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8일 의회 연설은 사실상 내년 대선을 겨냥한 `승부수'로 볼 수 있다. 실업률이 수개월째 9%를 웃도는 등 경기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이대로 가면 재선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4천470억달러를 투입하는 특단의 대책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업률이 7.2%를 넘는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과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취임후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 인식'도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경기활성화 방안은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 회복과 표심 자극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봉급 급여자들에 대한 급여세 감면과 학교, 도로, 교량 등 공공인프라 확대를 통해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모두 일자리 창출과 소득 확대를 노린 것으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희소식이다. 아울러 실업자를 새로 고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과 교사 등의 해고를 막기 위한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연설 내용의 윤곽이 드러난 지난 7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지수가 2.5%나 오른 것도 이같은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백악관은 이날 연설이 미국 경제의 부활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담았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연설 자체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에도 여러차례 대국민 연설을 정국 반전의 기회로 삼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 연설을 계기로 최근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수세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른바 `의회 꾸짖기' 전략을 거듭 구사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약 45분에 걸친 연설 내내 "지금 당장 통과시켜야 한다"는 말로 의회의 발목잡기를 부각시켰고 '정치적 곡예'라는 단어까지 동원했다.
지난 19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인플레이션 대책을 내놓은 뒤 이에 반대하던 야당이 역풍을 맞으면서 자신은 재선에 성공한 사례를 재연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정치평론가인 로버트 달렉은 "트루먼 전 대통령은 야당이 자신의 대책을 반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발표를 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회'라고 공격했다"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노림수가 실제로 통할지는 미지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다 대책의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 미국 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 4천500억 달러 정도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우선 이날 연설에 담긴 대책의 상당수가 의회에서 처리돼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우선 과제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의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른바 일자리 대책은 같은 정책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 필요한 게 아니다"라면서 "이는 일자리 계획이 아니라 재선 계획"이라고 비난, 향후 의회 논의 과정에서의 `험로'를 예고했다.
백악관도 대규모 재정지출에 대한 공화당의 거부감을 감안했을 때 이날 연설에 담긴 대책이 모두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경기회복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이날 대책 가운데 핵심인 감세와 실업수당 확대 연장이 기존 정책을 이어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내놓고 있다.
지난 2009년 발표했던 경기부양책이 8천억달러에 육박하는 규모였던 것에 비해 이번 대책으로 새로 집행되는 부분은 1천300억달러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기회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달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어떤 추가 경기부양책이 나오느냐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