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율법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선 이름인 카먼 조이 아임스 박사는 이 질문에 성실하고도 깊이 있는 답을 내놓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다>는 신약 시대에 들어와 '율법은 이제 무용지물'이라거나 '율법은 구속의 수단이 아니다'라고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시내산 언약과 율법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새롭게 조명해주는 책이다.
율법, 규정이 아닌 은혜의 선물
저자는 십계명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중심으로, 율법이 단순히 규칙의 모음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나타낸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는 자'가 되었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택함 받은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 그분의 성품과 주권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에 율법을 주셨다. 그분은 '이것을 지켜야 너희를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율법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침이자 선물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다>의 가장 큰 강점은 십계명 속에서 복음의 씨앗을 발견해낸다는 점이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이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부르지 말라는 금지 조항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자로서 그분의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고 풀이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불편한 도전을 던진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다는 것은, 이제 그 이름이 나의 존재와 삶 전반을 규정하고, 내 말과 행동, 선택을 통해 그 이름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는 소명이다. 동시에, 그 이름은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포이자 은혜의 표식이다.
이스라엘의 이야기, 그리스도인의 이야기
아임스는 이 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시내산에 도착해 언약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세워가는 여정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광야를 지나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이름을 새기시고 인도하시는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책은 구약 율법을 단순히 '폐지된 옛 제도'가 아닌,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된,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삶을 빚어내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법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 율법과 복음의 통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학문성과 목회적 울림을 모두 갖춘 책
크리스토퍼 라이트, 다니엘 블록, 제프리 아더스 등 저명한 구약학자들이 이 책을 극찬하는 이유는, 아임스가 탁월한 학문적 깊이 위에 목회적 감수성과 평이한 언어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복잡한 구약의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녹여내어,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생은 물론 일반 성도도 부담 없이 읽고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또한 각 장마다 개인 묵상과 소그룹 토론을 위한 질문, 바이블 프로젝트의 연관 영상 안내 등이 수록되어 있어, 교회 교육과 제자훈련 교재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자로서의 정체성 회복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다>는 단순히 구약 율법을 해석해주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를 묻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정체성과 소명의 근거를 새겨주는 책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중재하기 위해 우리를 세우시는 것이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영광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새긴 자로서, 우리는 그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으로 부름받았다.
이 책은 구약 율법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싶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자로서 정체성과 소명을 고민하는 신학생과 목회자, 성경의 통일성과 언약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싶은 신학도, 시내산 언약과 모세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연속성을 탐구하는 구약 독서 모임 및 성경공부 그룹에 추천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다>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은혜를 남용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신학적 성찰과 함께, 오늘도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 그 이름을 세상 속에 드러내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도전과 위로를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