들어간 뒤로 조금씩 반항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장로 아버지, 권사 어머니 밑에서 범생이었는데 말이죠. 어릴 때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것도 한번 재고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한번은 소프트볼 게임을 하다 서드 베이스로 달려가는 제 앞에 한 미군이 자기 무릎으로 막아서 사고가 났어요. 전 그 때 대구에 있는 미 8군 병원 앰블런스에 실려갔고, 기절했다 겨우 깨어났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릴 적 제가 서원했던 기도를 생각나게 해 주시더라구요. '네가 목사 되겠다고 했는데, 어찌 여기 와서 방탕하게 이러고 있느냐…'
그래서 제대 후 총신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신학생 시절, 방학 때 선교번역훈련원에 가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고, 목사 안수도 받았어요. 그 후 왕성교회에서 부목사로 7년간 사역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날 새벽기도 설교를 하러 가는 길에 트럭과 부딪히는 큰 사고가 났어요. 당시 차는 다 망가졌지만… 다행히 차 안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게 제겐 두번째 하나님의 콜링(Calling)이었죠.
그 후 하나님께서는 제게 에디오피아를 선교지로 주셨어요. "
“때론 힘들어도 소명 때문에 오늘도 묵묵히…”
"여태껏 18년간 그곳에서 지내왔는데, 곧 네번째 안식년을 지내야 할 때가 다가오네요. 한 때 2-3년간 말라리아 풍토병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던 적도 있었어요. 의사마다 진단 내리는데 병명이 다 다른 거에요. 다 나열할 수 없을만큼 고생 많이 했고, 온갖 약을 다 먹어봤어요.
이 말라리아 풍토병으로 인한 통증이 커서 이대로 죽나보다…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어요. 하지만, 그 아픔을 갖고 죽어도 선교지에 가서 죽자는 심정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선교지에 가서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사역했어요.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몸의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셨어요.
지난 17년간 에디오피아에는 단기선교팀도 한번 안 왔었는데, 올해엔 유난히 하나님께서 축복을 많이 해 주셨어요"
최근 들어 그에겐 굵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짐마 방화사건이다. 이들 선교사 부부가 에디오피아 남부 짐마 지역에 있을 때(현재 선교거점으로 삼고 있는 아디스 아바바 지역으로 오기 전, 원래 짐마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극단 무슬림들의 방화 테러로 인해 마을이 불바다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거의 초토화됐다. 이런 악재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란듯이 더 크게 축복해 주시는 듯 하다.
"올해 3월달엔 한국서 김상복 목사님이 오셔서 사흘동안 집회를 인도해 주셨어요. 수만명의 사람들이 복음에 응답했어요. 그리고 7월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 방문해 61년만에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방문해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는 일도 있었죠.뿐만 아니라 8월에는 뮤지컬 '히즈라이프' 공연팀이 와서 7만명의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선교지에서 육체적 고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니 건강도 회복하게 해 주시고, 사역도 확장케 해 주시더라구요. 정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됐죠.
군 시절 받았던 첫번째 콜링, 차 사고 당시 들었던 두번째 하나님의 음성, 세번째 말라리아로 인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경험. 이렇게 저는 이미 세번의 죽음을 맞이했어요. 이젠 더이상 하나님이 불러가셔도 여한이 없습니다."
- 흔히, 선교사라 하면 현지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산다는 얘기가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아프리카에서 사역하실 의향인가? 진짜 뼈를 묵을 각오인가.
"네 그렇죠.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 에디오피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관문이죠. 이미 성경에 60번 이상 언급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구스 네시가 세례를 받고 돌아와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뿌려졌는데, 7세기부터 동부 아프리카가 이슬람화 되기 시작해 인접한 나라를 보면 이미 90퍼센트 이상 이슬람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어요. 중동 이슬람에서 아프리카 남부를 이슬람화 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에디오피아를 타켓으로 삼을 정도로 지리적 요충지입니다. 참고로 이슬람 쪽에서는 에디오피아 대로변에 1킬로미터 마다 이슬람 사원을 세우겠다는 전략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죠. 지난 3월에 열린 대형부흥집회를 통해 5만명이 모이는 등 기독교가 성장세를 보이니까, 이슬람 쪽에서는 방화 테러를 일으키는 등 심한 핍박을 가해 오기도 했어요.
-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아들(대선) 하나 딸(지연) 하나인데, 현지엔 중학교, 고등학교가 없어서 아이들을 케냐에 있는 MK 선교사 자녀학교에 보내 공부시켰어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축복해 주셔서 딸은 얼마 전부터 필라델피아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을 했고, 아들은 공인회계사(CPA) 미국 본부에 온지 한달 정도 됐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기도 뿐이죠. 그래서 작년 11월부터 8개월간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조식금식을 하면서 기도해 왔어요. 정말이지 하나님께 구할 때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선교사로서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죠.
- 마지막으로 시카고 교계에 요청하시고 싶은 것은?
최근에도 에디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북부 지역이 오랜 가뭄으로 많은 이들이 굶어죽고 있어요. 극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는, 에디오피아 정부로부터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학교를 세울 부지를 받아 과학기술대학 건립프로젝트(United African University of Ethiopia)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기술대학은 컴퓨터학과, 비서학과, 한국어학과, 자동차학과ㅏ 등 5개 학과로 구성되며, 과별로 30여명의 신입생을 모집해 개교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기도와 물질의 협력을 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디오피아 용사 가족들을 위해 집 리모델링을 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사는 집에 가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닭장 보다 더 심하다 싶을 정도죠. 지금은 벌써 할아버지가 된 용사들의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스폰서쉽도 마련해 드리고 있어요. 한국이나 미국에선 몇푼 되지 않는 학비이지만, 그들에겐 큽니다.
지역 심방을 하다 보면, 어려운 환경 가운데 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너무 어려우니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도네이션 해서 돕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을 한명 두명씩 스폰서를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후원 결연을 맺어왔는데, 앞으로는 여기다 도서관을 마련해 책도 구비해서 아이들을 교육시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하자면, 커뮤니티 센터 같은 성격이죠. 이게 세워지면 스폰서 받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도 와서 책도 읽고 공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런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책상이나 의자 등을 헌물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에디오피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으니, 시카고 교계에서 단기선교 봉사팀도 많이 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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