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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문화, 그 화해와 공존을 위해 평생에 걸쳐 빚어낸 폴 틸리히의 명작" 

20세기 신학을 칼 바르트와 양분하며 현대 신학의 지형을 형성한 폴 틸리히(Paul Tillich). 그의 대표적 저작 중 하나인 <문화의 신학>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이 책은 틸리히가 평생 천착해온 종교와 문화의 관계, 신학과 철학의 대화, 그리고 신앙의 실존적 차원을 집약한 걸작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폴 틸리히는 우리 세대의 가장 창조적인 종교사상가"라고 극찬했고, 알버트 아우틀러는 "신학과 문화가 실제로 서로 교류하고, 유럽과 미국의 배경이 융합된, 틸리히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이 책은 신학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읽힌다. 

인간과 문화, 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 

<문화의 신학>은 폴 틸리히가 20여 년간 집필한 15편의 논문을 담고 있다. 책의 구성은 그의 일관된 주제인 종교와 문화의 본질적 관계를 점층적으로 탐구한다. 

1부 "기본적 고찰들"에서 틸리히는 종교가 단순한 선택의 영역이 아닌 인간 정신의 필연적 차원임을 밝히고, 존재론적·우주론적 종교철학의 유형을 분석해 두 전통이 상호보완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히 3장 '시간과 공간의 투쟁'은 예언자적 유일신 사상이 시간의 하나님 이해를 통해 이교적 공간신 이해를 극복한 역사적 전환을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의 시간적·역사적 계시가 인간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통찰하게 한다. 

종교와 문화의 상호작용, 그리고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2부 "구체적 적용"에서 틸리히는 개신교와 예술, 실존철학과 정신분석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윤리학과 교육의 문제 등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위대한 개신교 회화'로 평가하며, 예술을 통한 인간의 죄책·불안·절망의 표현이 곧 개신교 원리를 드러낸다고 해석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또한 실존주의와 정신분석학이 신학에 선물한 '인간 이해의 깊이'를 언급하며, 신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겸손을 강조한다. 

윤리학과 교육론에서 그는 사랑이 정의를 포함하며, 도덕주의를 넘어선 참된 도덕의 길임을 역설한다. 기독교 교육이 문자주의를 넘어 상징을 살리는 인문주의적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교회학교와 신학 교육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유럽과 미국, 동방과 서방을 아우르는 신학적 시선 

3부 "문화적 비교"에서 틸리히는 독일 신학 전통에서 미국 실용주의 신학으로의 전환, 미국과 러시아의 종교문화 비교, 그리고 마르틴 부버 사상의 기독교적 함의 등을 고찰한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장을 목격한 그는 미국에서 교파적 다양성과 세계적 시야를 발견하며, 신학의 지평이 지역주의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마르틴 부버에 대한 평가에서는 부버의 예언자적 종교 해석, 신비주의 재발견, 그리고 문화 이해가 개신교 신학에 어떻게 도전과 자극을 주었는지를 다룬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도전 

마지막 4부 "결론"은 복음의 소통 문제를 다룬다. 틸리히는 진정한 복음 전파는 상대의 실존에 참여하되 동일화하지 않으며, 그로 하여금 명확하게 결단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오늘날처럼 교회의 언어가 사회와 단절된 시대, 그의 이 통찰은 복음의 소통 방식을 재고하게 한다. 

21세기를 위한 20세기의 지성 

<문화의 신학>은 단순한 신학서가 아니다. 한국교회와 기독 지성들에게 폴 틸리히는 교리 중심의 전통적 신학을 넘어, 현대 사회와 대화하며 진리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길'을 보여 준다. 정재현 교수의 말처럼, 그의 신학은 "교회의 신학"을 넘어서 세상으로 향하는 신학이다. 

20세기를 양분한 신학자,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교리를 다진 바르트의 신학이 필요하다면, 세상과 대화하며 복음을 새롭게 해석한 틸리히의 신학도 그 못지않게 필요하다. <문화의 신학>은 그 사유의 정점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되는 '문화 속 신앙'의 가능성을 탐구하게 하는 책이다. 

추천 독자 

이 책은 ▲신학과 철학, 현대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 ▲교회 밖 세상과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기독 지성 ▲바르트 중심의 교리 신학을 넘어, 폴 틸리히 사상의 진수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된다. 

이 책을 통해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은 20세기 중반의 오래된 미래를 되돌아보며, 오늘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