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한복판에서 불현듯 밀려오는 허무,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의 소용돌이, 의미를 상실한 일상 속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지혜의 언어들>은 그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로 독자들을 전도서의 세계로 초대한다. 저자 김기석 목사(前 청파교회)가 CBS 성서학당에서 전도서 전체를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된 이 책은, 전도서 1장부터 12장까지를 지혜, 시간, 관계, 실천 등 스물네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풀어낸 묵상집이다. 그러나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깊은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영혼의 언어이자, 치열한 삶을 견디는 자들을 위한 '지혜의 초대장'이다.
허무 속에서 피어나는 지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의 서두를 장식하는 이 강렬한 문장은 저자의 삶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 신앙의 언어가 되어버린 시대, 성공과 행복이 믿음의 열매처럼 포장되는 교회 문화 안에서, 저자는 그 담론에 쉽게 스며들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삶의 심연에 깃든 그늘, 욕망과 허무의 실체를 직면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전도서는 단순한 지혜서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껴안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해방의 텍스트'로 다가왔다.
이 책은 전도서를 염세적 텍스트로 오해하는 이들에게도 명쾌한 해석을 제시한다. '헛됨'은 단지 허무함이 아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애착하는 모든 대상이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깨달음이며, 그로부터의 자유다. 이 자유야말로 전도서가 말하는 기쁨이며, 그리스도인을 진정으로 유쾌하게 하는 메시지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영혼의 훈련
<지혜의 언어들>은 독자에게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훈련을 요청한다. 시간은 단순히 소비되는 자원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이며, 그 선물을 충만하게 누리는 법을 익히는 것이 전도서를 읽는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의 삶을 성찰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내일'만을 바라보는 인생은 결국 공허에 빠지게 된다. 전도서는 시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에게 다시금 질문하게 한다. "과연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이 책은 단지 철학적인 사유에 머물지 않는다. 전도서의 말씀을 일상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도록 안내한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전도서 2장은 인간의 자기성찰 능력을 강조한다. 밥만 먹는 삶이 아니라, 의미와 보람을 먹는 삶이 진짜 인간의 삶임을 상기시킨다. 그 의미는 결국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절망에 빠진 이를 구할 수 있듯,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무너진 이들을 위한 신학적 언어
<지혜의 언어들>은 단순히 전도서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너진 이들을 위한 치유와 회복의 언어로 기능한다. 인생의 길이 막혔을 때, 바위를 옮기지 못해 절망할 때, 저자는 "그 바위를 잘게 쪼개보라"고 조언한다.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지만, 잘게 쪼갠 바위를 하나하나 치워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이 문제보다 크다'는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
또한 선한 일을 했음에도 상처받는 경우, 받는 이가 오히려 더 고통받는 상황 등 일상의 윤리적 딜레마도 전도서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주는 이'의 자만함이 받는 이에게 그림자가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진정한 사랑으로 베풀 수 있는가. <지혜의 언어들>은 그것을 '은총'의 언어로 말한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잘 줄 수 없다는 진실을, 조용하고 단단하게 전한다.
전도서, 그 삶의 지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지혜의 언어들>은 성경 전도서를 단지 고대의 지혜로 해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의 언어로, 오늘의 독자를 위한 '지혜의 언어'로 바꾸어낸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 속에서 멈추어 삶을 성찰할 기회를 잃은 이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쉼표요, 따뜻한 숨이다. 경쟁에서 밀려난 자, 삶이 버겁기만 한 자, 의미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소비재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선물이다."
전도서를 유쾌한 지혜서로, 삶을 자유케 하는 진리로 다시 읽게 하는 이 책은 분명 독자들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