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귀에 익숙한 '해야', '이 밤을 다시 한 번',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등 1980년대를 풍미하며 인기 대중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던 조하문(51), 그가 목사로서 한국에 돌아와 선교활동에 나선다. (사진: 조하문 목사와 가족들. 아내 최지원 씨는 탤런트 최수종의 누나다)
조 목사는 최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캐나다에선 주로 이민자나 장애인 공동체를 섬겼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돌을 던질 곳은 한국이라고 여겼다”면서 귀국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최진실의 죽음'이라고 밝혔다.
조하문 목사은 1997년 기독교인이 된 후 캐나다에서 목회활동을 해왔다. 그는 죄수, 환자, 아프리카 난민, 마약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집회 활동을 펼쳤고, 지난 2002년부터 새빛맹인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시각장애우들을 섬겼다.
2003년 캐나다 이민 후 장애인공동체 ‘파티시페이션 하우스’(Participation House)에서 7년간 협력목사로 일하면서, 비전교회, 토론토하나교회 등에서 6년간 담임목사로 한인 목회를 했다.
조 목사는 “최진실이 죽었다는 사실에 목사로서 너무 속이 상했다. 최진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그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캐나다는 아름답고 조용한데, 나를 낳아준 고향은 앓고 있었다”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을 찾아다니며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조 목사는 종교를 초월해 자살방지 계통의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지난 6월부터 배우, 가수, 탤런트, 코미디언, 시나리오 작가 등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가칭 ‘생명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단체를 발족했다.
조 목사는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온 건 없지만, 육체와 마음이 아픈 모든 이들(특히 마음이 아프지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면서 일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음반 발표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늘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현대기독교음악(CCM)들은 일반 대중음악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그런 점을 감안해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에 버금가는 CCM을 만든다면 목사지만 음악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