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평론은 지난 6월 23일에 이어 영화 <씨너스: 죄인들(Sinners)>을 다룹니다. 1930년대 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했던 美 미시시피주에서 술집을 연 두 흑인 형제들과 뱀파이어의 전투를 주된 서사로 삼는 작품으로, <블랙팬서>를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5번째 장편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주연은 마이클 B. 조던, 헤일리 스테인펠드 등이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토착 원시종교→ 고등종교 토착화
토착화, 원시종교 영향 기괴 변질
국악 찬양, 한옥 성전, 새벽기도...
복음에 도움 주는 토착화 있지만
올바른 복음 비트는 요인 되기도

<씨너스: 죄인들>에 정교하게 묘사된 1930년대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의 종교성에서 음악 외에 눈여겨 볼 만한 요소는 주술이다. 주술은 원시종교를 지탱하는 핵심 종교 행위로서, 초월적인 힘에 기대어 인간의 삶에 깃든 고난들을 해결해 보려는 몸부림이다.

종교사회학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현존하는 고등종교는 모두 선사시대 여러 주술적 원시종교 가운데 몇 가지가 체계적 교리와 제의, 그리고 도덕규범을 정립하며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소수 원시종교들이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각 나름의 공동체적,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데 탁월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나와 내 가족, 친지, 그리고 부족뿐 아니라 이방인, 타민족까지 포용하는 신의 은총과 자비, 박애를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는 종교만이 고등종교로 발전할 수 있다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어떤 종교가 됐든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여전히 원시종교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된다. 

오늘날 세계 종교인 현황을 보면 고등종교인 4대종교(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를 믿는 이들 수가 원시종교를 믿는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원시종교의 영향력을 단순히 신도 수로만 평가할 경우 각 지역 종교인들의 종교적 삶의 실태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어렵다.

고등종교 신자들 가운데 다수가 각 지역 토착신앙으로 잔존하고 있는 원시종교의 주술적 신앙 행태에 여전히 깊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종교 본래 내용이 토착 원시종교의 영향으로 기괴하게 변질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기독교 신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토착화'라고 한다.

정통 기독교 신학 연구자들과 교역자 입장에서 토착화는 한편으로 복음화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올바른 복음을 비트는 심각한 문제 요인이기도 하다.

사실 토착화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과 교회생활 어느 부분에서 토착화를 허용하고, 어느 부분에서 방지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찬양이나 교회 건축 양식, 혹은 공동체 모임 형식의 토착화 같은 것은 전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복음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교회의 문화적 요소는 각 문화 요소의 원래 목적을 지키는 한에서는 얼마든지 토착화가 가능하다.

한국교회의 예를 들자면 국악 형식을 빌린 찬양이나 한옥 형식 예배당 혹은 서구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벽기도 등은 각각의 기독교적 문화요인에 배정된 목적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그 형태를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

<시너스: 죄인들>에 등장하는 흑인 성가대 찬송만 하더라도, 중동이나 서구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음악 형식을 빌린 토착화된 교회 문화 가운데 하나다.

▲<씨너스: 죄인들>에 등장하는 흑인 성가대 찬송만 하더라도 중동이나 서구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음악 형식을 빌린 토착화된 교회문화 가운데 하나다.
▲<씨너스: 죄인들>에 등장하는 흑인 성가대 찬송만 하더라도 중동이나 서구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음악 형식을 빌린 토착화된 교회문화 가운데 하나다. 

문제적 토착화: 민족주의와 지역색에 찌든 한국교회의 고민거리
후두교, 영화에서 긍정적 묘사돼
영화 속 기독교, 토착화 문제 사례
한국교회 역시 이런 위험 노출돼
민족주의·지역색 희석 작업 필요

토착화의 진정한 문제는 복음의 핵심 진리와 토착 종교의 교리 및 주술이 뒤섞일 때 발생한다. 복음의 토착화는 온갖 이단 발흥의 주된 원인이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최대 위협 가운데 하나였던 영지주의 기독교 이단들은 당시 그리스 문화권이었던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복음이 토착화되면서 발생한 분파들이다.

북아메리카에 강제로 끌려온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신앙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백인들은 따로 번듯한 목회자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들은 간혹 주일에 노예 소유주의 초청을 받은 백인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는 것이 신앙교육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설교들은 노예 소유주들에게 순복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러니 부두교나 후두교처럼 토착화된 혼합종교가 탄생하는 것은 당시 흑인 노예들을 구속하고 있던 사회 구조상 당연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1692년 메사추세츠 지역에서 발생한 악명 높은 세일럼 마녀 재판 사건도 처음에는 흑인 여자노예가 기억하고 있던 서아프리카 토속 종교전통이 개신교 공동체의 어린 소녀들에게 전파되면서 시작됐다. 이는 당시 백인 개신교 공동체가 청교도 신앙을 지킨다고 하지만, 막상 흑인 노예들은 순전히 착취 대상으로만 봤을 뿐 그들에 대한 신앙교육에 소홀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 거의 대다수가 이런 식의 취급을 받았다. 해리엇 비처 스토 여사가 저술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나오는 것처럼, 독실한 신앙인 가정에서 그나마 충실하게 성경교육을 받은 흑인 노예는 노예제 시절의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흑인 노예들이 기억하고 있던 아프리카 토착 종교와 기독교 신앙의 기형적 혼합은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미국 내에서 자생한 부두교는 뉴올리언스 지역에 남아 있던 프랑스 가톨릭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 신앙이, 후두교는 미시시피 델타 지역 개신교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혼합돼 탄생했다.

▲미국 내에서 자생한 부두교는 뉴올리언스 지역에 남아 있던 프랑스 가톨릭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후두교는 미시시피 델타 지역 개신교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혼합돼 탄생했다.
▲미국 내에서 자생한 부두교는 뉴올리언스 지역에 남아 있던 프랑스 가톨릭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후두교는 미시시피 델타 지역 개신교 교리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이 혼합돼 탄생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선교지의 사회적 부조리 척결과 평등한 교육기회 보장에 힘쓰는 이유 가운데는 바로 이런 토속화된 이단 발생을 방지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올바른 신앙교육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선교 사역의 결실을 맺기가 매우 어렵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선교 사역, 특히 바울 사도의 선교 사역이 당시 가장 문명화된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지역에 집중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나마 교육 기회가 많이 열려 있는 지역들이 그 지역에 전파된 복음을 순전하게 보존해서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데 유리하다고 사도들이 판단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처음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조선의 구시대적 교육 내용을 혁파하고 서구의 계몽된 교육 체계를 확립하는 데 많은 힘을 들였다. 이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복음 전파의 밑바탕을 마련하고 복음이 무질서하게 토착화돼, 이단이나 기괴한 혼합종교 교리로 변질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영화 <시너스: 죄인들>에서 후두교는 비교적 긍정적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묘사된다. 작중 불우한 삶을 사는 흑인들을 위로하고 당면한 뱀파이어의 습격을 퇴치하는 데 효험을 보이는 후두교 주술은 대공황 당시 미국 남부 흑인 커뮤니티 고유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종교 문화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이는 흑인들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차별, 교육기회 박탈, 그리고 그로 인한 복음의 지적 탐구 역량 약화라는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토착화의 문제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교적 종교성에 의한 복음의 왜곡, 이는 토착화의 가장 위험한 폐해다.

▲후두교 주술은 흑인들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차별, 교육기회 박탈, 그리고 그로 인한 복음의 지적 탐구역량 약화라는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 토착화의 문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후두교 주술은 흑인들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차별, 교육기회 박탈, 그리고 그로 인한 복음의 지적 탐구역량 약화라는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 토착화의 문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역시 이런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유·불·선 종교 문화와 무속의 종교적 영향이 한국 기독교 내부로 침입해, 복음의 중심내용을 훼손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민족주의에 편승해 문제적 토착화마저 한국 기독교회의 정상적 특성으로 규정하는 우를 범한다.

복음은 민족성과 지역색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인류보편적 진리와 은혜를 전한다. 그러니 교회가 과도한 민족주의나 지역주의에 함몰되면, 대부분 문제적 토착화의 덫을 피하지 못한다.

한국교회 역시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신학' 혹은 '한민족 신앙'이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과 신앙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될 때, 거의 반드시 복음의 핵심 내용을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보수우파 기독교계의 반공신학과 진보좌파 기독교계의 민중신학 양쪽 모두에서 목격한 바 있다. 향후 한국 기독교회가 올바른 복음의 내용을 지켜나가려면 한국교회를 짙게 물들인 민족주의와 지역색을 상당부분 희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시너스: 죄인들>에서 후두교로 예시된 그릇된 신앙 토착화 사례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교훈을 전한다.

▲박욱주 교수.
▲박욱주 교수.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