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의 항해: 신약 성경의 바다를 항해하다
- 5회: 성경의 양자 역학: 내 지식과 무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평행우주 5
1947년의 어느 봄날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사해 서북부 해안의 쿰란이라고 하는 마을 근처에서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사해 근처의 바위 절벽에 위치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목동은 동굴 안에 자신의 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멩이를 던졌는데 놀랍게 돌이 그 아래 있던 항아리를 맞췄습니다. 항아리 안에는 가죽과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두루마리는 약 2,000년 된 고대 문서였습니다. 다음 날 목동은 자신의 사촌을 동굴로 데리고 가서 동굴 안을 살펴봤습니다. 그 안에서 여러 뭉치의 양피지 두루마리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이 두루마리들을 중고 상인에게 약 20파운드 (당시 약 3만 원)에 팔았습니다. 그 상인은 이 두루마리들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과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주교에게 나누어 팔았습니다. 이후 10년에 걸쳐서 쿰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추가로 두루마리 조각과 문서들이 발굴되었는데 이들은 BC 3세기경부터 AD 68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사해 사본 (또는 쿰란 사본)은 히브리어와 시리아어 (아람어)와 그리스어 (헬라어)로 기록된 유대 문서들로 에스더서를 제외한 히브리어 성경의 모든 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해 드렸던 마소라 사본보다도 약 1,000년 전에 필사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렇게 먼저 기록됐다는 것은 훨씬 원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소라 사본은 현재 우리가 읽고 공부하는 구약 성경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이 마소라 사본보다 더 원본에 가까운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환호를 보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본이 마소라 사본과 다른 내용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해 사본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구약 성경의 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을 발견하였다는 사실과 동시에 지금까지 사람들이 읽고 믿었던 구약 성경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근본적인 질문과 나아가 두려움마저 던져주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해 사본과 마소라 사본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사해 사본과 마소라 사본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1,000년이라는 시차가 무색하게도 두 사본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구약 성경 본문이 얼마나 정확히 전승되어 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이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디모데후서 3:16)라는 말씀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언제 정해졌을까요? 그러니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만이 성경이라고 정해진 시기와 굳이 꼭 66권만 성경이라고 결정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먼저 구약은 AD 90년경 유대인 랍비들이 얌니아 회의에서 39권 구약 성경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러면 "얌니아"는 무엇인가요? 얌니아는 지명입니다.
현재의 텔아비브에서 12마일 정도 남쪽에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얌니아였을까요? 종교 중심지는 예루살렘이 아닌가요? 눈치채셨겠지만 AD 70년에 성전과 함께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서 끝까지 항쟁하던 유대인들은 거의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대다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가복음 13:2)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믿고 이미 예루살렘을 떠난 다음이었습니다. 결국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대인 랍비들은 얌니아에 정착하게 됐고 이곳은 새로운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AD 1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유대인 랍비들에게 있어서도 더 이상은 무시할 수가 없는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자기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에 더해서 이제는 자신들을 위협하게 된 정도의 세력이 된 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유대인 랍비들은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자기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구약 성경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정한 39권은 그들이 이단으로 정죄했던 기독교의 구약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 역시 성경의 기록 과정 가운데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 성경은 언제, 어떻게 성경으로 확정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이어볼까 합니다.
다음 호를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 달라스 생명샘 교회 안광문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