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택하셨다."
철학자이자 신앙인으로 106년을 살아낸 김형석 교수의 신간 <나의 인생, 나의 신앙>은 한 시대를 관통한 한 인간의 내밀한 신앙 고백이자, 사랑으로 빚어진 철학의 결정체다. 14세의 소년이었던 그가 평북 송산리의 작은 시골교회에서 주님을 만난 순간부터,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 유학과 전쟁을 거치며 연세대학교 교수로서 지성의 길을 걸어오기까지, 그의 삶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정"이었다.
"삶이 곧 신앙이었고, 사랑이 곧 철학이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예정론과 자유의지 논쟁으로 갈라진 한국교회의 현실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교리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체험한 것은 '은총의 선택'이었다." 그의 고백은 단순한 신학적 해석을 넘어, 평생을 통해 깨달은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도 자유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택하심'의 여정
중학생 시절 부흥회에서의 체험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계란 속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온 것 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신앙은 단순히 교리와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껍질을 깨뜨리는 사건이었다. 이후 숭실중학교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자퇴한 일, 가가와 도요히코의 강연에서 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택함 받은 자의 간증, 그리고 일본 유학 시절 전시 체제 속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나니"(요 15:16)라는 말씀으로 다시 선명해진 소명... 그의 인생은 언제나 택하심의 흔적이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해방 직후, 열네 살 때 드린 기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그는 차창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렸다. "주님은 철없던 시절의 내 기도를 기억해 주셨는데, 나는 그 뜻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회개와 다짐은 이후 그의 신앙을 단단히 세운 기둥이 되었다.
사랑을 삶으로 증명한 철학자
<나의 인생, 나의 신앙>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 중 하나는 마우리 선교사와의 일화다. 장티푸스 환자를 사택으로 데려와 돌보고 입원시킨 선교사를 보며, 그는 "신앙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일이며, 주님을 대신해 사랑을 베푸는 삶"임을 배웠다. 그의 철학은 사랑의 철학이었고, 그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잃지 않은 평안
전시 일본에서 자원입대 강요 앞에 절망하던 그가, 성경 말씀에서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그는 이 말씀 앞에 무릎 꿇고 가장 짧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그때부터 그는 어떤 폭풍우 앞에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았다.
신앙과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증언
오늘날 신앙과 삶의 괴리 속에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김형석 교수의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울림을 전한다. 그것은 교리를 넘어선 신앙, 즉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진실이다.
"내가 살아온 106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철학자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다 간 그의 마지막 고백이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의 길을 다시 밝혀주길 바란다. <나의 인생, 나의 신앙>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과 신앙을 하나로 살아낸 자의, 가장 깊은 기도이자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