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연합뉴스) "1천원 갖고 있으면 2천원 도와주고 싶어. 그런데 더 많이 못 도와줘 미안할 뿐이지." 혼자 살면서 수십년째 명절만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팔순의 할머니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양기리에 사는 엄추월(84) 할머니.


엄 할머니는 지난 5일 불우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공도읍사무소에 10㎏짜리 쌀 50포대를 공도읍사무소에 기탁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400만원어치가 넘는 배 200상자를 읍사무소와 인근 지역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엄 할머니는 "올해는 몸이 안 좋아 병원 다니느라 조금밖에 못 도와줬어요.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엄 할머니는 매년 추석과 설에 이웃을 돕고 있다. 벌써 15년이 넘었다.


할머니가 이웃돕기에 쓰는 돈은 서울에 떨어져 사는 두 딸과 사위들이 매월 보내주는 50여만원의 용돈을 모아 마련한 것이다. "늙은이가 뭐 돈 쓸 때가 있어. 조금 농사짓는 걸로 먹고사는데 어려움 없고 자식들 잘 커서 돈 달라고 안하고. 이제 이웃하고 나누며 살아야지."


엄 할머니가 이웃돕기에 나선 것은 자신이 어려운 시절 못 배운 것이 한이 되고 젊은 날 고생을 하며 살았기 때문.


엄 할머니의 남편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올해 환갑을 넘긴 둘째 딸을 낳기 직전 인민군과 모르는 한 사람을 따라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엄 할머니는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혼자 악착같이 두 딸을 키웠다. 두 딸을 서울 유명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환갑 때는 딸과 사위들이 서울 큰 호텔에서 잔치하려고 예약까지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취소시키고 대신 그 돈을 받아 당시 어렵게 살던 시댁 장조카의 집을 지어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24년 전 서울 모 대학 앞을 지나다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던 한 학생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고, 이 학생은 "오늘 오후 5시에 등록 마감인데 등록금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 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 100만원을 찾아 이 학생에게 이름도 묻지 않고 줬으며, 자신의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동안 선행이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엄 할머니는 "더 도와주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 점점 힘들어.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남을 도우며 살고 싶은데...미안해"라고 말했다. 엄 할머니는 이날 인터뷰를 끝내면서도 "별거 아니야. 왜 이런 것 갖고 전화해"라며 오히려 부끄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