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4 년 12 월, 우리나라의 65 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서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은 65 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재외한인 사회의 고령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의 경우 이민 1 세대가 대거 시니어 세대로 진입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연령 구조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 의 Lifelong Institute(PULI)가 실시한 미주 한인교회 시니어 사역 현황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교회의 60 세 이상 시니어 성도 비율은 평균 60.9%에 이르렀다. 대형교회까지 포함한 수치이기 때문에 중소형 교회만 놓고 본다면 시니어 비율이 80~90%에 이르는 교회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이제 교회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늘어나는 시니어 성도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러나 필자는 이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들을 어떻게 다시 교회의 사역자로 세울 것인가?” 이 질문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오늘의 교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새로운 목회적 과제이다.
시니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꾸어야 한다
고령화는 단순히 교회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의 사역 시스템과 조직 구조, 리더십 운영 방식, 사역의 방향과 실행, 더 나아가 목회 철학 전반에 걸친 변화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시니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시니어를 단순히 교회의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들에게는 교회의 세심한 돌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시니어들은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오랜 신앙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 풍부한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김형석 교수는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생을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인생 후반기는 단순히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은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누구를 세우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묻는 시간이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 시니어들은 누구인가? 대부분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지켜 온 사람들이다. 봉사와 희생으로 교회를 세웠고,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했으며, 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해 왔다. 사회적으로도 각자의 분야에서 수십 년의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 더구나 백세시대를 맞이하면서 건강을 잘 유지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어떤 이들에게는 재정적인 여유도 있다. 달리 말하면 인생의 전반기보다 사역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 현실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시니어들이 은퇴와 동시에 교회의 중심에서 뒤로 물러난다. 특히 전통적인 교회 구조에서는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으로 오랫동안 섬기던 사람들이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공식적인 역할에서 은퇴하게 된다. 대부분의 교단 헌법도 항존직 직분자들의 시무정년을 70 세로 정하고 있다. 은퇴한 장로·집사·권사는 제직회의 언권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지만 표결권은 없다. 오랫동안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사역을 담당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더욱이 중소형 교회에서는 은퇴하는 장로들을 대신할 새로운 리더를 세우지 못해 정상적인 당회 구성조차 어려워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직분자의 정년 문제는 목회자의 은퇴 연령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제도와 사역 구조만으로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교회의 연령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니어를 교회의 ‘지난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사역 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Active Senior 사역
예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9:17). 초고령사회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시니어 세대에게 주신 가능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교회에도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부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Active Senior 사역”이다.
필자가 말하는 ‘Active Senior’는 단순히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년층을 뜻하지 않는다. Active Senior 란 나이가 들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삶의 목적과 소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의 건강과 은사와 환경에 따라 교회와 세상 속에서 능동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몸과 시간과 경험으로 섬길 수 있다. 신체적인 활동이 어려워지면 기도와 후원과 격려로 사역을 계속할 수 있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찾아와도 여전히 믿음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본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따라서 Active Senior 사역은 일부 건강하고 능력 있는시니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모든 시니어가 자신의 형편과 은사 안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살아가도록 돕는 사역이다.
PULI 의 조사 결과는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70 세 이상 성도 가운데 63.8%가 “건강이 허락된다면 사역에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은퇴 후에도 교회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도 미주 한인교회에서는 42.8%, 한국에서는 40.7%에 이르렀다. 시니어들이 사역하기 싫어서 물러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사역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와 구조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다시 사역의 주체로 세울 수 있을까? 몇 가지 기본안을 제시해 본다.
1. 소그룹이 시니어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첫 번째 전략은 소그룹 중심의 시니어 사역이다.
PULI 조사에서 앞으로 교회가 운영하기를 원하는 시니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응답을 보인 것이 ‘시니어 성도를 위한 소그룹 운영’이었다. 미주 한인교회에서는 67.3%, 한국교회에서는 67.8%가 이를 원했다. 특히 주일에만 모이는 프로그램보다는 주중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여기서 말하는 소그룹은 기존의 구역이나 목장과 같은 교회 조직의 하부 구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심과 필요, 사역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을 의미한다.
좋은 사례가 애리조나의 Palm West Community Church(PWCC)이다. 이 교회는 상당수 성도가 70 세 이상의 시니어이지만 예배, 교육, 봉사, 행정, 각종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그룹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니어를 프로그램의 소비자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시니어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역할을 맡고,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기도 인도, 연락, 음식 준비, 심방, 성경공부 인도, 봉사활동 등 작은 역할이라도 구성원들이 직접 담당하게 하면 자신이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취미활동과 교제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노인대학과는 다른 개념이다. Active Senior 소그룹의 핵심은 ‘참석’이 아니라 ‘참여’이며, ‘대접받음’이 아니라 ‘섬김’이다.
2. 시니어의 수준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수준 높은 시니어 프로그램과 콘텐츠의 개발이다.
PULI 조사에서 현재 교회가 운영하는 시니어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는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프로그램의 다양성 부족과 낮은 수준이 지적되었다. 오늘의 시니어들은 과거와 다르다. 상당수가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축적했으며, 디지털 환경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단순한 식사와 친교, 관광과 오락에 머문다면 시니어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Active Senior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양질의 콘텐츠’이다. 시니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발견하며,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남은 생애의 사명을 찾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자서전 쓰기, 감사 일기, 찬양 나눔, 기도 동행, 선교지 방문, 북클럽과 같은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상실과 질병, 외로움, 죽음, 신앙 성장과 같은 시니어들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는 소그룹도 필요하다. 취미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취미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활동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섬김을 배우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와 보람을 경험하도록 연결해야 한다.
특별히 앞으로의 시니어 사역은 Spiritual Care, 즉 영적 돌봄의 영역으로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상실과 외로움, 질병과 죽음이라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신앙 안에서 다루며, 시니어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와 아픔이 존중받고 그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니어 맞춤형 성경공부도 더욱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단순한 성경 지식 전달을 넘어 말씀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고, 배운 말씀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울의 고백처럼 겉사람은 후패해 갈지라도 속 사람은 날로 강성해 지는 영적 성숙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생활밀착형 자원봉사도 좋은 모델이다. PWCC 가 운영하는 Home Help 사역처럼 시니어 가정의 가벼운 집수리를 돕고, 병원에 동행하고, 생활상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역은 교회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훌륭한 접점이 될 수 있다.
3. 시니어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세 번째 전략은 시니어 선교 사역의 활성화이다.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가치 있을까?” 필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대답 가운데 하나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니어 세대는 선교를 위한 귀중한 자원이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다. 교육, 의료, 경영, 기술, 상담, 행정 등 선교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영적 경험과 인생의 지혜 역시 젊은 세대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자산이다.
과거의 선교는 장기간 해외에 거주하는 전통적인 선교사 모델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기선교, 전문인선교, 비즈니스선교, 자비량선교, 협력선교, 온라인선교, 국내 타문화권 선교 등 매우 다양한 형태가 가능해졌다. 교통과 통신의 발전, 인터넷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선교의 문을 열어 준것이다. 모든 시니어가 해외 선교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복음을 위해 다시 사용하는 삶은 충분히 가능하다. 인생의 전반기에 자신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위해 살았다면, 인생의 후반기에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경험과 달란트를 세계 선교와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보다 아름다운 인생 제 2 막이 어디 있겠는가.
4. 디지털과 AI 도 시니어 사역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디지털 접근성과 온라인 사역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법, 유튜브 활용, 온라인 소그룹 운영 등 시니어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면 활동 영역은 크게 넓어진다. 특히 한국과 미주 한인 시니어들에게 카카오톡은 이미 중요한 생활 도구가 되었다. 이것을 단순한 안부와 정보 전달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말씀 묵상, 기도 제목 공유, 소그룹 활동, 선교 소식, 돌봄과 상담 등 Active Senior 사역의 도구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의 발전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AI 기술은 건강관리, 일상생활 지원, 정서적 돌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니어를 돕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AI 말벗이나 반려 로봇 등을 활용해 외로움을 완화하고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개별 교회가 AI 기반 돌봄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단이나 교계 기관들이 힘을 모은다면 시니어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황에 맞는 찬양과 말씀을 제공하며,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을 돕는 새로운 디지털 사역 도구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기술도 결국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돌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5. 활동할 수 없어도 사명은 끝나지 않는다
Active Senior 사역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Active’라는 말을 신체적인 활동 능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건강이 약해져 외부 활동이 어려운 시니어도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할 수 있으며, 젊은 사역자와 다음 세대를 격려할 수 있다. 병상에서도 가족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니어 각자의 건강 상태와 환경, 은사를 고려해 참여의 방법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역도 교회가 공식적인 사역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강단에 서고 회의를 이끌어야만 사역자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일도 사역이며,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도 사역이고, 다음 세대를 축복하고 격려하는 일도 귀한 사역이다. 몸의 활동은 줄어들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사명까지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Active Senior 사역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시니어가 살면 교회가 산다
시니어는 단지 노년기에 접어든 교회 구성원이 아니다. 그들은 수십 년의 신앙 여정과 공동체 섬김을 통해 다듬어진 영적 자산이며, 교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세대이다. 따라서 Active Senior 사역은 또 하나의 ‘노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교회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세대 간의 연대를 회복하며, 시니어를 다시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목회적 전환이다. 시니어가 관람자에서 사역자로, 소외된 사람에서 동역자로, 수혜자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될 때 교회에도 새로운 활력이 일어날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시니어가 살면 교회가 산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Nearing Home』에서 노년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본향을 바라보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 시니어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이민교회를 포함한 한국교회가 걸어온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워진 믿음의 여정이었다. 이제 교회는 초고령사회라는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신실한 믿음으로 교회를 지켜 온 시니어들이 있다. 교단과 지교회는 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앙과 경험과 은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 Lifelong Institute 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Active Senior Ministry Leadership 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시니어 사역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한 학교나 기관만의 과제가 아니다.
이제 한국교회와 미주 한인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시니어들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뒷자리에 앉혀 놓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세울 것인가? 성경은 노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그들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청청하리로다.” (시편 92:14). 나이가 들었다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사람에게만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있다. 젊은 세대가 가진 힘과 시니어 세대가 가진 지혜가 만나고, 다음 세대의 열정과 이전 세대의 신앙 경험이 연결될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시니어들이 다시 피어나고, 그들의 삶과 믿음과 경험이 다음 세대를 세우며, 그들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헌신이 교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