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God does not test me because He needs to know what is in me. He tests me so I can see what is in me.” 번역하면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알게 하시는 시간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C. S. 루이스(C.S. Lewis)가 한 말로, “시련(테스트)은 하나님이 인간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의 믿음과 본모습을 자각하고 성장하게 하려는 목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루이스의 이 말은 신앙생활에서 고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준다.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먼저 “Why me?” 즉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내 안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 걸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험하셨다.

[3] 모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알아 가시는 장소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였다.

[4] 평안할 때는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모든 일이 잘될 때는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아니면 환경을 의지하는지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찾아오면 숨겨져 있던 마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돈이 부족해지면 돈에 대한 나의 태도가 드러나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인내의 실체가 드러난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정욕구가 드러난다.

[5]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사랑하고 있었는지가 제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앞에 거울을 세우시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6] 시험 자체가 기쁘고 즐겁다는 말이 아니다.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연단하시며, 인내라는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뜻이다.
금은 불 속에 들어간다고 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불은 금 속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갑자기 만들어 내는 마법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실제로 어디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자리이다.

[7] 1969년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해 비행하던 중 산소 탱크의 폭발로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전력과 산소가 부족했고, 우주선의 정상적인 달 착륙 임무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승무원들은 달에 내려가는 대신 생존하여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바꾸어야 했다. NASA의 관제팀과 우주비행사들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마침내 1970년 4월 17일 세 승무원 모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8] NASA는 이 사건을 “성공적인 실패”(successful failure)고 설명하기도 했다.
평소의 훈련만으로는 그들의 모든 역량이 얼마나 실제적인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가 찾아오자 준비된 능력과 협력, 침착한 판단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다. 위기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그 사람 안에 이미 있던 것을 밖으로 드러낸다.
신앙의 시험도 이와 같다.

[9]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셨기 때문에 시험하신 것이 아니다.
그 시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10]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왜 이것을 없애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이 시험을 통해 제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시험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약함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도록 이끄신다.

[11] 그러므로 오늘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너무 빨리 “왜?”라는 질문으로 결론 내리지 말라. 어쩌면 지금의 시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거울일 수 있다.
“보아라. 네 안에 이런 약점이 있었구나. 이제 그것을 내게 맡기고, 나를 더욱 의지하라.”
시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 가시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아 가는 시간임을 알고 오늘을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